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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어 퓨 굿맨(3)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 정신이 쿠바의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에 충만하다. 노력해도 안 되면 더 ‘노오력’하라고 다그친다. 산티아고 일병은 죽을 지경이다. 인간이 느끼는 한계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제섭(Jessup) 사령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해병대의 생명과 같은 군기가 무너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쿠바의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에 배치된 산티아고 일병은 부대의 유별나게 ‘빡센’ 군기와 훈련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한계를 느낀 산티아고 일병이 타 부대로의 전출을 청원하지만 제섭 사령관은 못마땅하다. 자신의 탁월한 지휘력으로 일병 하나를 완전히 ‘개조’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다.

 

개인이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집단이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옷을 사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옷에 맞추는 식이다. 산티아고 일병이 ‘더 노오력’하면 제섭 사령관이 원하는 진정한 해병인 ‘어 퓨 굿맨’이 될 수 있었을지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제섭 사령관은 산티아고 일병이 빡센 구보 훈련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심장이 터져 죽어야 비로소 그를 진정한 해병으로 인정했을 듯하다.

 

산티아고 일병은 심장이 터져버릴 정도의 ‘노오력’을 포기하는 대신 사령관과 흥정을 시도한다. 자신의 전출 청원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슨 상병이 쿠바 철책선을 향해 쿠바를 도발하는 불법 사격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순순히 거래에 응할 제섭 사령관이 아니다. 그는 전 부대에 산티아고 일병에 대한 ‘코드 레드(Code Red)’를 발령한다. 비공식적이고 비합법적이며 은밀한 ‘사형선고’다. 더욱 끔찍한 것은 사령관과 장교들만 산티아고 일병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료 병사들까지 그를 폐기물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산티아고 일병은 고된 훈련 속 해병대원들에게 작은 위안과 여흥거리가 된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유난히 가혹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작태를 ‘억압심리의 이양’이라는 심리로 해석한다. 강자인 서구 제국에 당했던 억압과 설움을 약자인 중국과 한국에 퍼부었다는 뜻이다. 엄격한 해병대 군기에 짓눌려 있던 대원들에게 ‘찌질한’ 산티아고 일병은 억압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배출하기에 알맞은 분출구였다.

 

해병대 정신이 충만한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이 사령관의 코드 레드를 실행한다. 그렇게 산티아고 일병은 군부대 의문사를 당한다. 그러나 군사법정에 소환된 제섭 사령관은 시종일관 당당하다. 산티아고 일병에게 일말의 동정심이나 죄책감도 없다. 분노와 조롱만이 있다. ‘그따위’ 사소한 일을 문제 삼는 것도, 자신이 법정에까지 소환된 것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뿐이다.

 

 

제섭 사령관은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나약함’을 질책하고 분노하는 일부 기성세대를 닮았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더 노력하라고 다그친다. ‘노력’해도 안 되면 더 ‘노오력’하라고 몰아세운다. 격려가 아니라 질책과 조롱이 묻어난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출처도 정체도 불분명하고 불온한 사자성어까지 나돈다.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의 제섭 사령관이 들었다면 아마도 바로 부대 훈시에 써먹었을 법한 구호다.

 

문득 우리 사회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를 외쳐대는 해병대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모든 남성에게 적용되는 징병제도 서슬이 시퍼런 나라여서인지 대개 군대를 경험하고 군대 문화가 일반화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죽도록 충성하고 죽도록 일하라고 다그친다. 그러지 않으면 나약하고 책임감 없는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노오력까지 안 해도 노력만 해도 어느 정도의 목표는 이룰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꼭 미쳐야만 목표에 미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것은 아마도 ‘미친 사회’임에 분명하다. 우리 모두 산티아고 일병처럼 딱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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