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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프로빈셜 홀(Provincial Hall)(3)] '먹고 사무관들'과 '고라줘 권력'

이 소설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어두운 세력들이 전국의 지방정치를 장악해 온갖 이권개입과 탐욕으로 얼룩지는 가운데 제왕적 권력을 장악한 프로빈스의 총독(Governor)과 그 추종 세력들의 행태를 담고 있다. 그들은 조배죽 혹은 십상시(十常侍) 무리들이다.

 

주인공 김철수는 가상인물이다. 프로빈스에 장기간 근무하면서 그들의 집중공격으로 무려 20여년간 수천길 벼랑 끝, 한 순간을 버티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할 위치에 서 있었다. 주인공의 육체는 이미 완전히 부서져 버려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면서도 희미하게 남은 정신에 의지하며 떼거지로 무지막지하게 덤벼드는 조배죽과 십상시들을 상대로 그냥 그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던 신세였다.

 

1대 100, 승산 없는 싸움, 김철수는 최후의 결사항전을 준비한다. 주인공과 프로빈스의 운명이 걸려 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실제와 같이 묘사되어 있으나 모두 픽션이다. [편집자 주]

 

 

'먹고 사무관들'

 

김철수는 기억을 한참 뒤로 돌렸다. 1996년 어느 날 프로빈스의 도지사가 소속 공무원들에게 외국어와 컴퓨터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도록 엄명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면서 세계화라는 거센 물결을 마주치고 있었다.

 

아마도 도지사는 공무원들이 이 추세에 대응하도록 준비를 시킬 참이었던 것 같다. 당시 사정으로 보아서는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이 도지사는 프로빈스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이끌었으며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김철수는 “저 분이 다음 선거에서 크게 손해 볼 미련한 짓을 한 것 같.”는 생각을 하였었다. 혁신적인 정책은 반드시 수구집단인 관료 조직에서 이를 거부하는 다수의 세력들이 등을 돌리게 된다.

 

관료들은 점심은 무엇을 먹고 저녁에는 누구하고 어떤 안주와 술을 먹을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걱정거리였다. 우태성(牛怠胜)은 거의 매일 오전 9시가 넘어서 술 냄새를 풍기며 출근했다. 간밤에 먹은 안주가 소화되지 않았는지 “꺽....꺼어억” 대면서 출근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드르렁 드르렁” 코를 요란하게 골았다. 사무실이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점심시간이 되면 부시시 눈을 뜨면서 “야....철수....해장국 사라....새벽 네시까지 먹어 부난 속 쓰련 주거 지켜....”라고 당연한 대접을 요구했다.

 

김철수는 우태성을 해장국 집으로 모셨다. 게걸스럽게 해장국 국물까지 다 빨아먹은 우태성은 “어....허....시원 허다....저녁에는 저∿어기 갈비 집에 강 한잔 해사 크(해야겠다)라....고찌 글라(같이 가자)....이추룩(이렇게) 먹어사(먹어야) 되는 거라....”라며 호탕하게 웃어 댔다. 우태성은 어금니에 고춧가루가 낀 채로 공무원으로 처신하는 방법을 훈수했다. “너 이 ×× 말여....공부가 중요한게 아녀....높은 사람 잘 모셔사(모셔야) 되어....난 경허연(그렇게 해서) 사무관 되었다고....”라며 당연한 공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철수는 답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예....예”하고 식사를 마치고 꼬짓 꼬짓 모아 둔 가짜 출장여비로 점심값을 냈다. 그러나 저녁을 먹자는 제안은 '저녁과 2차 3차....4차 밤새도록 마시자....그리고 술값을 내라'라는 말이다. 모른 척 조용히 퇴근해 버렸다. 그날 이후부터 우태성은 김철수를 들들 볶아대다가 김철수한테 거꾸로 가볍게 제압당하고 만다.

 

도지사의 패착

 

어느 날 도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조사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나 프로빈스의 정치에서는 가장 큰 패착이었다. 관료들은 “그래서 우리도 경조사에 다니지 말라는 얘기냐?....×× ” 하면서 불만이 팽배해 갔다. 이미 도지사에게 등을 돌려 버렸다.

 

관료들은 잔칫집이나 초상집 입구에 '우두레기(멍하니)' 서성거리다가 높은 사람이 오면 꽁지 빠지게 달려가 안내하여 술과 안주를 대접하며 '눈 도장'을 찍는 것은 큰 일거리였다. 이를 두고 '의전'이라 했다. 높은 사람의 집에 경조사가 있으면 심부름 할 사람을 편성하고 의전 계획을 짜게 된다.

 

정치인들은 경조사에 다니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고, 토호들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경조사에 오느냐 오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프로빈스의 정치수준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토호들은 “도지사가 왔다 가서(나는 도지사보다 위야)....우∿허∿허....”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너희들 허고는 차원이 틀려”라면서 똥 방귀를 뀌어댔다.

 

프로빈스의 경조사 문화는 독특하다. "축하합니다" 또는 "명복을 빕니다."라는 진심이 담긴 축하나 애도의 표현은 애초부터 없었다. 밥과 술 먹고 “잘 먹언 감서이(잘 먹고 간다)”라고 입맛을 다시며 부조 봉투를 덥석 전해 주는게 일상이다. 식당에서 밥값을 계산한 것에 불과했다.

 

'고라줘 사무관들'

 

일부 사무관들은 출근하여 퇴근 시간까지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 움직이지도 않았다. 눈썹도 움직이질 않았다. 돌부처가 따로 없다. 그 능력이 궁금했다. '공무원은 엉덩이가 질겨야 하는 건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럭저럭 종이 한 장에 글자를 서너 줄 달아 메고 봉급이 적다고 '툴 툴' 대면서 받아먹으면 그만이다. 출장여비를 서무담당 직원이 지출하자면 “왜 저 사람에게는 많이 주느냐?”며 몇 십원 차이로 다투는 꼴들이 다반사였다. “도대체 이 자들...” 하면서 지적수준을 의심했었다.

 

서무담당은 목적지를 왕복하는 여비를 산출하자면 동쪽으로 갈 때하고 서쪽으로 갈 때에는 버스요금이 몇십원 차이가 있다고 변명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가짜출장 여비인데도 과자 하나를 놓고 다투는 어린아이들처럼 유치(乳齒)하였다.

 

그러다가 두령청허게(느닷없이) “그런 것도 안고라 주곡(얘기 안 해 줬다.)”하며 직원들을 들들 볶아 댔다. 이 표현은 수십년간 알량한 권력을 즐기는 사무관들의 전유물이다. 지금도 꼬질꼬질(몹시 뒤틀리고 이리저리 고불꼬불하다.)한 '고라줘 사무관들'이 즐겨 쓴다.

 

이 말은 조선시대 시골의 관아(官衙)에서 아전(衙前) 들이 염소수염을 꼬아 가면서 곁눈을 흘기며 즐겨 썼다. 무고한 백성들을 잡아다가 “바른대로 대라...”고 다그칠 때 쓰는 말과 같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를 거쳐 오면서 즐겨 쓰는 표현이었다. '....주∿곡∿' 하면서 말꼬리를 돌려 올릴 때에는 직원들의 심장은 쪼그라 들었다.

 

프로빈스는 세계화라는 거센 파도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익이 머라?” “컴퓨터 학원에 댕겨야 되어?” “그거 어시면(없으면) 공무원 못허여(못해)?”라면서 투덜대는 불평이 쏟아졌다. 그렇게 프로빈스는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었다. 동시에 도지사는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그∿런 것도 안고라 ∿주∿곡∿?”하면서 몽니를 부려댔다. 조선시대 시골 관아(官衙)의 벼슬아치들이 즐겨 쓰던 이 '고라줘 권력'은 조배죽들이 모든 분야를 통치하는 수단이 되어 갔다. '안고라 줬다'면 '충성심이 모자란 ×'이란 뜻으로 통했다.

 

어느 날 김철수는 우의철(尤饐餮)을 모시고 직원의 결혼식 축하연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신부의 모친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신부가 모친을 닮아서 아주 예쁘고 살림을 잘 할 것 같습니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우의철은 나오면서 “그∿런 것도 안고라 ∿주∿곡∿?” 하면서 삐쳐 있었다. 김철수는 “예?”하고 반문하면서 “결혼 축하 덕담 한마디 할 줄도 모르는 이런 ×들이 프로빈스의 간부들이라??....에라이 ×××의 ××들아....”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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