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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제왕의 가장 잔인한 매장제도 ... 순장(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7)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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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1  10: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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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홍타이지 : 2명 순장

태종 홍타이지 사후 비 장긴(Janggin) 둔다리, 안다리를 순장하였다.

둔다리, 안다리는 청초 역사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관직이 모두 ‘니루(niru, 우록〔牛綠〕) 장긴’이었다. 숭덕(崇德) 8년(1643) 태종 홍타이지가 죽자 둔다리가 먼저하고 안다리가 뒤따라 ‘자원’해 순장되었다. 당시 ‘충신’으로 받들어 특별히 예우하였다. 그녀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영광을 누렸다.

안다리는 원래 하급 관원 집안 출신이었다. 나중에 전공이 혁혁해 승급되었다. 따라서 홍타이지의 ‘지우(知遇)’의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였다. 홍타이지가 죽자 안다리는 둔다리를 본받아 자청해 순장되었다. 그들의 요구는 제왕의 찬양을 받았다. 안다리는 임종 전에 제왕에게 질의하였다 : 다른 세상에서 태종 홍타이지의 영을 만났을 때 태종께서 후사에 대하여 물으시면 제가 어찌 대답하여야 합니까? 제왕은 말했다 : 우리 제왕은 유주(幼主, 순치제)를 옹립해 잘 모실 터이니 태종께서도 보우해 주십사고 전하여 달라. 말이 끝나자 안다리는 제왕 앞에서 자진하였다. 둔다리와 함께 부장하였다.

만주족에게는 순장 풍속이 있었다. 청 태조 누르하치, 태종 홍타이지, 세조 푸린 사후 모두 순장하였다. 비빈과 시종 무관들이었다. 만주족의 귀족들도 첩이나 노복들을 순장하였다. 강희(康熙)제 재위 시 귀족들이 노복을 순장하는 행위를 금지시켰고 청 왕실도 솔선해 순장을 폐지하였다. 강희제부터 다시는 순장하는 일이 없었다.

10. 진목공(秦穆公) : 177명을 산채로 순장

역사 기록에 따르면 진목공(秦穆公)이 죽자 177명을 산채로 순장했다고 한다. 이것은 춘추시대에 규모가 가장 큰 순장에 속한다. 부장의 규모와 격식은 진목공의 유언에 따른 것일 터이다. 당시의 관습, 제도, 예의,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으로 볼 때 진목공을 위하여 거행된 성대한 매장, 후장 예식 모두는 진목공의 유언에 따라 진행됐다고 할 수 밖에.

그 177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주로 처첩과 노복이었다. 진목공은 처첩이 무척 많았고 생식력도 강하여 자녀가 40명에 이르렀다. 당시 풍속습관에 따르면 국군(國君)의 처첩 노비는 모두 사유재산이나 다름없었다. 마음대로 처리하여도 문제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죽고 난 후 사유재산이었던 처첩 노비로 하여금 황천에서 계속 시봉하도록 순장하였던 것이다.

살아 있는 채로 순장된 177명 중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포함된 모양이다. 『황조(黃鳥)』라는 시가 전해져 온다. “彼蒼者天,殲我良人,如可贖兮,人百其身!” 무슨 뜻인가? 창천이시여,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 순장했으니, 목숨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100명의 목숨으로 그들을 다시 불러오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민심은 대세를 이뤘다. 사람들의 순장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짐에 따라 살아 있는 사람을 순장하는 풍습을 서서히 없애 나갔다. 결국 진나라는 도용(陶俑)으로 순장을 대신하게 된다.

순장시킨 사람들의 방식은 위에서 말한 ‘살아 있는 채’로 묻어버린 경우도 있고 ‘자진’한 경우도 있으며 ‘안락사’시킨 경우도 있다. 이처럼 순장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끝내게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고대에 가장 상용된 수단은 ‘목을 치는’ 방식이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묘지로 데리고 가 현지에서 목을 쳐 죽였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는 사용(?)을 꺼렸다. 왜냐하면 시체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목을 직접 치지 않고 피를 빼 죽이는 방식을 택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목을 자르는 방식은 고대에 희제(犧祭, 희생을 바치며 행한 제사) 때에 일반적으로 행해졌다고 본다.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노예제사회 초기 무덤 주인의 묘혈에서는 순장시킨 사람의 머리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있었다. 시체와는 다른 곳에 묻었다. 이를 보면 생전에 머리를 잘라 죽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다른 방식도 있다. 고대 사람들이 묘를 만들 때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 습속이 있었다. 묘혈을 단계별로 파서 사람 머리와 돼지 머리, 개의 머리를 같은 방식으로 잘라내 ‘생(牲)’으로 삼아 제를 지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M1001호 무덤에는 순장시킨 사람이 164명이나 된다. 묘의 주인과 같은 묘혈에 묻힌 사람은 96명이다. 부근에 있는 많은 제사 구덩이 내에는 인체 골격이 상당히 출토되었다.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로 봤을 때 당시 순장당한 사람들의 목숨을 뺏을 때 모두 “머리를 잘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WKGM1호 무덤에도 묘실 내에 규칙적으로 34개나 되는 사람 머리가 놓여 있었다. 이 또한 순장당한 사람의 머리였다. 이것도 머리를 자른 후 안장한 것이라 볼 수밖엔.

인류! 어디까지가 야만일까? 무엇이 문명이고 문화일까? 봉건왕조 시기에 존재했었던 미개의 산물인가? 아니면 제사라는 명분으로 천명을 얘기하고 하늘의 뜻을 말하며 종교화를 이룬, 그러면서 그것을 이용해 통치하려 하였던 인류의 만행이라고만 보아야 옳은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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