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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49)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청대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 3대 황제가 재위한 140년간 망문생의(望文生義, 본래 의미를 잘 검토하지 않고 문자를 힐끗 보고 그럴싸한 해석을 내림), 포풍착영(捕風捉影,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붙듦), 임의라직(任意羅織, 제멋대로 모해함) 등의 형태로 죄상을 들어 지식인을 박해하고 그들 가속과 족인들까지 도살하는 문자옥을 서슴지 않았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였을 뿐만 하니라 처자와 자녀조차 죽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죽은 자를 부관참시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으니 그야말로 “살인을 초개처럼 여기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구나(殺人如草不聞聲)”이었다! 어찌 사람이 초개보다도 못할까. 듣도 보도 못할 정도로 살인을 자행하였다.

 

많은 폭군들은 백성과 지식인을 도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부하인 문신과 무장에게도 칼을 휘둘렀다. 중국역사상 공신을 주살하기로 이름 난 인물은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명 태조 주원장이다.

 

유방은 원래 군력이 약했다. 부하 한신(韓信), 소하(蕭何), 장량(張良), 번쾌(樊噲) 등의 문신과 무장의 책략과 무공을 등에 업고서 팽월(彭越), 영포(英布) 등 투항한 장수의 협력아래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항우(項羽)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후 천하를 얻었다. 그런데 황제에 자리에 앉자 “공이 높아 주인을 떨게 만드는” 부하들의 군세가 위협이라 느끼게 된다. 결과는? 그의 처 여후(呂后)의 협조를 받아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 내면서 원로 공신들을 도살하기 시작하였다.

 

유방은 공이 뛰어나고 책략이 특출한 한신에게 제일 먼저 칼날을 돌렸다. 모반을 획책했다는 죄명을 씌워 참수한 후 3족을 멸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팽월을 죽여 육장(肉醬)을 만들고 3족을 멸했다. 연이어 영포도 주멸하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정공(丁公)조차 주살한다. 그리고 유방과 가장 가까웠던 개국공신 번쾌와 소하 또한 독수를 피하지 못했다.

 

다른 한 명인 명 태조 주원장은 황제의 보좌에 등극한 후 먼저 『대명률』을 제정하고 감히 ‘모반’을 획책한 자는 주종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능지처참하도록 규정하였다. 연루된 친족도 16세가 넘으면 모두 참했다. 호유용(胡惟庸)은 그가 공신을 살육하기 시작한 첫 대상이었다. 전후로 연루돼 죽임을 당한 사람이 3만 명이나 된다. 나중에 또 모반을 꾀했다는 죄명을 씌우고 대장군 남옥(藍玉)을 주살하고 연루돼 죽임을 당한 사람은 13족, 1.5만 명에 달했다. 전장에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던 전공이 혁혁한 대장 부우덕(傅友德)도, 주원장이 ‘충현집어일신(忠賢集於一身)’이라 칭송하였던 태자의 스승 송렴(宋濂), 자신의 자녀 친자, 백관의 수장에 앉혔던 이선장(李善長) 등 원로중신 등 모두 주살 당하거나 가산을 몰수당하는 화를 입었다.

 

후대 역사가는 주원장을 평하여 “공신의 힘을 빌려 천하를 얻고 나서 천하가 안정되자 천하를 얻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모두 주살했나니, 그 잔인함은 천고에 다시 보지 못하리라.”(조익趙翼)

 

여후 무측천(武則天)도 정권을 장악하기 전후로 황실 골육 간 살육을 자행하였다. 그녀가 고종(高宗)의 황후가 되기 전 고종 면전에서 정적들을 모함하였고 결국 자기의 손으로 자신이 낳은 딸을 목 졸라 죽였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후에는 자신의 친생자 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당(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도 하루사이에 자기의 친생자 셋을 죽였다.

 

남북조시기 석호(石虎)는 찬위하기 위하여 황제인 형 삼홍(三弘)을 죽이고 형수와 조카를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주살하였다. 황제가 된 후에도 살인을 그치지 않았다. 가정의 조그마한 일로 자기의 친자 석선(石宣)을 잔인하게 죽였고 동시에 석선의 처와 아홉 살 난 아들도 함께 죽여 버렸다.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고양(高洋)은 아들 고은(高殷)을 황태자로 앉혔다. 고은이 우둔하고 유약한 반면 여러 숙부들은 용맹하였다. 고양은 후환을 없애려고 ‘막수유(莫须有, 어쩌면 있을 것이다)’의 죄명을 씌워 친동생 고준(高浚), 고환(高涣)을 불태워 죽였다. 고양이 갑자기 병이 들어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자기 아들의 황제 자리가 여러 동생들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해 동생 고연(高演)에게 “찬위하려면 찬위해도 되지만 죽이지는 마시게”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고은이 황위에 오르고 얼마 되지 않아 고연에게 살해된다.

 

고연은 음모를 꾸밀 때 그의 동생 고담(高湛)에게 연락하고 “일이 성사되면 너를 황태제(皇太弟)로 삼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즉위했으나 황제의 자리에 앉은 고연은 그의 아들 고백년(高百年)을 황태자에 앉혀버렸다. 고연이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고백년이 동생 고담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고담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고담에게 자신의 아들을 잘 돌봐 달라고 부탁까지 하였고. 그러나 고담이 황제가 된 후 고백년을 주살해버렸다.

 

이런 일들을 자행한 ‘황제’란 과연 무엇일까? 황제는 ‘지존’이다. 그럼 백성은? ‘민초’일 따름이다. 역대 왕조의 권력은 백성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자가 스스로 ‘교취호탈(巧取豪奪)’한 것이다. 교묘한 수단이나 힘으로 빼앗았다.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맞는가? 아니다. “정권은 창끝에서 나온다.” 빼앗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권력은 백성이 주는 것이 아니니 양도할 수 없다. 갖고 싶다면 나름의 솜씨를 발휘해 얻든지 아니면 필사적으로 싸워 얻어라!

 

백성은 ‘신민’일 따름이다. 신민이란 신하로 복종하는 백성이란 뜻이니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 더군다나 천하 강산은 통치자가 싸워서 빼앗은 것이 아닌가. “짐이 곧 국가다.” 이것이 제국이요, 정점에 ‘황제’가 있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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