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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사막의 라이언

영화 ‘사막의 라이언(Lion on Desert)’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문명적 충돌’을 아랍인의 시각에서 제작해 서구 극장에 올린 거의 유일한 영화다. 서구인들이 반길 리 없다. 항일투쟁기 영화를 만들어 일본에서 흥행몰이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3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고작 1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1981년작 ‘사막의 라이언’은 분명 흥행면에서는 ‘폭망’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찌 보면 흥행 참패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던 것도 같고, 크게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된 듯도 싶다. ‘사막의 라이언’은 이슬람 세계의 서구와의 ‘문명적 충돌’을 아랍인의 시각에서 그려낸 영화다. 서구사회에서 크게 환영을 수 없는 주제였던 것이다.

 

‘사막의 라이언’이 그린 리비아의 독립투사 오마르 무크타르(Omar Mukhtar)는 당시 리비아의 절대권력자였던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카다피는 리비아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국가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질적인 영화 제작자 역할을 한 모양이다. 3500만 달러(약394억원)라는 엄청난 제작비도 카다피의 후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터다. 그 덕분에 앤서니 퀸(Anthony Quinn)과 올리버 리드(Oliver Reed)라는 서구의 걸출한 명배우들까지 캐스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사막의 라이언’은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리비아의 투쟁 대상이던 이탈리아에서는 아예 극장에 걸리지도 못한 채 흥행참패를 맛봤다.

 

아무리 앤서니 퀸과 올리버 리드 주연의 3500만 달러짜리 전쟁 블록버스터라 할지라도 ‘사악한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는 ‘숭고한 이슬람 전사’라는 이슬람적 서사 구조는 서구인들에게 불편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서구사회가 그토록 ‘악마’시하는 아랍세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의 기원을 일부라도 알릴 수 있었던 기회조차 그렇게 사라져간 듯해 안타깝다.

 

 

1981년 한국은 미국의 ‘신제국주의’ 구조 속에 살아가던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막의 라이언’의 개봉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가 리비아의 대수로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던 때라 리비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사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마르 무크타르는 리비아의 지폐에 등장하는 리비아 독립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독립투쟁의 행동과 정신을 겸비한 리비아의 위인이다. 무크타르는 리비아의 지폐에 올라있는데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는 어느 누구도 지폐에 오르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의아하다.

 

1929년 이탈리아의 지도자 무솔리니는 소위 ‘4번째 해안(THe Fourth Shore)’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사로잡힌다. 반도국가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탈리아에 ‘4번째 해안’의 획득이라는 국가적 목표는 결국 지중해 세계를 장악했던 ‘로마제국 부활’의 꿈이다. 이탈리아에 그 4번째 해안을 제공할 지역이 바로 아프리카의 리비아다.

 

그러나 한낱 리비아의 코란 선생이었던 오마르 무크타르(앤서니 퀸)라는 인물이 감히 무솔리니의 창대한 꿈을 막아선다. 무크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독립군은 사막에서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을 수행한다. 무솔리니가 리비아 독립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하는 군사령관들을 차례차례 패퇴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열 받을 수밖에 없었던 무솔리니는 마침내 자신의 최측근이자 이탈리아의 최고 군사 전략가인 로돌포 그라치아니(Rodolfo Graziani) 장군을 리비아 총독으로 파견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이탈리아의 최정예사단과 최첨단 기갑사단을 모두 리비아로 집결시킨다.

 

낙타부대를 향해 탱크부대가 돌진한다. 닭 잡으러 소 잡는 칼 휘두르며 나서는 격이다. 그러나 무솔리니가 동원한 이탈리아 최정예사단과 기갑부대도 낙타 타고 말 타고 몰려다니는 무크타르의 게릴라들을 쉽게 제압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리비아 사막 유목민의 낙타부대 하나를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나라 이탈리아의 탱크부대가 넘어서지 못했을까.

 

 

영화 전편에 걸쳐 코란 선생 무크타르는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는 신에게서 와서 신께 돌아간다.” 무크타르나 그의 전사들은 자신들 세대에서 독립을 쟁취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투쟁한다.

 

무크타르는 그라치아니 총독이 제안하는 모든 부귀영화의 유혹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어느 것도 그들이 지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 절대적 믿음은 인간을 뛰어넘어 인간 이상의 ‘위대한 존재’로 만드는 힘이다.

 

많은 경우 세상에 대한 욕심이 인간을 흔들리게 하고 나약하게 만들고 사소한 존재로 만든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세(現世)적인 욕망들이 폭발하고 서로 부딪친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매우 현세적이다. 심지어 종교까지도 다분히 현세기복(現世祈福)적 색채가 강하다.

 

현세적 욕망은 우리를 발전시키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며 또한 우리를 ‘작은 존재’로 묶어놓은 덫이기도 하다. 현세적 욕망만이 과도하게 지배하는 사회는 그 충돌로 사회가 나갈 큰 방향을 놓치기도 한다. 남북통일이 됐든 민주주의가 됐든 그 가치들이 현실적 욕망의 희생을 요구하면 우리는 흔들리고 현실과 타협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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