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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그린 북(Green Book) (4)

돈 셜리 박사는 흑인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백인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길 갈망한다. 명문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 지적이며, 백인들만의 배타적 영역인 클래식 피아노에도 발군의 역량을 지녔다. 객관적으로 백인보다 뒤처지는 구석이 없다. 백인 중에서도 능히 상위 1%에 들 만한 자격을 갖췄다.

 

 

미국이란 나라는 ‘시민 민족주의(civil na tionalism)’ 국가가 아니라 불행하게도 ‘인종 민족주의(racial nationalism)’ 국가다. ‘시민 민족주의’는 시민권을 부여받으면 누구든 같은 국민으로 받아들이지만, ‘인종 민족주의’ 사회에서는 시민권을 부여받아도 피부색이 다르면 그 시민권을 100% 인정해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주민등록증이라고 다 같은 주민등록증이 아닌 셈이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인종차별이 극성을 부리던 1960년대 미국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돈 셜리는 인종차별의 모든 불합리한 억압과 모욕을 마치 인간이 되기 위해 어두운 굴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며 100일을 버티는 ‘웅녀’처럼 끙끙거리며 참아낸다. 다른 흑인들처럼 쌍소리하고 고함치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점잖고 또 의연하게 그 모든 고난을 참아내면, 언젠가는 곰이 사람이 돼 햇빛 찬란한 굴 밖으로 나가 자신도 백인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돈 셜리의 ‘곰 같은’ 인내도 한계에 부딪힌다. 백인 선남선녀들이 돈 셜리의 재즈 피아노 연주에 박수를 쳐주지만 그것은 마치 로마의 귀족들이 콜로세움에서 노예 검투사(gladiator)들의 화끈한 칼부림에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검투사가 제아무리 뛰어난 칼솜씨를 지녔다고 해도 노예는 노예일 뿐 로마 시민이 될 수는 없다.

 

돈 셜리가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 무대에 오르기 전 옷을 갈아입고 연주회 시작 시간을 기다리는 공간은 연주자 대기실이 아니라 좁아터진 창고의 한구석이다. ‘돈 셜리 초청 연주회’에서 열리는 만찬장에도 정작 돈 셜리는 입장이 불허된다. 화장실도 돈 셜리에게 허용된 곳은 호텔 밖 ‘뒷간’이다. 돈 셜리는 호텔 주방에서 먹든지 아니면 음식을 싸서 나가 흑인들에게 숙박이 허용된 허름한 호텔에 가서 먹어야 한다.

 

 

로마 최고의 검투사라고 해서 로마 귀족들과 한 테이블에서 만찬을 할 수는 없다. 만찬장 입구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돈 셜리는 마침내 자신을 거부한 그들을 위한 연주를 거부하고 호텔을 나온다.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굴을 뛰쳐나와 결국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호랑이가 되고 만다. 과연 웅녀처럼 쑥과 마늘만 먹으며 100일을 견뎌냈더라면 돈 셜리가 정말 백인사회에 받아들여졌을지는 의문이다.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남부 콘서트 투어를 마치고 크리스마스날 집에 돌아왔지만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낼 사람은 없다. 백인 친구도 없지만 흑인 친구도 하나 없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밤 휑하니 빈 집에 홀로 남겨진 돈 셜리는 참담하다. 짤막한 이솝 우화 한토막을 소개한다.

 

새들과 들짐승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편이 이길지 알 수 없었다. 박쥐는 머리를 굴렸다. 들짐승들 수가 더 많고 몸집도 큰 것을 보고는 자신의 날개를 접어 감추고 들짐승 편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독수리가 새들의 구원군으로 등장해 전세가 새들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박쥐는 새들 편으로 가서 들짐승들을 공격했다. 전쟁은 새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박쥐는 새들에게 재판을 받아 온몸의 털이 모두 뽑히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결국 박쥐가 새도 들짐승도 못 되고 모두에게 배척받은 것처럼, 돈 셜리는 백인도 흑인도 못 되고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배척받은 채 크리스마스날 밤 빈집에 혼자 남겨진다. 드넓은 거실 푹신한 소파에 혼자 앉은 돈 셜리의 모습이 마치 형장의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만큼이나 질식할 듯 외롭다.

 

이솝이 박쥐 이야기를 썼던 그리스 시대에도 박쥐 같은 인간들이 어지간히 많았던 모양인데, 눈에 실핏줄이 터지도록 눈치껏 살아야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어찌 박쥐 같은 인간들이 없겠는가. 수많은 박쥐들이 때로는 날아다니고 때로는 뛰어다녀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돈 셜리처럼 으리으리할지는 몰라도 적막한 거실에 홀로 남겨져 참담한 크리스마스날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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