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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제왕의 가장 잔인한 매장제도 ... 순장(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4)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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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9  14: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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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10대 황제들은 자신이 죽어 묻히면 후궁도 같이 순장(殉葬)하기를 바랐다. 전제제국의 절대 권력자들은 죽어서도 재세의 영광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바람에서 생겨난 고대 매장제도, 특히 중국 고대 제왕의 매장제도 중 가장 잔인한 것이 순장이다. 진한(秦漢)시기, 순장제도는 비교적 성행했었다. 한(漢) 왕조 이후에 와서 통치자들이 비인도적인 제도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점차 폐지되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고고학자들이 주원장(朱元璋)의 능묘에서 많은 궁녀의 백골을 발굴됐다는 점이다. 한둘이 아니었다. 이는 분명 명(明) 왕조 개국황제 주원장이 죽었을 때에도 진한시기와 같은 순장제도가 실행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학을 바탕으로 국태민안을 외쳤던 황제가……. 그렇다면 어떻게 순장을 했을까? 살아 있는 채로 묻을 수는 없지 않은가.

“비빈(妃嬪)들이 잠든 후 옆에 있던 태감들이 머리를 잘라내었다. 구리 주걱을 들고 있던 집행인들은 잘려진 부위를 통하여 수은을 집어넣었다. 일정량의 수은을 집어넣은 후 바늘과 실을 가지고 두부를 봉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순장했는데 그렇게 순장된 비빈들은 살아있는 것같이 보이나, 이미 죽은 시신으로 부장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산 채로 순장하였던 역사도 있다. 노예제사회에서 행하여졌던 가장 잔혹한 제도였다. 살아 있는 사람을 그대로 순장하기도 하였고 자진하게 한 후 순장하거나 살해한 후 순장하기도 하였다.

중국 역사상 비빈을 순장하기를 바랐던 10대 황제는 누구인지 정리해 본다.

1. 진시황(秦始皇) : 순장된 사람 수가 최다.

문헌 기록으로 추론해보면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미녀를 순장한 제왕은 바로 진시황 영정(嬴政)이다. 진이세(秦二世, 호해〔胡亥〕)가 자신의 부친을 안장한 후 진시황이 생전에 거느렸던 그렇게 많던 비빈들을 어떻게 했을까? 사서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상태다. 다만 갱살(坑殺)시켰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진시황은 후궁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가 6국을 멸망시킨 후 6국의 후궁 모두 ‘접수’하였다. 진시황의 궁전에는 그야말로 “구름처럼 많은 미녀들이 있었다.” 미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살 곳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진시황은 미녀들만을 위하여 백 리에 달하는 화려한 궁전을 축조하였다. 후궁들을 살게 하면서 자신의 향락의 도구로 삼았다.

진시황이 죽자 함께 하였던 미녀들은 참극을 맞는다. 진이세는 “선제의 후궁 중 자녀가 없는 자는 나갈 수 없다”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진시황의 후궁 중에서 후손을 낳지 못한 자는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모두 순장하도록 처결하였다. 상상해보자. 구름처럼 많던 비빈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공포에 떨며 흐느끼는 울음이 천지를 진동시키지 않았겠는가. 듣는 자들 또한 온몸이 떨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진시황과 함께 순장됐을까? 『사기(史記)』에는 명확한 수를 밝히지 않았다. 사마천(司馬遷)은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응용해 죽은 자가 “심휴(甚觽)”라고만 하고 슬쩍 넘어갔다. 무슨 말인가? 지극히 ‘휴(觽)’하다는 말인데. ‘휴(觽)’는 다투다는 의미가 있다. 죽은 자의 수가 지극히 많고 많아 거대하다는 의미다.

호해가 획일적으로 시행한 그런 정책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한 왕조 이후 절대 다수와 황제들은 산 자를 죽여 순장하는 법을 다시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후손이 없는 비빈과 궁녀들은 출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간혹 살아있는 사람을 순장토록 하였던 제왕이 있었으나 악독하고 잔혹한 호해와 같은 행위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다 명 왕조에 와서 사람을 순장하는 풍습이 재차 득세하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제도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2. 주(周) 유왕(幽王) : 100명의 후궁을 산 채로 순장.

서한(西漢) 때 ‘도굴 대왕’이 출현하였다. 광천왕(廣川王) 유거(劉去)가 바로 그이다. 유거는 등급이 아주 높은 능묘를 도굴하였다. 그중 한 기가 주나라 마지막 제왕 유왕의 묘였다.

주 유왕의 묘는 무척 높게 건조돼 있었다. 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래가 전부 백악(白堊) 흙이었다. 그 흙은 실제로는 석회암석으로 두께가 1장(丈)이나 되었다. 유거의 부하가 1척(尺)을 파고 들어가니 생각지도 못한 100여 구의 시체가 있었다. 종횡으로 교차돼 있었고 서로 기댄 상태로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중 남자는 한 명 뿐이었다. 모두 여성이었다. 앉은 자세로 있거나 누워있거나 심지어 선 자세도 있었다. 입은 옷은 살아 있을 때와 똑 같았다.

남자는 분명 주 유왕일 테고. 그렇다면 100명이나 되는 여자는 누구인가? 순장된 비빈이나 시녀였을 것으로 추론한다. 그런데 역사 사료에는 주 유왕이 순장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100명이나 되는 여인들을 순장하였는데도 역사 기록이 없다? 의아한 대목이다.

순장제도는 중국 고대의 장례 악습이다. 일반적으로 부계사회에서 출현했다고 본다. 부권가장은 자기의 처와 첩, 딸과 시녀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여겼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고. 금옥보주를 부장품으로 삼을 수 있는데 사유재산인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랴.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이미 발굴된 진공(秦公) 1호의 묘주는 진목공(秦穆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능묘에 순장된 사람 수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순장 인수가 184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묘실 상하층의 평대에 순장한 관이 놓여있었다. 심지어 나체로 매장한 관도 있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 목공이 죽자 177명에 달하는 사람을 순장시켰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는 7명이 더 많았다. 어쩌면 매장 당시 현장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서경잡기西京雜記』 기록이 사실이라면 중국 고대의 순장 악습은 서주(西周)시기에 무척 성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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