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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상 유명한 혼군과 폭군(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7)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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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7  09: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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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괴벽의 황제, 혼군(昏君)에는 어느 제왕이 속할까?

황제란 국가의 최고 통치자다. 군정대사를 장악하고 관리하였다. 그런데 중국 역사에 혼군, 즉 어리석은 황제가 적지 않다. 국가 군정대사를 놀이로 여겼고 국가를 모든 정력을 다하여 자신의 오락거리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황당한 괴벽까지 있었다.

그중 광적으로 구기(球技)를 좋아한 황제가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인물이 당(唐) 희종(僖宗)과 송(宋) 휘종(徽宗)이다. 당 희종은 격구(擊毬, 폴로〔polo〕같은 구기)를 무척 좋아하였고 공을 다루는 기술도 뛰어났다. 그는 “내가 만약 격구로 진사 시험을 본다면 분명 장원이 될 것이다”라며 득의양양하게 허풍떨며 자랑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 번은 사천절도사에 결원이 생겼다. 그 관직에 진경훤(陳敬暄), 사립(師立), 우면(牛勉), 라원과(羅元果) 등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절도사란 지극히 중요한 관직이었다. 이런 중요한 관원을 인선하면서 희종은 격구 기술을 보이라고 명령하고 그중 가장 뛰어난 진경훤을 사천절도사로 보냈다.

송 휘종은 축국(蹴鞠, 고대 축구 일종)을 좋아하였다. 축국 기술이 뛰어난 시정잡배 고구(高俅)를 일급 무관직인 위(尉)에 앉히기도 하였다. 구기에 광적으로 빠진 황제들은 국사를 공놀이처럼 대하면서 공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인물을 관리로 앉혔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관리로 임용했으니, 그 결과는 역시 망국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상인(商人) 황제는 누구일까? 한(漢) 영제(靈帝) 유굉(劉宏)과 남조(南朝) 송(宋) 소제(少帝) 유의부(劉義府)가 그들이다. 모두 황궁 내에 시가의 상점을 모방해 점포를 차려놓고는 상인 의복으로 갈아입고 자신들이 직접 물건을 팔았다. 남조 제(齊) 폐제(廢帝) 소보권(蕭寶卷)은 그중에서도 일인자라 할 만하다. 그는 황궁 후원에 매매를 위한 시장을 만들어 스스로 비빈 궁녀들과 함께 시장 상점을 모방해 장사하면서 희희낙락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시장 관리 기구’를 설립해 총비 반(潘) 씨를 총관으로 임명하고 자기 자신을 반 씨 부하에 해당하는 관리원에 임명하기도 하였다. 황제를 포함해 ‘시장 기율’을 어긴 자는 예외 없이 채찍질했다. 황궁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목수 황제라고 할 만한 황제도 있었다. 명(明) 희종(熹宗) 주유교(朱由校)는 어리석은 황제로 유명하다. 그의 취미는 목수였다. 집을 지을 때 자신이 직접 도끼와 끌, 톱 등을 가지고 만들었다. 기구를 조작했는데 대충한 적이 없었다. 그의 침궁에는 각종 목재가 쌓여있었다. 가구를 만들 때면 밤을 새기도 하였다. 그가 목수 일에 신이 나서 가구 등을 만들 때면 신하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피했고 군정대사를 처리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태감 위충현(魏忠賢)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명나라 말기 지극히 암울한 엄당(閹黨) 전제정치가 횡횡해 망국의 길을 걸었다.

거지와 같은 행위를 좋아했던 황제도 있다. 남북조시기 북제(北齊) 후주(後主) 고위(高緯)는 그런 황당한 ‘괴벽’을 가지고 있었다. 거지가 되기를 즐겼다. 그는 후궁 화림원(華林苑)에 빈궁촌사(貧窮村舍)를 세워 자기 자신이 직접 폐포파립을 입고 길거리에서 구걸하였다. 궁핍한 백성의 삶을 직접 체험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찾아 무료하고 공허한 생활을 메꾸려했던 것일 뿐이었다. 결과는? 정사가 황폐해졌을 뿐만 아니라 업무 풍조도 나날이 나빠졌다.

연극 애호가가 된 황제도 있었다. 역사상 첫 연극 팬이 된 황제는 진이세(秦二世) 호해(胡亥)라 하겠다. 그는 등극 후 가무와 여색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 ‘나(儺)’를 기초로 한 곡을 관현악에 맞춰 가사를 읊조리게 하였다. 물론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있는 희곡으로 발전된 면도 있다. 나중에 섬서 ‘진강(秦腔)’의 전신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전문적인 희곡 음악 기구인 ‘악부(樂府)’를 설립토록 해 궁정생활에 무료함을 달래도록 하였다. 하루 종일 연극을 보며 희곡에만 탐닉하면서 궁 밖에서 벌어진 천하대란은 알지 못했다.

당(唐) 명황(明皇)도 역사상 보기 드문 희극 애호가였다. 특별히 ‘이원(梨園)’을 희곡의 인재들을 위한 장소로 삼았다. 이때부터 ‘이원’은 희곡계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향락을 쫓았다. 국가대사는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楊國忠)에게 일임하니 끝내 ‘안사의 난(安史之亂)’을 초래하였다.

청말 정권을 쥐락펴락했던 자희(慈禧)태후 또한 고금제일의 희극 팬이었다. 특히 경극(京劇)에 심취하였다. 그녀는 서양 세력이 침입해 오랑캐들의 모욕을 감수하면서, 산하가 절단 나고 백성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그저 매일 경극 구경만 하였다. 황궁과 이화원(頤和圓) 별궁에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세웠다. 경극을 구경하다 흥이 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희극 분장을 하고 태감 이연영(李連英)과 함께 공연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런 자희태후를 위하여 극을 공연하던 연극인들은 ‘내정봉공(内廷供奉, 궁내의 영인〔伶人〕)’이 돼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한 세대를 풍미한다. 유명한 연극인 담흠배(譚鑫培, 예명 소규천〔小叫天〕)는 문무백관이 가장 숭배하는 우상이었다. 그래서 북경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 “국가대사는 누가 관장하뇨, 온 성 안이 규천만 다퉈 얘기할 뿐인데!(國家大事誰管得,滿城爭說叫天儿!)”

   

중국역사에서 여색에 빠진 풍류 황제는 너무나 많다. 진시황(秦始皇)은 여색을 밝힌 첫 번째 음락 황제라 할 것이다. 6국을 평정한 후 6국 통치자들의 후비, 궁녀, 왕녀 등을 함양(咸陽)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광대한 규모의 궁전을 지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당연히 음락을 위한 것이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궁전의 후비, 궁녀들이 세수하는 물을 위수(渭水)에 버리면 수면 위로 기름띠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한(漢) 왕조의 황제들은 처첩이 너무 많았다. 정처를 황후로 봉한 것 이외에도 많은 처첩을 여러 등급으로 나눠 관리하였다. 부인(夫人), 미인(美人), 양인(良人), 팔자(八子), 칠자(七子), 장사(長使), 소사(少使) 등으로. 한 무제(武帝) 후궁을 기록한 역사서에는 “여자수천(女子數千)”으로 기록돼있다. 동한(東漢) 성제(成帝) 총비 조비연(趙飛燕)은 하도 유명하여서 ‘궁정의 음탕한 역사’로 기록돼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진(晋) 무제(武帝)의 후궁은 만 명이나 되었다. 신기록이다. 양들이 모는 마차를 타고 후궁이 머무는 곳으로 행차하며 양들이 멈추는 곳에서 연회를 열고 음락을 즐겼다. 남조 진(陳) 후주 총비 장려화(張麗華)와 공귀인(孔貴人)은 망국이 될 때까지 음락을 즐겨 남경에 연지정(胭脂井)이라는 풍류의 유적을 남겼다. 심지어 송(宋) 휘종(徽宗)은 미복으로 출궁해 창기의 집에서 이사사(李師師)를 만나 즐겼다.

명(明) 무종(武宗) 주후조(朱厚照)는 후궁 비빈들이 산을 이룰 만큼 많았으면서도 미복을 차려 입고 출궁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색을 찾아다녔다. 그가 대동(大同)에서 기녀 유미인(劉美人)과 사랑에 빠졌고 선화부(宣化府)에서 객점 주인의 딸 이봉조(李鳳姐)에 눈이 멀었던 사실은 경극 『유룡희풍游龍戲風』에 잘 묘사돼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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