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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을공동목장 ... 재벌.자본가의 눈에 들다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11) 개발독재 시대의 축산업
조중연 작가  |  kalito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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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0  15: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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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2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이 도립목장(현 축산진흥원)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청]

개발독재 시대의 축산업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국립송당목장이 사면초가 신세를 면치 못하자, 박정희의 수심은 깊어만 갔다. 그 무렵 제주도 서부 중산간지대에서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때까지만 해도 마소를 방목할 수 있는 야산과 축사만 있으면 된다고 축산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박정희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한림 일대에서 파란을 일으킨 ‘파란 눈의 신부(神父)’였다. 이시돌목장의 맥그린치 신부였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가 제주 땅을 밟은 것은 1954년 4월, 스물다섯 젊은이의 눈에 비친 제주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제주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라는 한림 금악에 터를 잡는다.

맥그린치 신부의 소식을 듣고 박정희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자신이 그토록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도 현상 유지에 급급하던 제주도 축산이 내국인도 아닌, 외국의 젊은 신부가 대규모 목장을 성공적으로 조성했다는 데 호기심과 질투가 일었다.

박정희는 곧바로 맥그린치 신부를 청와대로 불러올린다. 성공 비법을 묻는 박정희에게 파란 눈의 신부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한다.

“제주도식의 전통적인 방목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진드기 잡겠다고 들판과 산을 태우는 행위는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지요. 땅을 로타리쳐서 완전히 갈아엎고, 목초를 심어 개량 초지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 이시돌 목장을 조성하던 시절 맥그린치 신부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 줄기 빛기둥 같은 조언이었다. 제주도는 화산회토로 척박한 땅이라 화전민들이 비옥한 땅을 찾아다니면서 불을 놓고 밭농사를 지었다. 이 방식은 목장에도 적용됐다. 목자들은 좋은 목야지를 확보하거나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서 해마다 화입(火入)을 실시했다. 화입을 하고 나면 삼림 형성이 억제되어 좋은 목야지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파란 눈의 신부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개량 초지라는 말에 한껏 고무되었다. 축산업의 기본 인프라가 화입과 방목에서 초지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에 영감을 얻은 박정희는 농가의 소규모 주먹구구식 축산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용돈벌이 부업 수준에,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나약한 정신상태로는 뭘 해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목장이라고 기껏 만들어놓으면 1년도 지나지 않아 고사리 소복한 황무지로 변하지 않았던가. 너도나도 마음이 고사리밭으로 가 있으니 목장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 순간 박정희는 마을의 공동 전업 축산단지나 대규모 기업목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효율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 맥그린치 신부(차에 탄 이)가 이시돌 목장 개간에 나서던 무렵 마을 유지 등과 촬영했다. [이시돌협회 제공]

곧바로 정부의 대대적인 축산진흥정책이 발표되었다. 세제 감면 제도를 마련하고, 인재 양성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대학의 축산과와 농고 축산과에 우수한 인재들이 입학하도록 각급 학교를 독려했다. 그즈음 서귀포 1호광장 북쪽에 제주대학 이농학부 캠퍼스가 들어섰고, 뉴질랜드로 초지학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하나둘 생겼다. 몇 년 후 초지학 전공자들이 속속 귀국하기 시작했다. 금의환향이었다. 이른바 ‘촐박사’들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그러나 빛이 밝을수록 그늘은 더 깊어지는 법.

정부의 축산진흥정책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촐박사’들이 공들여 조성한 초지가 하루아침에 재벌들의 각축장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초지지구를 사들이면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벌들은 너도나도 초지 사냥에 열을 올렸다. 기업형 목장을 만들겠다며 국유지와 마을공동목장을 대규모로 사들이더니 소 두세 마리 묶어놓고 목장 간판만 걸어놓고 있거나 목장 조성은 차일피일 미룬 채 땅을 묵혔다. 제주도 기업형 목장은 재벌의 부동산 투기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훗날 이 땅들은 대부분 되팔리거나 골프장으로 개발된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소 파동 사건으로 축산업이 몰락하면서, 제주의 마을 공동목장들은 급격한 해체를 맞게 된다. 공동목장을 중심으로 끈끈히 맺어진 주민의 연대 역시 서서히 끊겨나갔다. 마을 주민들이 내놓은 공동목장은 재벌이나 자본가에게 쇼핑몰의 상품처럼 팔려나갔다.

   
▲ 조중연 소설가

서김녕마을 공동목장은 세인트골프장이 되었고, 서광서리목장은 신화월드가, 신흥리 공동목장은 해비치골프장, 구억리 공동목장은 영어교육도시, 수망리 공동목장은 부영골프장, 한남리 공동목장은 더클래식골프장, 위미리 공동목장은 스프링게일골프장, 상효 공동목장은 우리들골프장, 성읍리 공동목장은 사이프러스골프장, 성읍2리 공동목장은 장영자를 거쳐 세모그룹 유병언의 사유지로 변해버린다.

지금까지도 재벌의 제주 부동산 사랑은 식지 않아 오라리 공동목장은 오라관광단지로, 선흘리 곶자왈은 동물테마파크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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