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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제주선인에게 길을 묻다
남쪽 벼랑에 돌문이 무지개처럼 열려 있는 섬, 우도[85회] 백호 임제의 '남명소승(南溟小乘)' ... 그 당시 제주도를 알 수 있는 기행문
문영택  |  yeongtaek24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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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1  09: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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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남아 백호 임제(1549-1587)는, 부친인 임진이 제주목사로 재임 당시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하여 제주에 와 약 4개월간 머물렀다. 이때 임제가 제주도의 명승지와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쓴 일기체 기행문이 남명소승이다.

남명소승은 1577년 (선조 10년) 11월 3일 출발에서 이듬해 3월 3일 귀경까지의 기행문으로, 존자암(영실 근처에 있는 곳으로 제주 최초의 절이라는 설이 있음)의 실체와 특산물 등 그 당시 제주도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는 우도를 직접 방문하여 우도동굴을 둘러보고 그 감회를 남긴 조선 최초의 선비이다. 김정의 우도가를 통해 우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산포항에서 우도로 올 때 뱃사공이 파도가 세어 도저히 건너가기 위험함을 알려도 임제는 ‘사생(死生)은 하늘에 달렸으니 오늘의 굉장한 구경거리는 저버리기 어렵도다.’ 하고 강행했다. 다음은 임제가 쓴 남명소승 중 우도동굴 답사기 전문이다.

사람을 수산방호소(水山防護所)로 보내 배를 대령시키도록 하였다. 우도를 선유(船遊)하기 위함이다. 정의 이 현감이 벌써 기다리고 있다는 기별이 왔다. 성산도(城山島)라는 곳에 당도하니, 그 땅은 마치 한 송이 푸른 연이 파도 사이로 꽂혀 솟아오른 듯, 위로는 석벽이 성곽처럼 빙 둘러쳐 있고, 그 안쪽으로는 아주 평평하여 초목이 자라고 있었다. 그 바깥쪽 아래로는 바위 굽이가 기기괴괴하여 혹은 돛배도 같고 혹은 막집도 같고 혹은 일산(양산) 친 것도 같고 혹은 새나 짐승도 같아, 온갖 형상이 다 기록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정의 현감을 만나서 함께 배를 타고 우도로 떠났다. 관노는 젓대를 불고, 기생 덕금이는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성산도를 겨우 빠져 나가자 바람이 몹시 급하게 일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배를 돌렸으면 하였고, 사공 또한 ‘이곳의 물길은 과히 멀지는 않으나 두 섬 사이에는 파도가 서로 부딪혀 바람이 잔잔할 때라도 잘 건너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오늘처럼 바람이 사나운 날은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사생은 하늘에 달렸으니 오늘의 굉장한 구경거리는 저버리기 어렵도다.’라 말하고, 결연한 뜻으로 노를 재촉했다. 물결을 타고 바람 채찍으로 순식간에 건너갔다.

우도에 가까이 닿자 물색이 완연히 달라져서 흡사 시퍼런 유리와 같았다. 이른바 ‘독룡이 잠긴 곳의 물이 유달리 맑다(毒龍潛處水偏 淸)’라는 것인가. 그 섬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인데, 남쪽 벼랑에 돌문이 무지개처럼 열려 있어, 돛을 펼치고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안으로 굴의 지붕이 천연으로 이루어져 황룡선(黃龍船) 20척은 숨겨 둘만 하였다. 굴이 막다른 곳에서 또 하나의 돌문이 나오는데, 모양이 일부러 파놓은 것 같고, 겨우 배 한 척이 통과할 만하였다.

이에 노를 저어 들어가니 신기한 새가 있어 해오라기 비슷한데 크기는 작고 색깔은 살짝 푸른빛을 띤 것이었다. 이 새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어지럽게 날아갔다. 그 굴은 남향이어서 바람이 없고 따뜻하기 때문에 바닷새가 서식하는가 싶었다.

안쪽 굴은 바깥 굴에 비해 비좁긴 하지만 기괴하기로 말하면 훨씬 기괴한데다 물빛은 그윽하기만 하여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위로 쳐다보니 하얀 자갈들이 달처럼 둥글둥글하여 어렴풋이 광채가 났으며, 또한 사발도 같고 술잔도 같으며 오리알도 같고 탄환도 같은 거의 하늘의 별처럼 박혀 있었다. 대개 온통 굴이 검푸르기 때문에 흰 돌이 별이나 달과 같은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시험 삼아 젓대를 불어보니 처음에는 가냘픈 소리였는데 곧바로 굉굉한 소리가 되어, 마치 파도가 진동하고 산악이 무너지는 듯싶었다. 오싹하고 겁이 나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이에 배를 돌리어 굴의 입구로 빠져나오자 풍세는 더욱 사나워 성난 파도가 공중에 맞닿으니, 옷과 모자가 온통 거센 물결에 흠뻑 젖었다.

하물며 좌하선(坐下船)은 고기나 잡는 작은 배로 낡아서 반쯤 부서진 배라서 바다 위로 위태롭게 떴다 가라앉았다 하여 간신히 뭍에 닿아 배를 댈 수 있었다. 고을 사람이 성산도의 북쪽 기슭에 장막을 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님은 먼저 들어가고 우리 일행 또한 밤길을 걸어 정의 읍내에 당도했다.

우도에 있는 동안 필자는 3회 주간명월을 찾아갔다. 한번은 1995년부터 동안경굴에서 동굴음악회를 열고 있는 현행복 교수 일행과 갔다. 그날 그곳에서 성악가인 현 교수는 흥에 겨워 노래 몇 곡을 선사하였다. 옛적에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마치 파도가 진동하고 산악이 무너지는 듯하고 귀신이 나오기라도 하여 동굴에서는 차마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그날 필자는 넋나간 사람마냥 들뜬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조선 기행문학의 최고봉이라 정평이 난 임제의 문장과 시는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였다. 제주의 옛 문헌에도 ‘소승(小乘)에 이르되’라고 인용되는 경우는 남명소승을 일컫는 말이다. 고향인 나주에 백호문학관이 있다.

   
▲ 우도봉을 배경으로 동굴음악회 주역들과 함께

그에 관한 시 두 편과 유쾌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임제는 평안도 도사로 발령을 받아 가던 중 황진이 묘소를 찾았다. 부임지로 가다 개성을 지나던 길에 풍류 여걸 황진이가 몇 달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임제는, 관복을 입은 채 말에서 내려 황진이의 묘소로 향했다.

산기슭에 쓸쓸히 묻혀있는 황진이의 넋을 위로하고자 신임도사인 임제는 제문을 짓고 이루지 못한 인연을 탄식하며 잔을 올렸다. 천하제일 기녀 황진이는 39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청초 우거질 골에 누워있었고. 살아생전 바랐던 진랑(황진이)과의 이루지 못한 만남을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난다 /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서러 하노라

성품이 자유분방한 임제는 중용을 8백 번이나 읽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1576년(선조 9년) 진사에 합격, 이듬해에 대과에 합격하였으나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조선조정이 동서로 갈라지고 남북으로 흩어지며 노소로 대립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던 시절, 파격적인 언행으로 임제는 결국 관복을 훌훌 벗어던져 버렸다.

평안도도사에 이어 예조정랑에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온 후 얼마 뒤 사직한 백호가, 충청감사의 아들에게 말 오줌을 불로주라고 속여 먹인 일화는 이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백호가 방문을 열어놓고 책을 읽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충청감사의 아들이 패거리를 이끌고 속리산 구경을 온 것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백호는, 읽던 책을 덮고 지름길로 법주사를 찾아가 노승들에게 절에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서 바둑을 두라 부탁하고, 동자승에게는 푸른 옷을 입혀 그 곁에서 시중들도록 하였다. 자신은 산중턱에서 옥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 문영택 전 교육국장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들은 감사 아들은, 마중 나온 스님에게 물었다. ‘저 피리소리는 어디서 누가 부는 것인고? 제법 그럴 듯한데.’라고 하자 ‘이 산에는 옛날부터 이따금 신선이 찾아와 저렇게 피리를 불면서 놀다가 갑니다. 하지 만 아무도 그 신선을 본 적은 없습니다요.’ 하고 응수했다.

‘그렇다면 내 오늘 저 신선을 꼭 한번 만나보고야 말리라’ 하고 큰 소리친 감사 아들은 피리소리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더니, 과연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시중들던 동자가 신선들에게 아뢰었다.

‘저기 속객(俗客)이 오고 있사옵니다.’ ‘어허, 기특하구나! 그렇다면 이 불로주를 속객에게 주고 속히 마시도록 하라.’ 감사 아들은 신선이 내린 불로주라는 말에 너무나 감격하여 단숨에 다 마셨는데, 그것은 백호가 미리 준비한 말 오줌이었다. 감사 아들이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것을 몰래 숨어서 보고 있던 백호가 동자승을 시켜 시 한 수를 전했다. 감사의 아들이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붉은 띠를 두른 미소년이여 / 塵世(진세: 티끌세상) 사이에 기특한 남아로다 / 한 병 술로 서로 전송하며 헤어지니 / 속리산 구름이 만리로구나

임제와 이조년의 시 한 수를 더 감상하자.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열다섯 아름다운 소녀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수줍어 말도 못하여 헤어지곤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돌아와 문빗장 걸어두고서
泣向梨花月(읍향리화월)    배꽃 향해 달 보며 눈물 흘리네

이화에 월백하고 / 은한이 삼경인데 / 일두춘심을 자규야 알련마는 / 다정도 병인 양 하여 / 잠 못 이뤄 하노라 (고려 문신 이조년)

이조년의 시가 중년의 마음을 잘 드러나게 읊었다면, 임백호의 시는 소녀의 마음을 곱게 담은 명품이라 여겨 여기에 실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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