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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상 유명한 혼군과 폭군(2)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8)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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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4  1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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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백치(白痴)라 할 수 있는 황제는 누가 있을까?

황위를 계승한 자가 어린애가 아니고 멍청한 천치였다면 바로 백치 황제라 할 것이다. 중국 역사상 백치 황제는 어린애 황제보다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해악은 심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백치 황제는 서진(西晋) 혜제(惠帝) 사마충(司馬衷)이다. 진 무제 사마염(司馬炎)의 둘째아들이다. 그의 형 사마궤(司馬軌)가 일찍 죽자 적장자가 돼 동궁태자가 되었다. 당시 태자를 교육하는 동궁 관리들은 태자가 백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장자 계승 원칙을 지키고 미래에 자신이 황제의 스승이라는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오랜 기간 한패가 돼 무제를 속였다. 무제가 죽자 사마충은 황제가 된다. 그가 진 혜제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가 백치라는 진상을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한 번은 외출했는데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맹한 채로 시종에게 물었다. “爲官乎?爲私乎?” 무슨 말인가? 지금 우는 개구리가 공공의 것인가 아니면 사유 재산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시종이 듣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대답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저 부연해 말했다. “관전에 있으면 공공의 것이고 사전에 있으면 개인 것입니다.”

한 번은 전국에 기황이 들었다. 굶어 죽은 백성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하의 보고를 들은 그 백치 황제는 이상하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신하에게 물었다.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고기죽을 먹으면 되지 않나?” 이 황당한 이야기는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혜제가 백치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왕공 대신들은 반란을 꿈꾸기 시작한다. 권력을 탐하는 자도 생겨났고 결당을 하는 자도 생겨났으며 황제의 자리를 뺏으려는 자도 생겨났다. 결국 골육상잔의 비극 ‘팔왕의 난(八王之亂)’이 발발하고 ‘오호(五胡)’가 중원으로 창끝을 돌리게 되면서 천하는 대란이 일었다. 민생이 도탄에 빠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혜제 본인은 흐리멍덩하게 17년 동안 황제의 자리에 앉아 갖은 시달림을 당한 끝에 독살 당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서진은 멸망하고.

또 한 명의 백치 황제는 동진(東晉)의 사마종덕(司馬德宗)이다. 진(晉) 효무제(孝武帝)의 적장자다. 어릴 적부터 말도 못하는 저능아였다. “겨울과 여름이 변하였지만 분별하지 못했다.” 무슨 말인가? 춘하추동도 알지 못할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는 말이다. 효무제는 생전에 자신의 아들이 백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위 계승과 적장자 계승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태자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하여 사마덕종은 397년 황제가 되는데 그가 진안제(晉安帝)이다.

백치가 황제의 자리에 앉았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정치를 할 수 없게 되면서 황제의 권한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공 대신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조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결국 그 백치 황제는 권신 유유(劉裕)가 보낸 사람에게 목 졸려 죽었다. 오래지 않아 동진 또한 멸망하고.

   

중국역사상 또 한 명의 백치 황제가 있었는데 당(唐) 순종(順宗) 이송(李誦)이 바로 그다. 덕종(德宗)의 적장자였다. 원래는 총명하기 그지없었고 학문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행종(行宗)이 병사하기 4개월 전 갑자기 중풍을 앓고 난 후 백치가 되어버렸다. 덕종은 뛰어난 황제였지만 태자가 백치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송에게 황위를 계승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송이 황위를 이었는데 바로 순종으로 1년 동안 재위하였다.

1년 동안 조정은 왕숙문(王叔文) 등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신 유종원(柳宗元), 유우석(劉禹錫), 한태(韓泰) 등이 지지하면서 역사상 유명한 ‘영정혁신(永貞革新)’〔영정은 순종의 연호〕을 실행해 나갔다. 그러나 그 혁신은 환관과 번진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었기에 두 세력이 연합해 반대하였다. 결과는? 순종은 퇴위를 당하여 태상황으로 밀려나고 순종의 아들 이순(李純)이 황위를 계승한다. 바로 헌종(憲宗)이다. 개혁에 참여하였던 대신들은 모두 쫓겨난 것은 당연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순종은 두려움에 떨다 이듬해에 세상을 뜬다. 당 왕조는 격렬한 권력다툼을 겪으면서 신관이 전횡을 일삼게 되고 번진이 대대적으로 발호하기 시작한다.

백치가 황제가 됐을 때 정국이 동탕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고 국가는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전제정치의 악과일 터. 전제제국주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열거한 황제들은 개인적인 문제이니 그나마 다행이라 평가 받을 수도 있는 그런 황제들이 있다. 바로 살육을 자행한 황제들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즐긴 ‘폭군’은 누구일까?

역사상 신하와 백성을 살육한 황제를 역사에서는 ‘폭군’이라 칭한다. 폭군은 살육을 즐겼다. 적국의 군신과 군민을 도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하와 백성을 죽였고, 심지어는 자신의 골육을 죽이는 데에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역사상 첫 번째로 살육을 자행한 황제는 진시황(秦始皇)이다. 그는 6국을 평정하고 제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잔혹하게 6국의 군민을 도살하였다. 천하가 통일된 후 시황제가 되자 전국의 백성을 가상의 적으로 삼아 엄격하면서도 잔혹한 법령을 제정해 백성이 ‘불궤(不軌)’하는 모든 행동을 시시때때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게 진압하였다. 심지어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다고 의심이 들면 백성을 소위 ‘복비(腹誹)’했다는 죄명을 씌워 ‘기시(棄市)’하였다. 어찌 마음속을 알랴만 의심이 들면 하나하나 거리로 끌고 가 효수해 버렸다.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자행해 ‘폭군’이라는 오명을 만대에 남겼으니.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명대 개국 황제 주원장(朱元璋)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명사明史·문원전文苑傳』의 기록을 보면 그가 도살한 지식인의 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역사에 다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당시 유명한 시인 고계(高啓)는 요참(腰斬)을 당했다. 고계와 ‘4걸’이라 병칭되는 양기(楊基)는 박해를 받아 징역을 살던 공장에서 죽었고 장우(張羽)는 영남에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으며 여분(黎賁)은 옥에서 굶어주었다. 고계와 ‘십재자(十才子)’로 불리는 사예(謝隷)도 피살되었다. 이외에도 유명한 문인 소백형(蘇伯衡), 부서(傅恕), 왕이(王彝), 장맹겸(張孟兼), 두인(杜寅)이 피살됐으며 왕몽(王蒙), 왕홍(王洪)은 옥에서 죽고 대량(戴良)은 자살하였다. 이루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문자옥(文字獄)을 자행한 것도 한 둘이 아니고.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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