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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라이프 오브 파이 (1)

리안(李安) 감독에게 2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2012년)’는 스페인 태생 캐나다 작가인 얀 마르텔(Yaan Martel)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2001년 출판돼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1200만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대만의 거장 리안 감독이 유려한 솜씨로 스크린에 풀어냈다.

 

 

‘와호장룡’ ‘색ㆍ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리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2006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거장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관객과 평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평을 받으며 2012년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차지했다.

 

얀 마르텔의 원작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굳이 분류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쯤 될 것 같다. 수많은 고정 관념들로 가득 차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어른’들의 머리에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선사한다.

 

인생은 하나의 스토리다. 어떤 인생을 살든 그 인생은 자신이 어떻게 스토리로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다른 인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 소년에게 ‘조난’과 ‘비극’은 주어진 운명이지만, 소년은 그 운명을 자신의 스토리로 재구성한다. 스스로 재구성한 ‘조난’의 ‘스토리’는 더 이상 비극이 아닐 수 있다.

 

인도에서 개인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은 동물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캐나다 이주를 결정하고 화물선에 노아의 방주처럼 동물들을 모두 태운 뒤 캐나다로 향한다. 하지만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고 만다.

 

파이는 가족을 모두 잃고 구명정에 사납기로 유명한 벵골 호랑이 한마리와 함께 올라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그렇게 16살 인도 소년은 호랑이와 함께 227일간의 황당하고도 끔찍한 조난의 항해를 시작한다.

 

 

분명 끔찍스러운 조난의 여정인데도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다지 참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힌두교, 이슬람교에 기독교까지 어느 한 종교도 배척하지 않고 모두 마음으로 받아들인 16살 소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내공’이 만만치 않다. 소년은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하늘에 맡긴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벵골 호랑이가 바다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쫓는 기묘하고 대책 없는 사냥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여유까지 보인다.

 

사냥에 실패하고 바다에 빠져 죽을 만큼 허우적거리는 호랑이를 구명정에 끌어 올려 준다. 자신을 먹어치울지도 모르지만 살고자 하는 한 생명을 매몰차게 내칠 수가 없다. 벵골 호랑이가 자신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물고기를 잡아 공양할 뿐 호랑이를 증오하거나 죽일 궁리를 하지는 않는다.

 

임금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다. 백성들은 굶주리면 일단 임금부터 잡아먹는다. 16살 소년은 동서고금 불변의 ‘치세(治世)의 도(道)’를 망망대해 구명보트 위에서 실현한다.

 

리안 감독이 와호장룡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영상미는 이 영화에서도 녹슬지 않고 나타난다. 영화 와호장룡이 대나무 숲속에서의 결투를 한폭의 동양화로 승화시켰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태평양 망망대해에서의 조난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바다와 하늘과 구름이 하나가 되고, 나 또한 바다와 하늘이 되고 구름이 된다.

 

거대한 고래가 밤바다에서 춤을 추고, 날치떼가 바닷속이 아닌 하늘을 뒤덮는다. 밤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하얀 은하수가 포근한 솜이불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구명정을 덮는다.

 

지상의 아름다움의 끝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태평양에서 조난을 당해봐야 할 듯하다. 수많은 조난영화들이 있었지만, 조난당한 주인공을 부러워해 보기는 처음이다. 여행사들이 머리를 짜내는 관광상품에 ‘태평양 조난 패키지 상품’이 출시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16세 소년 파이가 기약 없는 미래와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스러운 호랑이를 제거할 궁리에만 사로잡혔다면 하늘과 바다, 별과 구름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을 듯하다. 인생이 고생길이라며 인상 쓰고 한탄만 한다면 그 고생길에도 분명히 피어있을 길가 꽃들의 아름다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같은 고생길을 가더라도 가끔씩 길가에 핀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덜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꽃이 내가 믿는 신일 수도 있고, 내가 동화를 쓰듯 써가는 ‘스토리’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인생은 어쩌면 ‘조난’이다. 그러나 파이처럼 그 조난을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로 승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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