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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의 섬.역사의 교실 제주섬 ... 제주선인들의 끈질긴 저항의식과 아픔의 흔적

 

관광지인 이곳에서조차 이러한 아픔이 생각나는 것은 4·3에 대한 나의 멍에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어릴 적 할머니의 눈물과 함께 들어야 했던 이야기들이 내겐 몇 있다. 태평양전쟁과 4·3에게 빼앗긴 백부와 고모, 할아버지와 중부의 사연들….

 

마을의 유지였던 할아버지는 낮에는 서북청년단과 경찰을, 밤에는 산사람들을 상전으로 접대해야만 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자 할아버지는 제주시내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인 나의 부친이 걱정되어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다음날 고향을 탈출했다는 죄목으로 서청특별중대가 진을 친 지금의 구좌중앙초등학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할아버지 죽음을 지켜본 중부는 4·3의 광풍을 피하려고 마을 외곽 동굴 속에 피신했다가, 산사람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끝내 청년의 삶을 마감하였다. 중부가 목숨을 잃은 곳은 우리 마을회관 옆 공터였다.

 

모름지기 우리는 역사라는 과수원에서 교훈의 열매를 수확하는 농부이다. 황무지 밭을 개간하여 튼실한 수목을 심은 탐라선인들을 회상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과거에 베인 속살까지 보여주고 현재와 미래의 밭을 개척하려 할 때, 진정 우리는 역사의 밭에서 알찬 교훈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도 제주 선인들의 끈질긴 저항 의식과 아픔의 흔적도 함께 안내하련다. 바라건대, 제주는 관광의 섬뿐만 아니라 역사의 교실로도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4·3에 대한 해원(解怨)과 화해의 길이리라.

 

제주섬은 생존의 양식을 구해야 했기에 앞마당의 바다와 뒷마당의 오름을 사모해야 했던 신화의 땅이다. 척박한 땅과 무심한 바람과 가렴주구와 싸워 온 탐라선인들을 생각한다.

 

고구마처럼 박힌 돌멩이를 뽑아내어 황무지를 일구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 검질긴 생명력을 나는 사랑한다.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수눌음을 일상화한 박한 자연인을 또한 나는 사랑한다. 삼가, 백사장에 맴도는 혼령들에게 깊이 머리 숙인다.(1997년 등단작)

 

후기
제주시 봉개동 거친오름 아래 조성되고 있는 4·3평화공원을 아들과 함께 다시 다녀왔다. 뒤로는 한라산 정상이, 앞으로는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이제나마 후손들의 정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4·3의 혼령들이 잠들고 계신 위패 봉안실도 확장공사를 마무리하여 참배객들을 맞고 있다. 나의 조부와 중부도 그곳에 잠들고 계시다. 4·3을 떠올릴 때면 나는 자꾸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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