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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의 기이한 풍속(2)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1)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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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9  1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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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굴’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더 기이한 현상이 하나 있었다. 모친 시신을 먹거나 모친을 버리는 습속이다.

중국 고대에 농경은 여자에게서 시작되었다. 여인이 농사를 발견했다고 한다. 풍작을 바라는 마음에서 부녀자는 자신을 위하여 많은 금기(禁忌)를 만들었다. 신령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에서다.

모계 씨족사회에서 노동력을 상실한 늙은 부녀자들 역시 씨족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일종의 “모친의 시신을 먹는” 풍속이 일시 유행하였다. “무술을 모방(模擬巫術)해” 노인의 농사 경험을 자손들 몸으로 전이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런 단계를 벗어난 후에는 ‘모친을 유기’하는 풍속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늙은 부녀자를 깊은 산중에 보내 대자연 속에서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이는 전술한 ‘자살 동굴’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풍속은 잔혹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당시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에는 가장 도덕적이었을 수도 있다.

둘째, 남편은 ‘산후조리’하고 산부는 밭에 나가 노동하는 풍속

원고시대에 중국에서는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남성(남편)이 집에서 ‘산후조리’하고 산모는 밭에 나가 노동하는 괴이한 풍속이 있었다. 『이물지異物志』에 “요인(獠人)은 부녀자가 아이를 낳으면 바로 밖으로 나가고 남편이 피곤한 듯 누워……”라는 기록이 보인다. 남자가 ‘산후조리’하는 풍속은 역사적 용어로는 ‘산옹제(産翁制)’, ‘의만제(擬娩制, Couvade)’라 한다.

‘산옹제’는 원시사회에서 부권제와 모권제가 경쟁한 결과물이다.

인류 최초의 혼인제도는 모계제와 씨족군혼제였다. 사람들은 그 모친이 누구인지만 알뿐 부친은 알지 못했다. 부권제가 생긴 후 남성은 ‘의만(擬娩), 가장(假裝) 출산’(자신이 아이를 낳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으로 자신이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다. 즉 ‘산옹제’는 원시사회의 유풍인 셈이다.

   

이런 풍습은 개별적이거나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많은 민족에게서 보편적이면서 장구하게 존재하였다. 현 중국의 장족(壯族), 태족(傣族), 흘로족(仡佬族), 장족(藏族) 등 모두 이런 아주 오래된 풍속을 간직하고 있다. 적지 않은 연구서들은 중국 남방 및 서남쪽 소수민족에게 ‘산옹제’가 유행했었다는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부녀자의 특수한 공능이다. 그러나 인류발전사에서 ‘남성분만(分娩)’, ‘남성 산후조리’ 즉 의만(擬娩)은 천방야담이 아니다. 사람의 주의를 끌려는 단순한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류학, 민족학은 그러한 기이한 풍속을 ‘옹산제’ 혹은 ‘산옹 좌욕(坐褥)’이라 부른다. 바로 의만이다.

다시 정리하면, 이른바 ‘산옹제’는 부인이 출산할 때 남편이 산모가 ‘분만’하는 형태를 모방해 임신한 모습을 하거나 부인이 분만한 이후 산모인양 침실에서 아이를 안고 부인을 대신해 ‘산후조리’하는 모양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산모는 밖으로 나가 생산 활동 하면서 누워서 몸조리 하는 척하는 남편에게 음식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부인이 ‘분만’하는 형태를 모방하거나 부인 대신 ‘산후조리’하는 산부처럼 하는 남편을 ‘산옹’ 혹은 ‘산공(産公)’이라 부른다.

송대(宋代) 『태평광기太平廣記』 483권에 인용된 『남초신문南楚新聞』 기록을 보면 “남방의 요인(僚人) 부녀자는 아이를 낳자마자 일어나고 그 남편이 드러누워 좌욕(坐褥, 산후조리)하며 산부처럼 음식을 먹는다”고 돼있다. ‘요(僚)인’은 바로 흘로족(仡佬族, 거라오족)의 조상이다. 무슨 말인가? 남방의 요족(僚族) 부녀자는 아이를 낳은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밭에 나가 일상생활하고, 남편은 이불 속에서 산후조리하며 마치 자신이 해산한 부녀자인 양 음식을 먹는다는 말이다.

같은 책에는 또 “월(越)의 풍속에 처자가 아들을 낳으면 3일 후 계곡 강물에서 목욕한다. 돌아와서는 죽을 쒀서 남편을 먹인다. 남편은 이불로 젖먹이를 싸서 이불 속에 앉아있다. 이를 ‘산옹(産翁)’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월’족은 바로 장족(壯族)의 조상이다.

또 명(明) 『백이전百夷傳』, 청(淸) 『순녕부지順寧府志』, 유명한 이탈리아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여행기에는 태족(傣族) 지역에서 성행하였던 ‘산옹제’ 기록이 보인다. 그중 『순녕부지』에는 태족 조상은 “아이를 낳은 후 3일이 되면 부잣집은 집에서 목욕하고 가난한 집은 강가에서 목욕한다. 부녀자는 애를 남편에게 주고 일상처럼 밥하고 장사하며 밭에 나가 일하고 집안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 때 중국 서남지역을 여행하였다. 그는 『마르코 폴로 여행기』에서 태족은 “부녀자가 자식을 낳으면 목욕 후 강보에 싼다. 산부는 일어나 일하고 산부의 남편은 자식을 안고 이불에서 40일을 누워있다. 산후조리 기간에 여러 친구들에게 축하받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의만(擬娩)’, 다시 말해 ‘산옹(産翁)의 몸조리’, ‘남편의 산후조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산옹’이 ‘분만’을 흉내 낼 때 왕왕 아야 아이고 신음소리 내며 애쓰는 모양을 한다. 거짓이지만 진짜처럼 흉내 낸다. 고통을 참고 있는 모양을 하면서 땀 흘리기까지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병이 걸리지 않게 바람을 피하도록 몸을 단단히 감싼다. 그런 후 아이를 안고 젖먹이는 흉내까지 낸다.

이런 ‘산옹제’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여러 곳, 여러 민족에게 존재하고 있다. 아메리카 아마존 우카얄리(Ucayali)강 유역의 인디언도 “남자가 산후 조리하는 의만 풍속이 존재한다. 부인이 분만할 때 남편은 침대에 누워 임산부 흉내 내며 오랫동안 보호받고 조리한다.”

프랑스와 스페인 경계지역의 바스크인(Basques)에게도 ‘의만’ 풍속이 있다. 프랑스 학자는 『민족문화民族文化』(1982년 제4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풍습에 따르면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 침상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가장한다. 모두 남편이 진짜로 아이를 분만하는 것처럼 대한다. 이웃집 사람들도 남편에게 축하하고 남편을 돌본다. ……부인(산부)을 염려하지도 않는다. 부인은 늘 하던 대로 집안일을 한다.”

그리고 인도 남부에서는 남편이 산부하고 같이 동반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의만 제도’의 변형이다. 그곳에서는 부녀자가 분만할 때 남편은 알록달록한 여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부인 옆에 놓인 침상에서 뒹굴면서 임산부가 출산하기 전에 고통을 느끼는 모양을 흉내 낸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부부 역할이 뒤바뀐 ‘산옹제’ 풍속은 강한 부권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생산이나 생활 모든 면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구 자원이나 가계(家系)까지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인류사회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특수한 결과물이다.

오랜 옛날,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모든 생활을 주관하였다. 부녀자의 출산은 재산 승계권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반면 남자는 시종 복종하여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이었다. 나중에 남성이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부계사회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때 남성은 자식은 모친 성을 따르고 모친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부친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이전의 사회 형태를 용납할 수 없게 된다. 남성은 그러한 상황을 고치려 애쓴다.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결코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향유하려고 여성만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빼앗는다. 자녀에 대한 부권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고 부녀자의 분만을 흉내 내면서 부녀자를 대신해 ‘산후조리’하는 ‘의만제도’가 만들어 졌다.

그것은 남성이 ‘의만(산옹 좌욕)’으로 세상에 “자식을 낳은 것은 바로 나다. 자식은 내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이었다. 자신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중심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시킬 목적을 달성하였다. 남편의 산부 ‘분만’과 ‘산후조리’ 풍습만 흉내 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는 모계 중심을 부계 중심으로 바꾸려는 기만의 역사극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학자 플랙(Fleck)은 『가정진화론』에서 “남성이 출산을 가장하였던 이유는 그런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자식을 낳은 사람임을 믿게 만들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남자는 회임하였고 분만했다는 것을 가장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식은 자신이 낳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부친이 자식을 낳았다는 것을 실증하면서 부계에 따라 친속관계를 따져야 맞는다는 권리를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의만(擬娩) 풍속은 바로 모계 씨족제도에서 부계제도로 옮겨가는 과도기 상태의 특징을 나타낸다. 의만 습속은 남성이 여성의 재산과 품격을 빼앗는 사기 수법의 하나였다.”

   

현재 관점에서 본다면 ‘의만 제도’는 상식에 위배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기극이요 남성이 여성을 모멸하고 남편이 부인을 업신여기는 것이라 느낄 것이다.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부권제가 모권제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나온 남성과 여성의 투쟁사의 한 장면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부권제가 모권제를 대체한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혁명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인류역사에 있어 변화무쌍하였던 대변혁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어느 제도가 옳고 그른지는 따질 수 있는 성질이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이 역사 변화 과정에서 생겨난 특이한 현상이 ‘의만 제도’다. 부친이 모친에 동화 되는 상징적 방법으로 사회성을 갖는 부계의 도를 확립하였다. 바로 ‘의만’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적용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과도기를 촉진시키는 작용도 했음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의만 제도’는 역사상 존재한 합리적 결과물이며 일정 부분 적극적 작용을 했다는 의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그러나 ‘의만 제도’는 역사의 유습일 뿐이다. 상고시대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였던 일반적 풍습이라 하여도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기이한 풍속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에도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壯)족, 흘로족, 태족, 장(藏)족 등에 잔존하고 있지만 역사의 발전,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케케묵은 낡은 풍습일 따름이다.

역사의 변화는 그런 제도가 존재해야하는 합리성이나 토양을 영원히 잃게 만들었다. 이제는 기이한 역사적 산물일 따름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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