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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4)

‘세븐’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존 도(John Doe)는 여느 연쇄살인마와는 분명 다르다. 연쇄살인마들은 야구선수가 ‘연속 안타’의 기록에 도전하듯 10명, 20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살인행각을 이어가지만, 존 도는 미리 7명의 살인을 예고하고 정확히 매일 1명씩 일주일간 처치한다. 참으로 절제되고 강렬한 연쇄살인이다.

 

 

연쇄살인마들이 대개 ‘만만한 상대’를 골라 이유 없이, 혹은 충동적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반면, 존 도에게는 살인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대단히 ‘사회적인 대의’를 위한 것이다.

 

연쇄살인마를 ‘나쁜 연쇄살인마’와 ‘좋은 연쇄살인마’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도적에도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Robin Hood)가 있듯 ‘의적’으로 부를 만한 도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존 도에게는 최소한 ‘의로운 연쇄살인마’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존 도’라는 이름은 ‘신원 미상자’라는 의미다. 대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연고자가 없는 것을 지나 아예 살아온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이름치고는 참으로 쓸쓸한 이름이다. 영화 속 살인마 존 도는 스스로 ‘존 도’를 자처한다. 고등교육을 받고 웬만큼 재산도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평생을 현금만을 사용해 ‘은행 기록’도 전무하고, 스스로 지문을 지워버려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게 한다. 존 도가 이처럼 철저히 자신을 파괴하고 내던지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법은 많은 나라의 어휘에서 ‘정正(Right)’, ‘정의正義(Justice)’와 동의어(독일어 Re cht·라틴어 Iustitia)다. 그만큼 법과 정의는 한 몸이 돼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현실에서 법과 정의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은 듯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법과 정의가 따로 놀거나, 혹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기조차 한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Rudolf von Jhering)’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을 남긴다. 다른 말로 하면 ‘도덕은 법의 최대한’이 되겠다. 사회생활이 단순했던 시대에는 도덕규범만으로 충분히 사회질서의 유지가 가능했지만, 사회생활이 복잡다기해짐에 따라 도덕규범에서 법규범이 서서히 독립하게 됐다. 법이 독자적인 영역과 역할을 가진 이후에도 법은 도덕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며 법의 구속력의 근거는 도덕에 있다는 근본정신은 변함없다.

 

그러나 예링이 자조하는 것처럼 ‘뛰어난 법률가는 좋은 이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법의 현실이다. 정의와 도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설정한 법이 어찌된 일인지 점점 정의와 도덕으로부터 멀어지고, 급기야 전혀 별개의 것처럼 돼가는 현실에 존 도는 분노하고 스스로 나서서 법이 팽개쳐 버린 정의와 도덕의 실현에 나선다.

 

정치인들과 재벌, 권력자를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우리가 그들에게 원하는 정의와 도덕의 문제를 법이 대답해 주지 못한다는 현실에 존 도처럼 답답해지고 분노하게 되는 오늘이다.

 

 

그들은 보통사람보다 대단히 많은 혜택과 권리를 누리면서도 의무만큼은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법이라는 ‘최소화된 도덕’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은 도덕의 최소화인 법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최대화인 도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달에 10억원을 버는 사람과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내는 세금이 똑같이 10만원이라면 그것이 공정하고 정의롭고 도덕적인 일일까. 가진 자들에게는 더 많은 ‘도덕적 의무’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일일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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