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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제주] 고영림 제주프랑스영화제위원장 "제주, 내 에너지 원천"
"먼 타지.타국생활 27년만에 깨달은 가치 ... 내 고향에 보답"

 

누구나 삶의 원동력을 하나쯤 품고 산다. 어떤 이는 점점 불어나는 통장 잔고에서, 어떤 이는 미리 끊어둔 항공권에서 ‘내일’을 기대한다. 

 

반면 떠나온 과거를 되새기며 하루를 버텼던 이도 있다. 직선거리 9072km. 먼 타국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꼬박 12년을 보내는 동안 제주를 하루라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몽돌이 깔린 탑동 바다가 밟혔다. 잡고 놀았던 깅이(게)와 보말(고둥)이 향수(鄕愁)로 되살아났다. 오랜 타향살이로 얻은 지병인 고독 탓이었을까, 나고 자란 고향을 뒤로 했다는 죄책감 탓이었을까.

 

“태어난 고향을 얼마나 잘 알길래 남의 나라 와서 남의 것을 배우고 있나 싶었지.”

 

고영림(58) 제주프랑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의 12년을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국에서 불어불문학을 파고들면서 프랑스 문화를 배우고, 프랑스 역사를 배우는 동안 물음표가 점점 커져갔다. 내 형제들과 웃고 자란 내 집, 내 동네, 내 바다가 있는 고마운 내 고향. 내 뿌리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다른 나라 것을 배우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귀국 후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언어학을 가르치면서도 오랜 의문을 놓지 않았다. 내 고향 제주는 어떤 곳일까? 성인이 되자마자 상경했으니, 어느덧 타향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어졌다. 형용할 수 없는 부채의식이 숙제처럼 한 구석에 쌓여갔다. 언젠가는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제주로 돌아가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돌아갈 계기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2007년, 47세가 되던 해 제주방언 연구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지 27년만에 되돌아왔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타향에서부터 품은 불씨를 안고서.

 

그러나 그녀를 맞이한 것은 옛 모습을 잃은 제주 원도심이었다. 그토록 그리던 유년시절의 풍경은 온데간데 없었다.

 

 

원도심은 도시가 만들어지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한 지역을 말한다. 제주의 원도심이라고 하면 '성 안'이라고 불리는 일도1동, 건입동, 삼도2동을 비롯한 5개동이 있는 지역을 지칭한다. 

 

제주시 동문로터리 인근에서 자란 그녀는 아버지가 가구점을 운영하던 동문로터리부터 칠성로, 탑동 등 이른바 원도심을 쏘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때 그 기억을 유일한 위안삼아 고달픈 타향살이를 견뎌냈더니, 이게 웬걸. 눈앞엔 복개천이 있었다. 그녀를 끊임없이 일으켜줬던 에너지가 매립돼버린 것이다. 개발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옛 모습이라곤 없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내 고향 제주로 돌아가고 싶다’던 막연한 희망이 뚜렷한 목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제주의 시작점이자 나의 시작점인 원도심을 살려보자’

 

나를 이 모습까지 키워낸 제주, 먼 타국에서 휘청댈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제주... 이제 그녀가 보답할 차례였다. 

 

 

“왜 하필 ‘프랑스’ 영화예요? 제주랑 무슨 연관이 있어서?”

 

그녀가 제주프랑스영화제를 끌어오면서 지난 10년간 셀 수 없이 받은 질문이다. 사람들은 뭔가 현학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아끼는 사람에겐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선물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고향 제주가 소중한만큼 가진 능력 중 최고의 것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녀는 상경이 곧 ‘성공’이었던 1980년, 성인이 됨과 동시에 제주를 떴다. 먼 타지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한 이유도 명쾌했다.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고 확실히 밝히는 그녀에겐 간결하고 명료한 불어가 참 잘 어울렸다.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거리낌없이 표현하는 문화도 좋았다. 

 

서울에서 4년, 프랑스에서 12년, 또 다시 서울에서 11년을 보냈다. 27년이라니, 살아온 날 중 절반 이상을 프랑스 문화에 쏟아부은 셈이다.

 

그녀는 문화가 지역을 되살린다는 실마리를 프랑스에서 경험했다. 르네상스(Renaissance), 제주의 원도심 또한 이처럼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그녀가 정성껏 비축해온 거름을 고향에 기꺼이 양분으로 내놓고 싶었다. 가장 자신있는 방법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온 힘을 쏟고 싶었다.

 

그렇게 제주대에서 교양 수업으로 프랑스 문화를 가르치게 됐다. 학생들에게 프랑스 영화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짧은 시간이나마 섬 밖의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줬다. 학생들에게, 또 제주도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는 곧 ‘제주씨네클럽’으로 이어졌다. 장소는 일부러 제주시 영화문화예술센터를 선정했다. 원도심 속 ‘코리아극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주한프랑스문화원과 힘을 합쳐 작품성과 대중성으로 사랑받은 프랑스 영화를 매달 도민들에게 소개했다. 전문가도 초청해 프랑스 문화와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공유했다.

 

원도심에선 자연스레 옛 생각이 났다. 그녀는 어린시절 ‘동양극장 키즈’였다. 제주 동문시장 인근에 있던 ‘동양극장’에서 영화를 자주 봤었다. 일곱여덟살 무렵 어머니 손을 잡고 간 ‘아세아극장’에서 본 ‘로마의 휴일’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머니가 ‘오드리 헵번’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녀를 미용실로 데려가 상고머리를 ‘헵번 스타일’로 자르는 바람에 펑펑 울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그녀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있는 계단을 내려왔다.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그 장면처럼. 너무 짧아진 머리카락을 보고 통곡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당시 30대였던 어머니 얼굴도 그려졌다.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제주프랑스영화제를 처음 기획했을 때도 거창한 포부같은 건 없었다. 그녀가 어릴 적 본 영화를 ‘그때 그 시절’로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풋풋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프랑스영화제도 어느덧 10돌을 맞았다. 특히 올해는 한달여간 단편국제경쟁 응모작에 561편의 영화가 접수되는 등 ‘대박’의 낌새가 보인다. 장편도 비경쟁프로그램으로 15편 상영된다.

 

몇 년간 벼르고 있었던 목표도 이뤘다. 영화제 개막작으로 드디어 한국 프리미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프리미어 작품이란 영화의 최초 개봉 혹은 연극의 초연 등을 뜻한다. 

 

이제 그녀는 좀 더 원대한 앞날을 바라본다. 현재 제주를 수식하는 ‘국제자유도시’에 걸맞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극장 상영작만 놓고 보자면 제주는 국제도시는커녕 고립된 섬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한국 영화도 흥행이 잘 된 것만 들어오고, 외국 영화라곤 블록버스터(Blockbuster) 밖에 안 들어온다. 도시마다 하나씩 있다는 독립영화전용관도 없다.

 

그녀는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화를 제주에서 선보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원문 스크립트를 얻어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만 수백만원이 든다. 제주프랑스영화제를 좀 더 끌어가고 싶은 마음에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도 세웠건만 아직까지는 자금 사정이 넉넉치 않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볼 때면 모든 고충이 한번에 풀린다. 영화를 보면서 행복했을까? 색다른 경험이 됐을까? 영화를 보고난 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모든 것을 묻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참는다.

 

만약 이 모든 게 잘 돼서 제주프랑스영화제가 '국제도시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제 중 하나가 된다면 그녀가 나고 자란 제주 원도심이 제주 문화.예술의 대표적인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그녀가 '고마운 내 고향 제주'에 보답하는 방식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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