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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의 [제주역사나들이](34) ... 7차 월정-행원리 탐방코스 (3)

■올레길 20코스

 

 

용천동굴 상단 길을 나와 우측으로 돌아서면 올레길을 알리는 간세다리 표시가 나온다. 우측길로 발을 옮기니 모래를 실은 바람이 눈을 제대로 못 뜨게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곳에서는 모래밭이 모래만 있지 않다. 모래밭이 밭이 된거다. 모래밭엔 파(양파?)의 어린 줄기가 거센 모래바람에서도 당당히 파랗다.

 

 

당근은 모래를 이불삼아 붉은 빛 고운 뿌리를 단단히 내려 영글고 있다. 제주에선 다 이렇게 살아왔다.

 

 

세찬 모래바람은 지붕을 낮추었고 돌담은 높여놓았다. 옛날엔 초가였을 오래된 집이 역시 낡은 슬레이트를 이고 머리만 보여준다.

 

■월정리와 해변

 

남국의 지명유래(진성기저)에 의하면 거금 300년전에 무주(武州)라고 했었는데 1856년경 원봉선생(元峯先生)이 지형이 반월형으로 되고 해변이 모래로 이루어지니 멸치어장에 알맞고 이 부락을 바다에서 보면 선명하게 반월형으로 보이니 월정리(月汀里)라 호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부락창촌은 월정리 서쪽 해안에 생활용수가 풍부한 송포(松浦)가 있는데 약 300여년전에 제주도지사를 지낸 고 김인홍(金人洪)씨 선조와 김해김씨가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월정리(月汀里)의 '汀'은 물가 정이다. 즉 말그대로 '달을 닮은 물가'라는 뜻인게다. 제주의 마을은 이처럼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예쁜 이름을 가진 곳이 많다.

 

 

축담으로 이뤄진 집과 멋스럽게 잔돌을 붙인 요즘의 집이 올레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그나마 두집이 어울리는건 제주의 돌을 같이 품고 있어서 일게다. 개발붐에 시달리는 월정리가 그나마 이런 조화가 있어 조그만 희망을 가져본다.

 

 

월정마을로 들어서다 우측의 오래된 샛길로 들어가 본다. 지금은 차 한대조차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올레담 길이지만 옛날엔 짐을 실은 마차와 장을 보러 들고 나는 이들이 분주했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듯 잡초가 무성하고 농사관련 폐기물이 널브러진 좁은 돌담길로 들어서 본다. 한사람 들어서면 꽉차는 이 길은 제법 길어 약 200미터 남짓해 보인다. 이 길로 새참도 날랐을 테고 거름도 지고 다녔을 게다. 옛길을 걷는다는건 예기치 않은 장소를 만났을 때 의미를 더하는 것 같다. 옛길을 걷는 나들이객이 아니면 이렇게 버려진 길을 누가 걸어나 볼까.

 

 

반달을 닮은 월정해변은 지금도 물색이 곱다. 고운 물색과 모래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아까 언급했듯이 원래 월정리는 모래바람을 피하는 방향으로 가옥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달의 물가를 따라 도로가 나고 옛날엔 집을 안 지었던, 아니 모래바람 때문에 집을 지을 수 없었던 곳에 상가들이 꽉 들어차 있고 지금도 공사중인 곳이 많다.

 

땅값은 터무니 없이 올랐고 인심은 그만큼 박해졌다. 개발과 보존의 영역에서 개발의 완전한 승리다. 월정리의 바람은 지금도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모래를 실어 나른다. 도로에도 건물에도 바람이 심한 날은 싸락눈 쌓이 듯 지금도 그 양이 엄청나다. 이 곳 상인들은 눈 치우듯 창틈으로 들이치는 모래를 쓸어내는 수고로움을 하소연 한다. 그러나 어쩌랴. 원래 자연이 내어주지 않았던 곳에 자리한 이들의 업보인 것을. 속내를 알리 없는 관광객들의 셔터소리와 웃음소리가 바닷바람소리에 마냥 흩어진다.

 

■행원리

 

자연마을로는 행원, 알동네, 중동 마을 등이 있다.

 

선조년대(1595년)에 국토방위의 요지이며, 포구가 좋아서 등대를 설치하고 어등개 또는 어등포라 불러오다가 약 120년전 행원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행원리의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행원리 마을은 월정리와 달리 번잡하지 않다. 월정리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아직은 여느 해안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 때 주일에 사람들이 모이고 크리스마스때 동네꼬마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을 교회는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흔적은 남아 지금은 창고로 쓰이고 있다. 십자가 대신 옆의 풍력발전기 날개가 이곳의 변화를 말해주듯 당당히 서 있다.

 

 

 

 

폭낭 아래서 잠시 앉아 나들이객은 숨을 고른다. 7차 나들이코스의 절반을 갓 넘긴 곳이다.

 

 

행원리의 이곳 용천수 이름은 모르겠다. 다만 단정히 정비된 모습과 두개의 용천수를 상징하듯 두개의 원형으로 된 조형물이 반긴다.

 

 

무심한 듯 아무런 안내판도 없는 행원 용천수를 지나 어등포로 걸음을 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육군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일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공부를 더 한 뒤 에이스케이 건축 대표이사를 거쳐 제주로 귀향, 현재 본향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향 제주의 벗들과 제주의 역사공부를 곁들여 돌담·밭담·자연의 숨결을 더듬고자 ‘역사나들이’ 기행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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