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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제왕의 가장 잔인한 매장제도 ... 순장(3)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6)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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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6  14: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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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명 인종(仁宗) : 5명의 비를 순장.

인종 사후 5명의 비를 순장하였다. 귀비(貴妃) 곽(郭) 씨, 숙비(淑妃) 왕(王) 씨, 여비(麗妃) 왕(王) 씨, 순비(順妃) 담(譚) 씨와 충비(充妃) 황(黄) 씨가 그들이다.

6. 명 선종(宣宗) : 10명 순장

선종(宣宗)의 경릉(景陵)에 8명을 순장했다고 한다. 혹은 순장한 사람은 7명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명사(明史)·후비전(后妃傳)』의 기록에는 마지막에 시호를 내린 명단이 보이는데 10명으로 돼있다.

7. 명 대종(代宗) 경제(景帝) : 구체적인 인수 불명

역사서 기록에 따르면 “비빈 당(唐) 씨 등”을 순장했다고 되어있으나 구체적인 명수는 기록하지 않았다. 상기 다섯 명의 황제를 더하면 순장한 비빈의 총수는 100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순장한 비빈은 대부분 자녀가 없거나 지위가 비교적 낮았다. 예를 들어 선종과 함께 순장한 10명의 여인 중 한 사람만이 생전에 비(妃)에 봉해져 있었고 나머지는 궁녀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인종과 함께 순장된 곽 씨는 생전에 이미 귀비였고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렇다면 순장의 ‘표준’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야획편보유(野獲編補遺)』에 “귀비(貴妃)……예에 따라 순장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어찌 상은을 입었다고 자진해 하늘에 오르셨는가!”라고 한탄하고 있다. 이처럼 ‘자원’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명 왕조의 순장제도는 비교적 상세한 규정이 있었다. 어떤 비빈은 반드시 순장하여야하고 어떤 비빈은 순장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문규정이 있었다. 귀비와 같이 높은 봉호에 책봉된 비빈, 아들을 낳았거나 아들이 작위가 있으면 순장하지 않았다. 친정이 공훈이 있는 집안이면 또한 ‘은면(恩免)’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순장했다고 한다.

8. 누르하치 : 비 3명, 대비도 순장.

역사 기록에 따르면 청(淸) 왕조 초기에 황실에서는 순장을 빈번히 행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조 누르하치 사후 대비 우라나라 씨, 서비(庶妃) 아지근, 더인저를 순장하였다.

   

그런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대비를 순장시킨 것이다. 대비 우라나라 씨의 이름은 아바하이(Abahai)로 울라 버일러 만타이(Mantai)의 딸이다. 명 만력 18년 경인(庚寅) 생이다. 29년 11월, 숙부 버일러 부잔타이(Bujantai)가 그녀를 누르하치에게 시집을 보내 측복진(側福晉)이 되었다. 이전 대복진(大妃)이 죽자 대복진이 되었다. 천명11년 병인 8월 11일, 태조가 죽고 이튿날 대비를 순장하였다. 나이 37세였다. 순치(順治) 7년 8월, 도르곤은 자신의 모친을 효열무황후로 추승하고 태조 능묘에 합장하였다. 8년 2월 도르곤의 죄를 물어 황후라는 이름을 없애고 태조 능묘에 합장조차 못하게 하였다. 아들은 세 명이나 있었다. 12번째 아들 아지거, 14번째 아들 도르곤, 15번째 아들 도도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후금(後金)시기 만주족의 순장제도를 보면 남편이 죽은 후 적처는 아들이 없다하여도 순장할 필요가 없었다. 자녀를 낳지 못한 첩을 선택해 순장하였다. 순장되는 첩은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후에 적처가 가솔들을 거느리고 그녀에게 예를 행하면 “길에 올랐다.” 가장 좋은 대우는 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집안사람들이 활을 쏴 죽이거나 시위로 목을 졸랐다. 만약 첩이 순장을 거부하면 목을 졸라 죽였다. 아바하이는 아들 셋을 낳은 적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장을 시켰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홍타이지 등 여러 버일러들이 위협 아래 누르하치가 죽은 후 이튿날 순장되었다. 『청대조무황제실록(清太祖武皇帝實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여러 왕들이 황제의 유언이라 고하였으나 대비는 둘러대며 따르지 않았다. 제왕이 말하길(생략), 그래서 대비는 12일 신해 진시에 자신했는바 37세였다. 황제와 같이 안장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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