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누리를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 추가하기 기사제보 제이누리 소개 후원하기
로그인 | 회원가입
최종편집 2020.4.9 / 17:58
실시간뉴스
라이프중국, 중국인
중국 고대의 기이한 풍속(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0)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22  10:29:2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네이버밴드

고대 중국, 특히 광대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의 지역에는 듣기에 황당하기 그지없으나 당시 인류의 사유방식으로는 논리적이라 볼 수도 있는 괴이한 풍속이 많다. 노인 ‘자살 굴’, 남자 ‘산후조리’, 모친을 먹거나 버리기, 큰아들을 죽여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남매 통혼 등이 그것이다.

첫째, 노인 ‘자살 굴’

‘자살 굴’이라고 했으나 ‘죽게 내버려두는〔寄死〕 갱(窯)’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전설 속의 고려장과 같은 행태를 자행하였던 갱과 같은 동굴을 말한다. 중국어로는 죽음의 갱이라는 ‘자사요(自死窯)’, ‘기사굴(寄死窟)’, ‘노인동(老人洞)’이라고 한다. 산 절벽이나 관목 총림 중에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동굴을 만들어 노동능력을 상실한 늙은이를 방치하였던 장소를 가리킨다.

그런 굴은 염진하(鹽池河, 단강구〔丹江口〕시 서남부에 위치해있는, 도교 성지 무당산〔武當山〕 남쪽 기슭, 동쪽으로는 백양평림업관리〔白楊坪林叢管理〕 지역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관산〔官山〕과 이어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무당산 특구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방현〔房縣〕과 접하고 있는 12개 촌락을 이루고 있다) 경내에 십여 곳이 있다. 그중 진(鎭) 정부 소재지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 2곳이 있다. 한 곳은 염지만촌(鹽池灣村) 섭가아(葉家埡)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다른 한 곳은 대령파촌(大嶺坡村)으로 6킬로미터 떨어져있다.

현지 사람들은 그런 갱이나 동굴이 옛날 연로한 노인을 데려다 놔둔 곳이라고 한다. 가족이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을 그 동굴에 데려다 놓고 어느 정도의 음식만을 마련해 제공한 후 모른 척 했다는 것이다. 결국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다시 말하면 중국에는 2000여 년 동안 ‘천(川, 사천), 섬(陝, 섬서), 악(鄂, 호북), 예(豫, 하남)’ 교차지의 한수(漢水) 유역 중부 및 그 지류에서 고대 ‘자살 굴’이 대량 발견되었다. 60세 이상의 노인이 죽음을 맞는 장소로 사용됐다는 것도 확인이 되었다.

2009년 8월, 호북성 단강구(丹江口)시 관산(官山)진 서하촌(西河村) 옆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산 중간에서 호북성 민간문예가협회 주석 유수화(劉守華)와 현지 청년 몇이서 호북성 서북쪽 무당산의 민속유적지에서 실지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멀리에서 보니 반듯하게 나있는 동굴 입구 모양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듯한 흔적이 보였다. 100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는 관목의 덤불로 은폐되어있었다. 그중 좀 큰 것은 높이 80센티미터, 넓이 50센티미터, 깊이 2미터 전후였고 굴 안에는 습기가 많았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 굴을 팠는지 연대를 알 수 없었다. 동굴 입구는 정방형으로 반듯하게 깎여있었고 동굴 내부는 평평하였다. 내부는 한 사람이 충분히 눕거나 앉을 수 있는 규모였다.

다른 ‘자살 굴’ 입구는 크기가 달랐지만 확실히 좀 길었다. 예전에 실사에 참여하였던 호북 자동차공업대학 학생은 자신이 참여하였던 당시 동굴 내부에 누워 측량을 했다고 한다. 키 좀 큰 사람 길이정도 길었다고 하였다. 현지 촌민은 그 두 개의 동굴 중 하나는 남자용이고 하나는 여자용이었다고 소개하였다. 유사한 ‘자살 굴’은 그 촌락과 인근 여가하촌(吕家河村)에 20여 곳이 있다. 관산진 전체에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40여 개의 ‘자살 굴’이 있다.

‘자살 굴’은 일반적으로 은밀하면서 험준한 절벽 근처나 절벽 위에 위치해있다. 거대한 암석을 골라 굴을 파서 만들었다. 일반적인 굴은 장방체로 넓이가 1미터, 길이는 약 2미터, 높이는 0.8미터로 두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는 크기다. 굴 입구는 작게 만들어 은폐하기 쉽게 만들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생산력이 극도로 떨어지면 국가가 부락민들이 일정한 연령이 넘어 노동력이 상실한 쓸모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해 노인들을 황량한 야산 등에 버려둬 먹지 못해 죽음에 이르도록 규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동굴들이 발견됐다는 것은 중국 민간에 상장풍습 변천의 역사 사실을 인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져오는 “노인을 버리는 풍습에서 경로사상으로 변화”하는 유형의 민간 고사의 실재 증거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동굴이 “죽게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 확실하다면 수천 년을 이어온 중국 효도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중국 고대의 균(麇)나라에는 “늙은이는 무용하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60세 이상이 되는 늙은이는 멀리 떨어진 ‘자살 굴’에 유기하도록 하고 3일 이후에는 음식을 주지 못하도록 하였다. 결국 유기되거나 방치된 늙은이는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다. 이 규정은 어느 누구도 위반할 수 없었다.

어떤 관리의 부친이 규정한 나이가 됐지만 그 관리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자신의 생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거액을 들여 부친만을 위한 굴을 조성한 후 부친을 숨겨두고서 매일 음식을 보냈다. 하루는 음식을 보내온 아들이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있자 부친은 까닭을 물었다. 아들은 부친에게 연유를 이야기했다. 원래 외국에서 쥐 형상을 닮은 거대한 동물을 보내왔는데 그것을 굴복시킬 만한 동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외국은 이것을 기화로 황제에게 신하로 칭하라 협박한다고. 그러자 부친은 아홉 근 반 되는 살쾡이를 한 마리 준비하면 분명 그 동물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부친의 말대로 하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황제가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듣고는 노인의 지혜가 사회에 쓸모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전의 규정을 취소했다고 한다. ‘노마지지(老馬之智)’인 셈으로 『두서기頭鼠記』에 보이는 내용이다.

이 『두서기』 이야기는 중국 한족 지역에서 지금(2009년)까지 10여 가지의 유사한 이야기들이 전해져온다. 만약 이와 같은 이야기가 구전문학 중 과거 사회 역사에 대한 기억의 일종이라 말한다면 지금까지 존재한 ‘자살 굴’ 유적은 구전문학의 내용이 실재했었다는 인증임이 분명하다. 즉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유의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유포, 유행한 점과 많은 유적지의 발굴에 따라 “노인을 버리는” ‘야만적’ 풍습은 고대 중국에 확실히 유행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고대에 지극히 낮은 생산력 수준 때문에 만들어졌다. 원시사회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자신들의 생존을 유지해야 만이 족군(族群, 동류 집단)이 유지될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왕왕 “삶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고 죽음은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생산력을 상실한 연장자를 “야산이나 들에 버려두거나” ‘자살 굴’에 유기해 자진하도록 하였다. 그런 풍습은 당시에는 도리에 어긋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부족하고 생존 조건이 지극히 나빴던 원시사회에서 비생산적인 구성원을 죽여 사회를 존속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도덕적 책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의 ‘기로산(棄老山)’, 한국의 고려장, 인도의 ‘기로국(棄老國)’과 마찬가지로 학술계에서는 몇 가지 설을 내놓고 있다. ‘사망 장소’라는 설, “오래고 장구한” 것이라는 설, ‘생존 법칙’ 설, “재난으로 인해 부득이 실행됐다”는 설, “야산에 매장했다가 남아 있는 유골을 매장하였다”는 설, ‘야만 풍속’이라는 설, “생산력이 낙후에 따라 행해졌다”는 설 등등이 그것이다. 사실 ‘자살 굴’ 풍속의 형성과 지속은 한수 유역의 일정한 역사시기에 생산력과 물질경제의 발전 수준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현지 사회문화와 문명의 진화 정도를 반영하고 있으면서 한수 유역의 사람들의 생명과 사망에 대한 태도와 관념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자살 굴’ 풍속은 야만적이며 낙후됐다고만 할 수 없다. 악습도 아니요 불효를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오래됐으면서 가장 소박한 사망에 대한 관념을 표출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이성적이고 세속적이며 가장 숭고한 사망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한수 지역 문화가 생명 철학적 관점에서 심후한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근거로 추론한 결과 노인을 유기하는 풍습이 생긴 원인은 대략 세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어렵과 채집 시대에 생산수준이 지극히 낮아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는 것은 인류 생존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이었다. 그래서 노동력을 상실한 늙은 사람에게 제공할 음식이 부족하였다. 둘째, 당시 사회는 몽매한 상태에 있었다. 인류에게는 경험지식이 많지 않았다. 대자연이 제공하는 먹을 것을 얻어 생존하여야 하는 건강한 체력을 잃어버린, 그래서 집단 구성원들에게는 번거로운 존재가 돼버린 상태에 놓인 자가 바로 늙은이였다. 셋째, 당시 인류는 씨족이 단위였다. 야외에 군거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늙은이를 공양하기 힘든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아시아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경노사상을 가진 지역”이라고 알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는 대가족제도를 유지해왔고 ‘경노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이런 경로사상은 언제 형성됐는지에 대해서 학술계에서는 아직까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무당산 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자살 굴’은 도대체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확실하게 이용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그런 유기 행위를 하지 않게 된 것일까? 여전이 고증하여야 할 문제다. 이런 문화유적지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면 중국과 아시아 경로사상의 확립과 상장풍습의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사실 도덕이란 역사 속 범주다. 고대에 늙은이를 유기하거나 심지어 먹었던 것은 당시 관점에서는 도덕이었다. 오히려 유기하지 않거나 식육하지 않는 것이 부도덕이었다. 노인을 존경하고 양로하는 것은 인류가 어느 정도 수준의 생산력을 갖게 된 후에 나타났다. 천지가 바뀌는 것과 같이 인류문명과 도덕의 표준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노인을 유기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부도덕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범죄행위다. 늙은이는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인격체라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다. 경로사상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니 전 세계가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미덕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
0
이 기사에 대해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네이버밴드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주간 인기뉴스 Top5
1
태풍 내습 때 와인파티? ... 부상일.오영훈 난타전
2
'대통령과 친분' vs '대통령이 선거개입?'
3
제주형 재난긴급생활지원금 ... 4월 20일쯤 신청
4
제주, 막판 여론조사서도 민주당 3곳 모두 선두
5
'5억 추가신고', 재산폭증 ... 강경필 고액재산 논란
[발행인시평] 제주 자부심 줬던 그 인연, '제2공항' 해법 머리 맞대라
[발행인시평] '촛불'의 미래, '확증편향'의 감옥에서 나올 때 가능하다
제이누리 사이트맵
제이누리  |  제이누리 소개광고및제휴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노형5길 28(엘리시아 아파트 상가건물 6층)  |  전화 : 064)748-3883  |  팩스 : 064)748-3882
사업자등록번호 : 616-81-88659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제주 아-01032  |  등록년월일 : 2011.9.16
제호 : 제이누리 2011.11.2 창간  |  발행/편집인 : 양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성철
본지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2011 제이앤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uri@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