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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49) 눈맞춤 ... 대인관계 사회성 발달의 첫걸음

(...) 2015년에 다시 실험을 해 본 나는 단위 면적에 가장 많은 화소를 집적시킴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장 많이 참여시킴으로써 깊은 실재감을 촉발하는 것이 인공 세계를 구축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 목적을 위해 하이피델리티는 기막힌 묘책을 연구하고 있다. 저렴한 감자기의 추적 능력을 이용하면, 현실과 가상이라는 양쪽 세계에서 시선 방향을 똑같이 모사할 수 있다. 머리를 어디로 돌리느냐가 아니라,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헤드셋에 설치된 나노 규모의 미세한 카메라는 당신의 실제 눈이 어디를 보는지를 파악해서 타인의 아바타에 그 시선 방향을 그대로 전달한다. 즉 누군가가 당신의 아바타에게 말을 걸면, 그의 시선은 당신의 눈을 응시하고 당신의 눈은 그의 눈을 응시한다는 의미다. 당신이 움직임으로써 그가 머리를 돌려야 할 때에도 그의 눈은 계속 당신의 눈을 향하고 있다. 이 시선 접촉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친밀함을 자극하고 실재감을 흩뿌린다.

 

------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케빈 켈리 지음, 청림출판) 중에서

 

'이 시선 접촉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친밀함을 자극하고 실재감을 흩뿌린다.' 전 이 마지막 두 문장이 매혹적이더군요. 시선과 눈맞춤을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눈맞춤(Eye Contact)은 대인관계 사회성 발달의 첫걸음이지요. 보통 생후 2개월 늦어도 3개월이 지나면 유아는 사람을 보고 눈을 맞추며 방긋 웃지요. 정상적 반응입니다.

 

 

자폐증은 유아 때부터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Autism을 ‘자폐(自閉)‘증으로 번역한 분도 일본학자인가요? 존경스럽네요. 한자어 용어만 봐도 외부와 통하는 창문을 모조리 닫고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상호작용에 장애가 있다는 걸 나타내지요.

 

 

“내 눈을 봐.” 영화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 2003년)에서 박두만 형사는 눈을 보면 거짓말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거짓말탐지기 따위는 필요 없다 이겁니다. 눈을 통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워낙에 '구라'가 심한 박두만 형사의 주장은 온연히 믿을 수 없지만, 누구나 타인의 눈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눈은 정말 건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과 유사하네요. 망막과 시신경, 신경해부학으로도 봐도 그럴 듯하고요.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는지 모르겠는데요. 어떤 만성 조현병 환자는 거의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치료자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데 텅 비어 보여요. 항정신병 약물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사고의 결핍을 느끼지요. 면담에서 정말 생각이 텅 빈 걸 확인합니다.

 

반대로 의심 가득한 눈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편집증적 시선이 그렇지요. 편집증은 망상장애, 성격, 조현병 일부 타입에서 다 보일 수 있습니다. 확신에 찬 의심이 특징입니다. 이런 경우 환자의 확신과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지요.

 

편집증(Paranoia)에 대해선 약리학 교수님에게 처음 들었어요. 학생 때였지요. A는 부인이 바람났다고 의심을 해. 회사에 가서도 툭 하면 집에 전화를 해요. 하루에도 몇 번 씩. 어쩌다 늦게라도 받으면 난리가 나는 거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어느 날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 몇 번을 했는데도. 불안과 의심이 증폭되면서 도저히 못 참게 된 거야. 회사고 뭐고 차를 몰고 집으로 달려갔지. 단숨에 우당탕탕 5층 아파트 계단을 뛰어올라 현관문부터 안방 문까지 와장창 열어 제치며 소리 친 거야. 그 놈 어디 있어? 간만에 깜빡 잠이 들었던 부인이 부스스 일어나 그 놈이라뇨 하는데도 듣는 둥 마는 둥 이 방 저 방 막 뒤지는 거야.

 

그러다 저 아래 밖에서 어떤 남자가 외투를 걸치면서 황급히 뛰어가는 게 보였어. 저 놈이구나.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냉장고를 들어 그 놈을 향해 밖으로 던졌지. 정확히 외후두융기(External Occipital Protuberance)를 적중시켰다는구먼. 즉사.

 

아뿔싸. 정확하게 맞출 줄이야. 사람을 죽였어. 공포와 죄책감에 휩싸이던 A는 5층에서 뛰어내렸데. 자살한 거지.

 

저승가면 죽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확인 절차를 밟나봐. 염라대왕님이 묻지. 넌 뭐냐? 전 밤늦게 술 마시고 자다가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 일어나 황급하게 뛰어나가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뒤통수에 뭐가 꽝.

 

다음 넌? 제가 자초지종 냉장고를 들어서 던졌고 우여곡절 5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음. 그 다음 아직까지 덜덜거리는 넌? ...전 냉장고에 있다가 그만.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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