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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회가 제주의 자존심을 지켜라
박찬식  |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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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4  13: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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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식 상황실장.

새벽 5시, 밤새 잠을 뒤척이다 일어나 앉았다. 어제 밤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바람까지 불어 아무리 전기장판과 핫팩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도 시린 공기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새벽에 잠을 못 이루고 앉은 이유는 단지 찬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여러 상황들에 대한 상념이 정신을 또렷하게 만든다. 특히 내일은 제주도의회의 공론화지원 특위구성 결의안에 대해 가부간 최종 결정이 이뤄지는 날이다. 도의원들의 양식을 믿으면서도 들려오는 이런저런 풍문들 때문에 혹시나 하는 불안이 인다. 따라서 제주도의회 의원들에게 특별히 호소하고자 이 글을 쓴다.

내일 의원들이 누르는 버튼 하나하나가 제주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역사적인 결정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제주도민의 삶과 제주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제2공항 문제에 대해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대로 따라가느냐, 아니면 우리 도민들이 스스로 결정의 주체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느냐가 제주도의회 의원들 손에 달려있다. 

제주 제2공항은 단순한 하나의 시설이 아니다. 제2공항이 지어지면 제주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를 닫아버린다. 공항을 지어놓고 애물단지로 놀릴 게 아니라면, 결국 지금보다 두 배 가까운 관광객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공군기지로 이용되든가 둘 중 하나 아닌가.

지난 20~30년 진행해온 양적 팽창 중심의 관광개발 드라이브가 쓰레기와 오폐수 처리난, 경관훼손, 교통체증, 범죄증가, 지가폭등, 생활비 상승과 빈부격차 심화 등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주도가 버틸 수 있겠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물론 여전히 관광개발을 확대해야 하고, 그래서 제2공항이 제주의 100년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생각이 어떻든 제2공항 문제는 제주도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도민사회의 치열한 토론과 합의과정과 병행해 결정돼야 할 문제다. 국토부의 결정에 맡겨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도민의 자기결정권이 새삼스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굳이 특별자치도라는 지위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치와 분권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의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표방했다. 제주도정도 자치입법권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헌법적 지위를 갖는 특별자치를 추진해 왔다.

도의회도 '도민주권의 시대'를 주창하고 있다. 제주도의 미래를 좌우할 제2공항 문제에 대해 도민들의 숙의를 거쳐서 결정하는 과정을 포기하고 거부한다면, 이 거창한 구호와 언어들은 모두 공허한 말장난으로 끝나게 된다.

사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거듭 약속했던 일이기도 하다. 원 지사는 2014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현 공항 확장방안과 제2공항 건설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이 분석한 장단점을 도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도민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도의회에도 그렇게 보고했다. 

취임 후 17억 원을 들이고 도민들의 참여를 거쳐 만들어낸 제주미래비전에서도 공항 건설 등 주요 국책사업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과정을 의무화하겠다고 명시했다. 하자고 했던 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도지사는 화려한 수사로 포장했던 약속들을 빈말로 만들고 있다. 대다수 도민의 요구임이 거듭 확인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도민들은 도지사 외 공식적으로 도민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선출기관인 도의회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내일 도의회의 결정을 바라보고 있는 건 단지 우리 도민들만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 국토부와 환경부도 제주도의회의 결정이 어떻게 날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도의회 운영위원회가 '심사보류' 결정으로 공론화지원 특위 구성안 본회의 회부를 막아버린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았던 이유다.

만에 하나 도의회가 공론화특위 구성안을 부결해 버린다면, 우리 제주도가 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특별자치'는 비웃음거리가 되고 제주도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반면 도의회가 공론화 특위를 구성하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그 의미를 깎아내리는 언사들을 내뱉더라도 결국은 그 결과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제주도민 전체를 무시하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명확히 확인된 제주도민의 뜻을 무시하고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도의회의 공론화에 대한 법적효력을 문제삼는 얘기들도 있다. 공론화를 방해하기 위한 교란술에 불과하다. 실제 공론화가 진행되면 법적 구속력에 못지않은 정치적 구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도의원들은 공론화지원 특위 구성을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우리 도민들의 자기결정의 의지를 분명하게 대변해달라. 도지사가 포기한 제주의 자존심을 도의원들이 지켜달라.

아울러 마지막으로 원희룡 도지사에게 촉구한다. 도의회가 중심이 돼 추진하는 도민공론화에 협조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혀라. 도의회에서 공론화특위가 구성된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폄훼하거나 방해한다면 도민들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도민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가닥 기대마저 배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 박찬식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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