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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패신저스(Passengers) (2)

5000명의 인간이 동면기 속에서 잠든 채 ‘아발론호’를 타고 외계 행성 ‘Homestead II’로 향한다. 하지만 120년의 여정을 목표로 떠난 우주선에서 프레스턴이 기계 고장으로 의도찮게 깨어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전장 1㎞에 달하는 우주선은 새벽거리처럼 인적이 없다.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벽시간, 홀로 텅빈 거리에 나선 꼴이다.

 

 

프레스턴은 텅빈 우주선을 돌아다니며 여러 기계를 작동시켜 본다. 안내데스크의 화면도 작동시켜 보고, 지구의 우주선 본사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기계가 들려주는 음성은 참으로 정확하고 상냥하지만, 프레스턴이 느낄 황망함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우리가 안내전화에서 흔히 듣는 ‘고객님 많이 당황하셨지요?’라는 상투적인 ‘공감 멘트’마저 없다. 기계들이 내놓는 답변들은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 기계는 나의 마음이나 기분, 나만의 ‘문제’를 알 리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프레스턴은 완전히 우주미아가 된 절망감에 빠진다. 우리도 종종 매장의 무인주문기가 나만의 문제에는 아랑곳없이 기계적으로 돌아갈 때 절망감에 빠져 진땀이 나곤 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매장 안에 ‘사람’이 있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더 이상 기계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프레스턴 역시 혹시라도 사람을 발견할까 싶어 텅빈 우주선을 이리저리 맴돈다.

 

그런 프레스턴의 눈에 빨간 재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바텐더가 라운지바에서 혼자 와인잔을 닦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저승에서 죽은 조상을 만나면 그만큼 반가울까. 드디어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서다. 말끔하고 빈틈없고 상냥하다. 아서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의 대응만으로도 프레스턴은 살 것만 같다.

 

 

며칠을 굶다 폭식을 하듯 프레스턴은 아서를 향해 굶주렸던 말들을 쏟아붓는다. 아서는 프레스턴의 황당한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듯하다. 자신이 아는 대로 성의 있게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의 목소리’로 대답해준다. 당장 해결책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프레스턴은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서가 술병을 가지러 가는데 그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카운터 너머 아서의 아래쪽을 보니 ‘아랫도리’가 없다. 그제야 프레스턴은 아서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을 장착한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깨닫는다. 맥이 빠지고 무너지고 만다.

 

그럼에도 프레스턴은 매일 라운지를 찾아 하루 종일 바에 앉아서는 바텐더 아서를 독점하고 수다를 떤다. 우주선 내 이곳저곳에 있는 안내기계들의 기계음보다는 낫다. 그러나 프레스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서에게도 지쳐버린다. 안드로이드라는 것이 기계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변함없이 상냥하고 친절하다. 아서는 모르는 것(정보)이 없다. 어찌 보면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그런데 아서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맥이 빠진다. 발이 가려운데 구두 위로 긁어대는 듯한 느낌이다.

 

프레스턴은 돌발적으로 아서의 뺨을 후려갈긴다. 그러나 아서의 기본적인 상냥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놀라지도 않고 불쾌해하지도 않는다. 프레스턴이 갑자기 자신의 뺨을 왜 갈겼을까를 생각하는 듯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는 표정이다. 안드로이드 아서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쉰(Michael Sheen)의 연기내공이 훌륭하다.

 

 

만약 뺨을 맞은 아서가 왜 때리냐고 눈을 부릅뜨거나 따지고 당장 꺼지라며 고함이라도 질러줬다면 프레스턴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졸지에 아무 이유 없이 뺨을 맞고도 여전히 상냥한 아서에게 프레스턴은 절망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이야기한다.

 

사단[四端(인仁·의義·예禮·지智)]은 바람직한 것이고, 칠정[七情(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은 모든 화의 근원이 되는 불온한 것이며, 당연히 사단에 의해 통제되고 억제돼야 할 것으로 믿는다.

 

아서라는 안드로이드는 사단으로 무장하고, 칠정은 완전히 거세된, 어찌 보면 성인의 경지에 이른 인간상일지도 모르겠다. 아서는 인자하고, 올곧고, 예의 바르며, 아는 것도 많다. 화도 안 내고, 욕심도 없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작 프레스턴은 공자·예수·부처보다 훌륭한 이 ‘성인군자’ 아서에게 절망한다. 가끔은 우리를 지치고, 피곤하게 하고, 진저리치게 만드는 사람들의 칠정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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