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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은 왜 임표를 죽여야 했는가?(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06)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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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6  08: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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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표(林彪, 1907.12~1971.9)는 일찍이 중공중앙부주석,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장, 중공중앙군위 제일부주석을 역임한 신중국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모택동은 임표를 죽였을까?

임표의 ‘일호 명령’이 모택동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모택동은 임표가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 그저 어떤 일에도 상관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어쩌면 더 나아가 자신이 시키는 일만 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1969년 ‘진보도사건’(3월 중·소 국경 우수리 강에 있는 진보도〔珍寶島, 러시아명 다만스키〕에서 일어난 양국 국경경비대의 무력 충돌사건) 이후 중소 양국 외교부장 담판이 있었다. 북경에서 담판이 있기 며칠 전부터 임표는 대단히 긴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일을 주관하기 시작한다. 그는 황영승(黃永勝)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국 비행장의 비행기를 은폐하고 전쟁 준비를 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군위(軍委)의 부총참모장 염중천(閻仲川)이 몇 글자를 더하여 임표 부주석의 ‘일호 명령’이라고 명명하였다.

큰 실수였다. 왜? 임표는 모택동에게 보고하는 동시에 왕영승에게 통지해 버렸다. 먼저 국가주석에게 보고해 비준을 받은 다음 부하에게 명령을 하달하여야했다. 결코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의 전후를 알게 된 모택동은 무척 화를 내면서 왕동흥(汪東興)에게 불태워 없애라고 명했다.

임표 자신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동시에 명령을 내린 이후 당일 저녁에 “무수히 많은 일 중, 이번이 가장 큽니다. 극기복례하렵니다”라는 편지를 써서 자신을 반성하고 모택동에게 순종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스스로 후회하였던 것이다.

1967년 어느 날, 임표는 중대급 부대를 이동하면서 모택동에게 보고한 후 비준을 받은 후에야 이동하였다. 전국이 비상사태에 진입해 있었는데 중대병력 이동 상황까지 보고하는 태도에 모택동은 지극히 불쾌해했다.

임표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임표는 결코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주 실수를 저질렀다. 모택동은 임표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 일단 임표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모택동은 싫어하였다. 물론 임표가 어떤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모택동의 의구심이 발동하였던 것일 따름이었다.

   
 

여산회의 후 모택동은 어떻게 임표를 대했는가?

여산회의(廬山會議, 1959년 중국 강서성 여산〔廬山〕에서 열린 중국공산당의 일련의 회의와 당 공식대회를 말한다. 1959년 7월 2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제8차 팔중전회(8월 2일~16일)를 가리킨다. 팽덕회〔彭徳懐〕 등이 대약진운동의 문제점을 비판했다가 실각하였다)가 끝난 후 다음 네 가지를 대대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첫째 진백달(陳伯達) 하야, 둘째 비진정풍(批陳整風, 진백달을 비판하고 기풍을 바로잡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진행, 셋째 ‘솔석두(甩石頭, 문건들을 비준 발송)’, ‘삼사자(摻沙子, 기등규〔紀登奎〕, 장재천〔張才千〕을 군위 판사조〔辦事組〕에 참여시키는 것)’, ‘와장각(挖墻角, 북경 군구 개조)’ 실시, 네 번째로는 전국 인민들에게 모택동이 미국 귀빈 스노우(Snow)와의 회담 사실 공개가 그것이다.

여기서 잠시 ‘솔석두’, ‘삼사자’, ‘와장각’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것은 모택동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다. 인사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자주 사용하면서 정국을 장악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고급 간부들을 주물렀던 인사 방법이다.

첫째, 자기 사람을 다른 조직에 심어 다른 조직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드는 방식이 ‘삼사자’(모래를 섞어 놓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양성무(楊成武)를 임표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총참모부에 심어놓았다. 원래 뭉치거나 배타적 경향이 있는 무리에 새 사람을 넣어 원래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노동자·농민·군인 등을 지식인 집단에 섞어 넣어 새바람을 일으키게 하였다.

둘째, ‘솔석두’(돌을 던진다는 뜻, 솔〔甩〕을 잉〔扔〕으로 쓰기도 한다)는 상대방 조직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을 고립시키거나 타도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왕력(王力)과 관봉(關峰)을 제거하면서 사인방(四人幇)의 기세를 꺾어버린 일이 그것이다.

셋째, ‘와장각’(담이나 벽의 모퉁이를 판다는 뜻, 각〔角〕을 각〔脚〕으로 쓰기도 한다)은 다른 세력의 중요 인물을 영입해 와서 자신의 사람으로 삼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왕홍문(王洪文)이 대표적인데, 그는 원래 사인방인 장춘교(張春橋)와 강청(江青)의 주력이었다. 모택동이 왕홍문을 당 중앙 부주석에 발탁하고 직접 장춘교의 계획을 무력화시켰다. 권술에 능한 모택동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용어들이다.

임표 사건 이전에 인민출판사에서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출판한다. 1970년에 모택동이 스노우와 면담한 내용을 소책자로 만들어 전국에 선전하였다. 그 내용 중에 모택동이 이른바 ‘네 가지 위대함’을 싫어했다고 한다.

네 가지 위대함이란 누가 붙여준 것일까? 임표가 붙여준 것이다. 위대한 영수, 위대한 선도자(導師), 위대한 원수(統師), 위대한 지도자(舵手)를 말하는 것으로 줄여, ‘사개위대(四個偉大)’라고 한다. 임표 사건 이전, 그 책자는 전국으로 뿌려졌다.

1971년 8월, 모택동은 남순을 시작한다. 모두에게 임표를 비판할 준비를 하라고 통지하였다. 그의 남순 강화를 기록한 왕동흥(汪東興)의 요록은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각지의 강화도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모두 임표를 없앨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사전에 이미 준비되어있었다. 비판해 하야시킬 시기를 찾고 있었던 것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1년 6월 9일 오후에 강청은 임표를 초대해 기념사진을 찍게 한다.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오법헌(吴法憲)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1970년 여산회의 이후 강청 등은 우리에게 애써 우호적인 태도를 꾸몄다. 내가 보기에 그들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하나는 허상을 만들어 우리를 마비시키려고 하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다가와 동정을 살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희희낙락했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때려잡기 위함이었다. 강청은 모택동의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그러나 양은록(楊銀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청이 임표를 위하여 사진을 찍은 것은 모택동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았다. 왜냐하면 강청은 오랫동안 모택동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모택동과 강청은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부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택동이 사주가 있었든 없었든 강청은 절묘한 시기에 임표의 사진을 찍었고, 제목도 ‘자자불염(孜孜不倦,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이라 지었으니. 임표는 영원히 모택동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으니. 사진 속 임표는 『모택동선毛澤東選』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임표를 마비시켜 어떤 대비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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