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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일깨운 도전 ... 검사, 변호사에서 이제 국회로[파워人터뷰] 구자헌 "쪽방살이 마당이 꿈, 처음에는 출세가 목표"
"지금은 사회부조리 고치고 싶어 ... 변호사로서는 한계"
고원상 기자  |  kws86@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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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5  11: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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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헌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제주시갑 자유한국당 예비후보.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어린 시절 그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제주시 삼도동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 6평 남짓 자그마한 집구석에서 형제들과 한 방을 썼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뿐이었다. 출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의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그를 지금의 그로 만든 건 아니었다. 풍족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그를 더 채찍질 한 건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의지였다.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새 삶을 꿈꾸는 사람, 구자헌이다.

그는 1968년 제주시 삼도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경상도 출신으로 그가 태어나기 2년여 전 제주에 들어왔다.

어디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제주에 가면 먹을 것이 있더라 하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부모는 제주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밥벌이를 했고, 어머니는 바구니 행상으로 생선을 팔러 다녔다.

형과 여동생도 있었다. 다섯 가족이 사는 집에서 그는 마당을 가져보는 꿈을 꿨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런 소망은 사회구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린 그였지만 불공정 사회란 의문이 어렴풋 그의 뇌리에 밝히기 시작했다.

한때의 방황으로 그는 고교를 자퇴했다. 하지만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삼수 끝에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 전인 1997년에는 사법고시도 패스했다.

   
▲ 구자헌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제주시갑 자유한국당 예비후보.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검사로 그는 법조인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가 내세우는 불공정 사회의 한 단면에 그는 정면으로 맞섰다. 선불금 사기죄로 고소당한 탈매춘 여성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 사법사상 첫 사례였다.

“여성들이 하나의 도구로 전락되고 성매매를 하는 포주와 남성들의 거래대상으로 전락하는 느낌이었다. 힘이 없는 이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였고, 족쇄가 풀리지 않는 구조였다. 그 구조를 깨고 싶었다.”

2005년 8월 그는 검사 생활을 접고 부산에 새둥지를 틀었다.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산에서의 삶이 그저 그랬기에 상경,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이어갔지만 조금씩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서울살이 2년만에 그는 도피하듯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제주에 내려온 게 2011년. 제주에서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꿈과 잠시의 휴식을 이어가던 중 그는 선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로 집권당이 풍비박산이 날 무렵 '평가절하'된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2017년 자유한국당 제주시갑 당협위원장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그의 발걸음은 어느 덧 제21대 총선까지 와 있다.

“자유한국당이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부분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일부 부정적인 인식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지는 부분도 있다. 그런 인식의 틀을 깨지 않는다면 자유한국당은 건전한 보수로 성장할 수 없다. 그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총선을 통해 건강한 보수를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이다.

그는 이외에도 공정과 서민을 강조했다. 어린시절부터 그의 몸에 밴 단어다. 그는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 구자헌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제주시갑 자유한국당 예비후보.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제주시에서 태어났나?

"제가 태어난 곳이 삼도동이다. 인근에 작은 하천이 있었는데, 거기에 판자집까지는 아니지만 슬레이트 집들이 약 20가구 정도 몰려 있는 곳이 있었다. 저희 부모님이 거기에 터를 잡았다."

▷부모님은 제주 분이 아닌가?

"경상도 분이다. 1966년 쯤에 제주에 들어오셨다. 그 때는 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제주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제주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제주에서도 거의 최빈층이었다.  동네 자체가 가난한 동네였다. 그 가난한 시절이 저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가난 덕분에 성숙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또래들과 어울리면서도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생각도 가졌다. 학교로 가니까 나와 다른 친구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받는 사회적 대우가 다르다는 것도 그 때 느꼈다.

아버지는 일용직 생활을 하셨다. 남의 밭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바구니에 생선을 놓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한라산에 가서 채취하는 산나물, 약재 등을 팔기도 했다. 또 형과 여동생이 있는데 조그마한 방에서 같이 자랐다. 제 꿈이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마당이라는 것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문을 열고 나오면 도로였다. 그 속에서 가난을 느꼈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생각한 꿈이 출세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약간의 방황이 있었다. 고등학교는 오현고 진학을 했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방황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에 대한 애정이 많이 없어지고, 또 친구들 사이에서 ‘학교와 제주를 벗어나자’는 말이 나오면서 2학년 말에 학교를 그만 뒀다. 사실 친구들 사이에 의기투합이 있었는데 그것을 실행에 옮긴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 두고 1년 정도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난 후에는 어디로 갔나?

"나보다 먼저 학교를 그만 둔 친구가 있는 곳이 경기도 역곡이었다. 거기서 두 달을 살았다. 그 다음에 형이 있는 창원에 가서 신발공장을 다녔다. 두 달 정도 창원에 있다가 그 다음이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제주에 내려왔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학교를 그만 둔지 1년 정도 지난 후부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검정고시 보고 학력고사를 봤는데, 처음에 연세대에 썼다가 떨어졌다. 대학을 처음 준비한 것인데 1987년인지 1988년인지 싶다. 1989년도에는 한양대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군대에 갔는데 그 후에 다시 거기서 시험을 보고 고려대로 들어갔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고대 법대로 갔다."

   

▷ 법대를 간 이유가 있나?

"어릴 적 꿈이 출세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유일한 사다리 같았다. 이 사회에서 가진 것도 없고, 그래서 사법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려대를 졸업하지는 못했다.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그 당시 졸업까지 교양학점에서 2학점이 부족했다. 이것을 다 이수하려면 1년을 다시 보내야 해서 결국 2학점을 포기했다. 이후 연수원에 들어가니 제적됐다. 재입학도 가능하다고 하고 2학점을 마저 딸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미뤄두고 있다. 졸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검사시절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탈매춘 여성 무혐의 건이었다.

"사실은 평범한 사건이었다. 어느날 출근했더니 사건이 여러가지 올라와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사건이었다. 두 명의 여성이 윤락업소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선불금 32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틀만에 도망을 친 사건이었다. 그 당시 여성들의 나이는 21살, 20살이었던 것 같다

선불금을 받고 도망갔으니 사기가 된다. 그런데 그게 저는 단순 사기로 결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선불금을 받고 도주를 했지만 이들에게 사기를 적용하는 것은 결국 업주를 보호하는 결정이었다.결국 힘이 없는 이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이었고, 족쇄가 풀리지 않는 구조가 되는 것이었다. 여성들이 사실 그런 업소에서 돈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아니다.   

또 여성들을 업소에 데리고온 남자들이 있었다. 그런 구조를 보니 남자들이 여성들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선불금도 남자들이 다 가져갔을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 관행처럼 단순 선불금 사기로 결정하기는 싫었다.

고민을 한 결과가 단순 선불금 사기로 처리하는 것은 결국 불법을 자행하는 업주의 편에 서는 것이고, 그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락업소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여성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계약이 아니라는 점에 강조점을 뒀다. 포주와 여성을 데리고 온 남자들의 거래일 뿐이다. 여성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고 진정한 의사에 따른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사기가 성립될 수 없다고 결정을 했다.

그 결정으로부터 6개월 후인가, 법무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어디서 알았는지 모 의원이 법무부 장관에게 이 사건 이야기를 했다. 그런 후 여성단체 쪽에서 사회적 반향이 되고, 사회적으로 알려져서 그 해 선불금 제도가 없어지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검사 생활을 5년 반 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변호사 개업이 언제인가?

"2005년 8월이었다. 30대 중반이었다. 부산에서 개업을 한 이후에 어느 정도 생활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사업을 키워서 회계사도 같이 하다가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지쳐갔다. 결국 2년만에 서울 생활을 접었다. 도피처 비슷하게 제주을 선택했다. 제주에 내려온 것이 2011년이다. 제주에 내려왔더니 ‘구자헌이 왜 내려왔을까’ 부터 시작해서 ‘정치하러 왔다’는 말도 돌았는데 사실은 도피였다.

정치에도 약간의 관심은 있었는데 당시에는 내 삶을 정리하는 것에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2017년 10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 자유한국당이 거의 침몰하고 있던 상황에 처했다. 저는 오히려 그게 기회라고 생각해서 자유한국당 제주시갑 당협위원장을 뽑는 자리에 도전했다. 주식으로 치면 '블루칩'인데 저가매수를 하는 느낌이었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좀 더 크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가능한 것이 정치라고 봤다. 또 그것을 통해 내 존재가치를 실현하고 싶었다. 자아실현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당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도당위원장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 이번 21대 총선 출마 뜻을 밝혔다.

"2017년에 정치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미 총선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한국당이 대폭 변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한국당이 나라를 발전시킨 것은 맞는데, 현재 자유한국당에 있는 의원 중 일부는 산업화 과정에서 단물을 많이 빨아먹은 사람들로 인식되고, 그런 행태를 후대로 대물림하는 정치세력으로 보이고 있다. 이런 인식의 틀을 깨지 않는다면 자유한국당이 건전한 보수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보수 쪽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 저는 그 부분에서 적합하다고 감히 생각한다."

▷지난해 9월에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한 말 중에 서민보수, 개혁보수, 공정보수가 있었다.

"저는 공정하지 않은 것을 싫어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청년들의 좌절이나 조국사태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 뿐만 아니라 의료체계라던가 다양한 사회서비스, 채용 과정 및 경쟁 시스템이 공정해야 한다고 본다.

   
▲ 구자헌 변호사가 지난해 12월17일 오전 11시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공식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서민보수는 부의 대물림, 권력의 대물림으로 형성된 보수의 이미지를 깨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단지 구호로서의 서민보수가 아니라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그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고 본다.

특히 복지혜택을 잘 이해하고 정책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보수, 그게 실질적으로 사회를 좀 더 건전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서민보수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래서 저는 서민의 희망이라는 구호를 달고 있다."

▷ 본인이 생각하는 제주의 현안은?

"역시 개발과 보전 사이의 갈등이다. 대표적으로 제2공항이 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제2공항은 추진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고려할 점이 있다. 최근 여론이 제2공항에 대해, 제2공항이 들어오면서 많은 인구유입 등을 제주가 견딜만 한지,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됐는지, 제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여론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도민들의 전반적인 여론을 무시하고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저는 제2공항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공항이 건설되는 시점에 맞춰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제2공항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 상태로 강행을 하면 반대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예전의 강정보다 더한 갈등이 장기화되고 첨예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기를 늦출 수 밖에 없다.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시기를 좀 더 늦추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 자신이 가진 강점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또 공감능력이 있다고 본다. 다양한 계층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저의 강점이라고 본다.

단점도 말하겠다. 이성적인 판단을 감성 때문에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때문에 결정을 잘 못할 때도 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이런 부분은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새싹 정치인이다. 본격적으로 정당활동을 한지 2년여가 됐지만 여전히 변화중인 정치인이다.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제가 도민들을 만나는 것에서 어색할 수도 있고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해를 구하고 싶다. 대신 저는 진솔하고 솔직하게 새로운 시대의 정신에 맞춰서 기본적인 것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구자헌은?

학력
제주남초등학교
제주중앙중학교
오현고등학교(중퇴)
고려대학교 법학과(제적)

경력
사법연수원 29기 수료
대전・대구・인천・부산지검 검사
구자헌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자유한국당 제주도당 제주시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2018~2020)
자유한국당 제주도당 위원장(20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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