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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의 기본은 기록에 의한 고증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아쉬운 문화재 복원 ... 조천진성의 연북정, 관곶연대 단상
김승욱  |  kswinn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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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8  09: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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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 및 조천진성

연북정은 잘 아다시피 조선시대 제주의 관문이던 조천포구에 객사로 쓰였다고 전해지는 건물이다.

연북정은 일제 강점기때 일제의 주재소로도 사용되었었다.

   
▲ 1950년대 연북정

연북정이 객사로 쓰였다고 하는데 필자는 객사의 기능보단 방어진지의 주요 지휘소 기능을 담당하던 건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연북정은 실내로 들어가는 출입구와 벽체가 있었고, 창문이 있었던 개구부가 여실히 보인다.  즉 실질적으로 활용한 건물의 구조가 확연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 1971년의 연북정

1971년에 보수된 연북정도 상부의 벽체와 인방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건축물로서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벽체가 남아 있다. 다만 50년대와는 달리 연북정으로 오르는 계단의 위치가 바뀌었다.

   
▲ 최근의 연북정

지금의 복원된 연북정을 보면서 아쉬운점이 많다.

벽체는 온데간데 없고 휑하니 기둥만 남아 커다란 정자를 연상케 할 뿐이다. 또한 지붕도 물매가 하늘로 치솟듯이 지나치게 세련되어 있다. 한국 전통 건축양식을 잘 모르지만 현재 연북정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보인다.

 

 

 

 

 
▲ 김승욱

연북정이 단순히 날씨 좋은날 바람쐬듯 잠시 올라가 임금님 생각하고 시 한 수 읊고 내려오던 그런 낭비적인 공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호사가들의 말대로 귀향 온 유배객들이 임금을 그리며 북쪽을 바라본다고 이름을 붙인 연북정은 더 더욱 아니다. 감히 죄인의 입장에서 제주의 주요 진지의 공무를 담당하던 건물에 사사로이 드나들 수 없었을 것이다.

복원된 지금의 모습은 마치 살점은 떨어지고 뼈대만 앙상히 남은 형상을 보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좋지 않다. 하긴 지금의 관덕정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 조천조점에 그려진 연북정에 오르는 계단
   
▲ 현재의 연북정 계단

탐라순력도의 조천조점에 그려진 연북정에 오르는 계단은 조천진성 내부에서 오르게 되어있다.  50년대 사진에서는 진성 입구우측에서 오르게 되어 있고, 70년대 이후 부터는 지금의 위치 즉 탐라순력도에서의 위치와 정 반대로 되어있다.

문화재 복원의 개념이 어떤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외한의 입장에서 볼때에도 기록에 의한 고증이 기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시설이라면 출입구도 당연히 성내에 있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 연북정에서 바라본 조천진성 서측

조천진성은 제주의 3성(제주읍성,정의읍성,대정읍성)9진 중 규모가 제일 작다고 한다. 진성내에는 탐라순력도에서 보듯 여러개의 시설들이 보이나 지금은 흔적도 없고, 무슨 보수를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진성내에 검은 비닐포장만 씌위져 있다. 조천진성의 원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것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의 발걸음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리되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돈지물

   
▲ 돈지물 남탕
   
▲ 돈지물 여탕

'돈지'라는 말은 제주어로 포구라고 지난 번에 소개한 바 있다.  뉘앙스는 포구와는 조금 다르지만 해안가에 면한 바위해안이라고 이해하면 맞을 듯하다. 조천진성에 가장 인접한 산물로서 중요한 생활용수 및 식수의 공급처였을 것이다. 돈지물의 여탕(여탕이라기 보다는 여자용)이 잘 정비되어 있고 수량도 풍부하다.

■조천연대(관곶연대)

   

탐라순력도에 관곶연대라고 표기된 연대이다. 조선시대에는 25개의 봉수(봉수대, 오름의 정상에 설치)와 38개의 연대(봉수와 봉수를 잇는 역할이고 해안의 구릉지대에 설치)가 있었다.

조천연대는 서쪽으로는 원당봉수와 동쪽(정확히는 동북)으로는 왜포연대를 잇는 연대이다. 연대를 담당하던 이가 18명이라한다. 이곳 역시 기록보다 두배이상 크게 복원(?)되어 있다. 연대는 가로세로 10척이라는 기록의 두배 이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연대가 있었던 위치에 만들어진 조형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곶

이곳의 지명은 조천관의 '관'에서 유래한다. 탐라순력도의 조천조점에 관곶연대라는 표기가 있듯 지명의 유래는 확실해 보인다.

   
▲ 관곶을 알리는 표지판

이 표지판은 정작 관곶으로 가는 길 중간에 세워져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가야 관곶이 나온다.

   
▲ 관곶의 등대

보이는 등대에서 바닷가로 내려간 곳이 관곶이다.

관곶은 제주도에서 해남과 가장 가까운거리에 위치한다. 옛날의 열악한 해상운송 여건을 생각해보면 육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배를 대려 했을 것이다. 조천포구가 제주의 관문이 된 것도 그러한 지리적인 근접성이 반영이 됐으리라 짐작한다.

■왜포연대

왜포는 '왯개'라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개'는 포구라는 뜻의 제주어이고 왯개를 한자음 차용한 것이 왜포이다.

   
▲ 왜포연대

남서쪽으로 조천연대(관곶연대)와 동쪽으로는 함덕연대와 교신하던 곳이다. 왜포연대는 다른 연대들과 달리 타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연대로서 가치가 높다. 접근로가 달리 없어 경작지 옆을 조심히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점이 아쉽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육군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일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공부를 더 한 뒤 에이스케이 건축 대표이사를 거쳐 제주로 귀향, 현재 본향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향 제주의 벗들과 제주의 역사공부를 곁들여 돌담·밭담·자연의 숨결을 더듬고자 ‘역사나들이’ 기행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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