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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상 가장 기이한 황제들(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50)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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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7  11: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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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란 현재에는 뭐 그리 별스럽지 않은 언어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야 유행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은 고대 중국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중국에는 오래전부터 동성애가 존재했었다. 한(漢) 애제(哀帝) 유흔(劉欣)이 바로 그다.

동현(董賢)은 재능 있고 잘생겼으며 시원스러웠다고 한다. 어사(御史) 동공(董恭)의 아들로 태자사인(太子舍人)에 천거되었다. 애재는 그와 왕래하는 사이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 곧바로 동문랑(董門郎)에 봉하고 그의 부친을 패릉령(霸陵令)에 봉했으며 광록대부(光禄大夫) 직을 하사하였다. 그러고 나서 오래지 않아 동현을 또 부마도위시중에 봉했다. 『한서漢書·동현전董賢傳』에 “출궁하면 오른쪽에 함께 탑승해 모셨고 들어오면 곁에서 모셨다. 10일 사이에 거액을 하사하니 그 존귀함이 조정을 뒤흔들었다”라고 기록돼있다.

그 둘은 언제나 함께 하였다. 같은 침대에서 공침하였다. 한 번은 같이 잠을 자다 애제가 먼저 깼다. 그런데 동현이 자신의 옷깃을 깔고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애제는 자신의 ‘애인’이 잠에서 깰까봐 가위로 자신의 옷깃을 갈라내었다. 그토록 사랑하였던 것이다. 애제는 또 동현을 위하여 황궁과 비슷한 궁전을 건축한다. 황제가 쓰는 용품 중 가장 좋은 것을 동현에게 선물로 주고 자신은 질이 낮은 물건을 사용할 정도였다.

애제는 자신의 동성 연인과 세세생생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죽어서도 함께 하기 위하여 자신의 능묘 옆에 동현이 죽으면 안장할 능묘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한서·동현전』의 기록에 따르면 애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면서 “내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양하였던 예를 본받으려고 하는데 어떠뇨?”라고 해 대신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강산까지 버릴 정도의 ‘애정’은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한마음 한뜻으로 생생세세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탐닉일지니. 국가대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애제가 죽은 후 10년도 되지 않아 왕망(王莽)이 찬위해 신(新) 왕조를 세운다.

   

장사치(市儈) 황제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제(齊) 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 소보권(蕭寶卷)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명한 혼군이다. 쥐잡기, 늦잠 자기, 백성 쫓기, 나가 놀기…… 각종 기행은 모두 행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괴벽은 점포를 열었다는 데에 있다.

『남제서南齊書권7·동혼후東昏侯』의 기록을 보자. 동혼후가 “또 원에 시장을 열었다. 태관이 매일 술과 고기 생선을 진상하면 궁녀들에게 고기를 썰고 술을 팔게 하였다. 반비(潘妃)는 시령(市令)이 되고 황제는 시괴(市魁) 행세하면서 법을 집행하였다. 쟁의가 생기면 반비가 판결하였다.” 시령이란 시장을 관리하는 장이고, 시괴란 시장을 관리하는 하급관리다. 황제와 비가 국가대사를 논하지 않고 시장을 관리하는 장과 관리 행세를 하며 놀았던 것이다. 그와 놀이를 하는 사람이 몇 천 명이나 되기도 해 도성의 백성이 놀라 도망 다니거나 숨어야 했을 정도였다.

『남사南史·제본기하齊本紀下』에도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또 수로를 열어 보를 만들고 몸소 배를 끌었다. 보의 위에는 상점을 열고 앉아서 고기를 썰었다.” 동혼후와 반기의 괴벽 행위는 당시 널리 퍼졌다. 다음과 같은 민요가 생길 정도였다. “열무당(閱武堂)에 버드나무 심어 지존은 고기를 썰고 반비는 술을 파네.” 당당한 일국의 군주가 이처럼 장사치처럼 행동했으니. 그가 즉위하고 2년 후 소연(蕭衍)이 기병해 건강(建康, 현 남경)을 포위하였다. 장사꾼 행세하였던 황제는 부장에게 피살된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럼 보살(菩薩)이라 부를 수 있는 황제는 누구일까?

중국역사상 ‘삼무이종(三武一宗, 북위〔北魏〕 태무종〔太武宗〕, 북주〔北周〕 무제〔武帝〕, 당〔唐〕 무종〔武宗〕, 오대〔五代〕 주〔周〕 세종〔世宗〕)’이 불교를 억압하였다. 그런데 또 양(梁) 무제(武帝), 무측천(武則天), 당(唐) 중종(中宗)처럼 그렇게 독실하게 불교를 믿었던 신도도 있다. 그중 ‘황제보살(皇帝菩薩, 대신들의 상소문에 그렇게 호칭했다)’ 양 무제 소연(蕭衍)이 가장 두드러진다.

무제는 대대적으로 불교를 선양한다. 거금을 들여 불사를 일으키니 전국에 크고 작은 사찰이 2846개나 있었다. 그중 대애경사(大愛敬寺), 지도사(智度寺), 해탈사(解脱寺), 동태사(同泰寺)의 규모가 가장 컸다. 당대 시인 두목(杜牧)은 일찍이 “남조의 480사찰, 연무 속에 누대가 얼마였던가”라고 감탄하고 있을 정도다. 무제는 또 다량의 불교 저작을 남겼다. “비록 정무가 많았지만 더욱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촛불이 켜지면 시작해서 늘 술시까지 있었다.” 저작의 분량이 많은데 그중 『제지대열경강소制旨大涅經講疏』는 101권에 이른다.

그와 동시에 무제는 유불도 삼교 동원(同源) 이론을 창립하였다. 유교와 도교가 불교에서 기원했다고 본 것이다. 그리도 불교도는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계율을 제창하였다. 이전 불교에는 그런 규정이 없었다. 그는 『열경涅經』 등 상승불교의 내용을 가지고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썼는데 이때부터 솔선수범하기 위하여 고행승과 같은 수행을 하였다. 매일 한 끼 식사만 먹고 술과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작은 궁전의 암실에서 머물면서 모자 하나를 3년이나 썼고 이불 하나를 2년이나 덮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무제는 세 번이나 사찰에 사신(捨身)하기도 한다. 대통(大通) 원년(527)에 그는 갑자기 동태사로 가 노예처럼 지내며 승려와 함께 생활하였다. 나중에 대신들이 “속죄하니” 되돌아갔다. 2년 후 다시 사찰로 들어갔다. 태청(太清) 원년(54), 84세인 그가 세 번째로 사찰에 사신해 1년 3개월을 살았다. 세 번째로 “속죄해” 되돌아가면서 낸 속죄비가 4억이나 되었다.

부처님은 그 충실한 신도를 보우하지 않았다. 태청 3년549 후경(侯景)이 정변을 일으켜 건강(建康, 현 남경)을 무너뜨렸다. 보살 황제는 포로가 돼 나중에 굶어 죽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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