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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5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마지막으로, 어린이 황제는 누가 있었을까?

 

중국 봉건전제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잡고 황위에 오른 개국 황제들은 정권과 천하 강산을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여겼다. 그 사유재산은 절대 남에게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황제는 절대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위를 영원히 점유하려 하였다. 그렇기에 황제들은 모두 장생불로를 도모한다. 그러나 태어난 자가 어찌 죽음을 피할 수 있으랴. 태어난 자는 모두가 죽는 것이니.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황위를 가장 가깝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양위하려 하였다. 바로 아들이다. 친자야 말로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황위 세습제도다. 설사 황자가 아직 어린 나이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아직 강보에 쌓여있다고 할지라도 황위를 계승하였다. 그렇게 중국역사에는 많은 어린이 황제가 존재한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역사상 어린이 황제가 29명이나 된다고 한다. 중국역사상 최초의 어린이 황제는 서한(西漢)의 소제(昭帝)로 기원전 86년에 황위를 계승하였다. 최후의 어린이 황제는 청대 선통(宣統)으로 1909년에 황제가 되었다. 그중 나이가 가장 어린 어린이 황제는 동한(東漢) 상제(殤帝) 유륭(劉隆)으로 태어난 지 100일 만에 황제에 옹립됐다. 그야말로 애기 황제다. 어디 이뿐이랴. 10세 이하의 황제로는 동한의 충제(沖帝)와 동진(東晉)의 목제(穆帝)는 2세, 북위의 효문제와 청대의 선통은 3세, 청대 광서(光緖)제는 4세, 동진의 성제와 북위의 효명(孝明)제, 그리고 남송의 공제(恭帝)는 5세, 청대의 순제(順帝)와 동치(同治)제는 6세, 후주(後周)의 공제와 원대의 영종(寧宗)은 7세, 서한의 소제와 동한의 질제(質帝), 삼국시대 때 오(吳) 폐제(廢帝), 청대 강희(康熙)제 등 7명은 8세, 서한의 평제(平帝)와 동위(東魏)의 효정(孝靜)제 등 4명은 9세, 동한의 화제(和帝)와 삼국시대 위 폐제 등 5명은 10세였다. 16세 이하의 황제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어린이가 황제가 되면 국가대사를 관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태후나 외척, 권신들이 섭정하였다. 섭정자들은 자신의 정치 요구에 따라 권력을 움켜잡고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였다. 어린이 황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폐위시키기도 하였고 주살하기도 하였다. 아니면 황위를 찬탈하기도 하였고.

 

어린이 황제가 성년이 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었을 때에는 권력을 회수하기 위하여 섭정자와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 참극을 연출한다. 그런 정치의 익살극은 중국역사라는 무대에서 계속계속 연출된다. 그렇게 황궁은 칼날이 번뜩이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왕망(王莽)이 한 평제와 말제를 독살하였고 양익(梁翼)은 한 질제를 독살하였다. 강희제는 오보이(Oboi)와 같은 권신들을 수금하였고 자희(慈禧)태후는 잔혹하게 광서제를 처리하였다. 이러한 예는 한둘이 아니다. 이루 셀 수 없이 자행되면서 중국역사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통치자들이 권력투쟁에 몰두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도살을 자행할 때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 경제 활동은 중단된다. 그리고 백성은 고통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2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제국(帝國)’의 비극이다!

 

전제주의 ‘제국’은 수탈기관이나 다름없었다. 농부와 닭을 생각해 보자. 농부가 닭장을 소유했으니 닭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닭 입장에서는 농부가 자신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마음대로 잡아먹거나 팔아치우는 착취를 하고 있는 셈이다. 농부와 닭, 황제와 백성. 같은 맥락이다. 농부는 돈으로 밭이나 닭장을 사서 ‘소유’하였고, 황제도 무력으로 천하를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제국이 끊임없이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말한 것은, 닭을 죽이면 달걀을 얻을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국의 최대 비극이었다.

 

“넓은 하늘 아래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소, 바다에 이르는 땅의 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이는 없소이다.(普天之下,莫非王土.率土之濱,莫非王臣)”(「小雅·北山」)

 

천하가 칼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소유권에 대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이 무력으로 천하를 손아귀에 쥐었기 때문에 이런 천하의 권한은 오직 황제 자신만의 것일 뿐이다.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그 소유권 안에 있는 만물에 대한 통치권도 획득된다. 제국의 통치 질서의 근본적인 생리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제국’이 2천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은? 우리는 과연 이런 범주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탈피했는가? 그런가? 민주(民主),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리라.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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