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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서울사람의 제주느낌표(!)
제주도의 회 ... 회로 정면 승부하는 단골횟집[서울사람의 제주 느낌표(2)] 더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것보다 제주방식 그대로
박헌정  |  portugal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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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6  09: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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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읍 N수산의 천왕돔. 여기에 잘 끓인 지리까지 나오면 완성이다. 회 먹으러 와서 무엇이 더 필요할까?

제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주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생선회’다. 아니, 모르지는 않겠지만 서울 사람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모슬포 방어'를 많이 홍보하고 자랑스러워 하는데 정말 된장에 찍어먹는 고소한 방어 맛은 별미 중에 별미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방어는 어렵지 않게 구해먹을 수 있다. 방어보다 더 먹고 싶은 것은 서울에서 좀처럼 맛보기 힘든 벵에돔과 고등어회다. 춥고 물가 비싸고 공기도 나쁜 서울, 소주라도 실컷 마시고 싶은데 생선회라고는 맨날 흐물거리는 광어와 우럭뿐이다. 서울 사람들 사는 게 참 딱하지 않은가.

제주에 올 때마다 성산읍에 거처를 마련하는데, 이곳에는 거르지 않고 찾는 식당이 있다. 고성리에 있는 N수산이다. 택시를 타고 이 식당에 가자고 하면 성산읍의 기사님들이 어떻게 거기를 아냐고 묻고, 몇 년 전부터 다니던 집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친근감을 표시한다. 제대로 잘 찾은 집이란다.

처음에는 그 식당의 벵에돔 맛에 반했는데 요즘 몇 번은 벵에돔이 없다고 해서 참돔과 천왕돔을 먹었다. 역시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가득하다. 같은 어종끼리도 왜 이렇게 서울과 맛의 차이가 큰지 모르겠다. 크기 때문인지, 사는 물 차이인지, 숙성 탓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여행지에서의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제주에, 아니 이 식당에 올 때마다 만족스러웠다.

   
▲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올레길을 걷다가 어딘가에 들어가 해산물에
소주를 마신다. 제주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바람을 맞아야 하나보다.

그런데 이 식당을 서울 사람 누군가에게 소개하기는 좀 애매하다. 일명 ‘스키다시’라고 하는 곁요리 없이, 가득 썰은 회 한 접시와 오이 네 쪽, 상추와 마늘, 고추가 전부다. 그 흔한 꽁치구이 한 마리 없다. 그런 음식 때문에 횟집에 가는 사람도 많으니 괜히 소개했다가 말 들을 것 같다.

실제로 소문 듣고 온 주변 테이블의 외지 손님들은 처음에는 감탄하고 사진도 찍는데 곧바로 잠잠해진다. 뭘 더 달라고 할 것도 없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회와 소주, 그걸로 끝! 그래서인지 오래 전부터 유명세 탄 것에 비하면 손님이 가득 넘쳐나지 않는다.

그런 잡다한 것을 먹다가 정작 맛 좋은 회를 남기는 게 안타까워 아예 다 없앴다는 사장님의 ‘회 철학’이 나와 딱 일치한다. 주문하면 회를 준비함과 동시에 지리를 끓이고, 넉넉하게 먹었다 싶을 때 뼈의 맛이 잘 우러난 지리를 내어준다. 재미있는 게, 밥을 주문하면 햇반을 데워준다. 회가 남으면 회덮밥을 해먹도록 비빔채소와 양념장을 준비해주는데 역시 햇반이다. 내가 희망하는 횟집보다 한 걸음 더 진보적으로 나아갔다.

제주도든 서울이든 전국 어디든 횟집이 너무 획일적이다. 고급 일식집 흉내 내서 국물, 튀김, 구이, 해산물을 갖춰내고 회는 나중에 내줘 미각을 상실한 채 몇 점 먹다가 곧바로 자극적인 매운탕을 받아든다. 회를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별성은 오로지 다 먹지 못할만큼의 음식 종류와 가격뿐이다.

   
▲ 박헌정 수필가

나는 이 식당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다. 뭐든 좋은 것은 다 서울로 올라가는 시대, 서울과 다 똑같이 한다면 제주의 경쟁력과 매력은 무엇일까. 더 근사한 것,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으로 승부한들 서울을 당해낼 수 있을까.

아예 ‘다른 것’, 그러니까 여기 제주의 방식이 더 낫지 않을까. 너무 다르면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본질을 느껴보고, 좋으면 동화되게 되어있다. ‘제주’임을 이해하고 ‘제주의 멋’으로 받아들이는 게 하나둘씩 늘어나면 좋겠다.

제주의 관광물가가 비싸서 당황하는 외지 관광객도 많은데 이 곳처럼 회로 정면 승부하는 횟집은 참 새롭다. 나 같은 회 매니아에게는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회의 성지’다. 오로지 접시에 수북한 벵에돔, 반짝이는 고등어회, 그리고 한라산 소주 때문에 제주행 비행기표를 살 때도 있다.

박헌정은?
= 서울생.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현대자동차, 코리안리재보험 등에서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50세에 명퇴금을 챙겨 조기 은퇴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공식직함은 수필가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직장생활 중 대부분을 차지한 기획, 홍보 등 관리부서 근무경험을 토대로 <입사부터 적응까지(e-book)>를 썼다. 현재 중앙일보에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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