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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5)...제주도와 육지가 버무려져 더 맛깔스런 볶음

 

     
 

                                제주도로 옮겨온 기간은 3년쯤 되지만 도민이 된지는 불과 몇 달이 안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주도에 정착 가능성을 타진했던 전야제 같은 시간을 거의 3년이나 가져야했다. 그동안 겪은 일도 많아서다. 겪은 일은 제주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래도 좋은 제주도를 알게 되고 나는 주민등록을 그제야 옮길 수가 있었다. 해서 이번 총선은 나에게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도민권리행사를 치루는 첫 날밤의 경험과 같아 서울서 자주 치렀던 의례투표와는 그 기준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방인이면서도 주체이기도 한 내가 선거를 바라보고 있어서다.

 

제주도에서 행해야 하는 선거에 대해, 나와 같은 도민이지만 이주민들인 주변인들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선거에 무척 관심을 보이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들과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어중간한 사람은 보기 힘들다. 작년에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에 나에게도 손길이 미쳐왔었다. 이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제주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섬까지 와서, 하물며 선거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며 자기 삶에 천착하고 산다. 나도 후자에 속한다.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서울서 기자를 오래 해서 질렸기도 하지만 제주도를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니 첫 날밤이 그렇듯이 투표가 낯선 곳이 아직 제주도다. 그러나 제주시를 요즘 돌아다니다보면 눈을 끌게 하는 게 있으니 대형현수막이다. 10여 층 건물을 다 채우고 있는 얼굴 얼굴 얼굴들 들 들... ‘깨끗한 선거, 대한민국의 얼굴입이다’라는 중앙선관위의 팸플릿을 무색하게 하는 얼굴들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고 관심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을 유발했다. 제주도는 어떻게 선거가 치러지나? 똑같겠지 하는 마음을 그 대형현수막이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 걸, 그 어마어마하게 큰 현수막을 보는데 왜 10여 cm 짜리 쪼그만 레밍쥐가 떠올랐던 걸까? 노르웨이에선 3~4년마다 이 레밍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이들은 야간 어둠을 이용해 이동하는데 다른 쥐들도 따라서 바닷가로 몰려간다고 한다. 막다른 벼랑 끝에 도달하면 이들은 바다에 뛰어들어 모두 자살을 한다는 데 이를 생물학자들은 발작적인 행동으로 보고, 사회학자들은 종족보전을 위한 집단의 밀도조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유래돼 ‘레밍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유행·군중심리 등 대중적인 선동이나 현상에 휩쓸려 민감하게 반응하며 맹목적으로 남을 무조건 따르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저렇게 큰 현수막이 투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이런 호기심을 발동하게 한 것은 선거바람이 아니라 현수막을 흔들어대는 바람이었다. 시장을 돌아보고 밥 먹으로 들어간 식당에서 사람들의 반응에 주시해보았다. 서울과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이번 총선에 관심이 없었다. 누가 나왔는지도 제대로 모른다. 그러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제주도민들의 속성이랄까. 에둘러 물어보고 돌려쳐서 마음을 끄집어내면 그들은 누굴 찍을 것인가를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궨당문화, 그들이 지적하면서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궨당문화. 그럼, 젊은 친구들은 어떤가 해서 강의실에서 제자들과 얘기해봤다.

 

“제주도엔 세 개의 당이 있다고 하죠. 여당, 야당, 궨당.”

 

그래서? 하고 물으면 상당수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결국은 궨당을 찍게 된다고 했다. 무관심은 투표불참이 아니라 의지 없는 투표, 즉 자기 의지에 상관없이 다른 의견을 가진 자를 선택하는 투표행위임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사회학 분야를 전공한다는 제자들을 앞에 두고 양비론과 무관심에 대해 열변을 토해야했다.
“투표불참은 가장 야비한 이기주의일 뿐이다. 이래놓고 후에 ‘믿지 못할 게 정치인 어쩌구 저쩌구...’ 정치를 싸잡아 비난하는 부류가 투표불참자들이며 이런 사람이 바로 부역자다. 부역자는 자기 소신이 없이 다수나 거대한 힘에 복종하고 순종하고 나아가 그 앞잡이가 되는 것이다. 과거 친일세력들이 이랬다. 침묵도 같다. 여기에 일부 언론들은 양비론으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유도함으로써 국민을 우매한 쪽으로 잡아끌어 내린다. 양비론은 양쪽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좀 더 나은 정당이나 인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흐려놓는 악덕 정치를 양산하는, 더 적극적인 특정 정당밀어주기가 된다.”

 

맹목적으로 남을 따르는 사회현상을 빗대어 노르웨이에선 레밍쥐에 비유했듯이, 제주도에선 궨당이라는 용어가 새로 생겨 나올만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궨당이 제주도만인가. 육지에선 지역감정으로 땅 나눠 편 가르고 있는 일이 수 백 년을 이어온 나라가 한국이지 않은가. 이래서 경제적으론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나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지연이든 학연이든 이런 집단이기가 좀 더 심한 곳이 제주도라는 게 이주민의 눈에선 훤히 보인다. 육지에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지역적으로나 집안으로 더욱 결속이 강한 제주도에서 이를 깨기란 쉽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런 집단이기가 결국 자기이익이 되어왔는지 아주 당연한 질문으로 한번은 생각해보자 함에서다.

 

나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제주도를 이끈다는 여론 주도층들의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침묵하고 있었다. 제주대학교의 교수가 4·3유적지를 안내한다고 해서 함께 따라 다닌 적이 있었다. 지난 곳이 마침 강정마을이고 해서 해군기지건설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4·3에 대해 침을 튀기며 과거를 성토하던 그 교수는 현재의 문제인 강정해군기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니 입을 막고 있었다. 해서 또 물었다. 올레길을 텄다는 그 유명한 여자는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올레길,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가장 멋진 길로 알려진 7코스가 군사기지로 폭파되고 있는데 왜 말 한마디가 없느냐? 물으니 그 교수 하는 말,

 

“그 분이 어떤 입장으로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 분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이주민이라서 맘대로 말할 수 있으니 자유로워 부럽습니다.”

 

나는 그에게 들으라고 싫은 소릴 하고 말았다.

 

“당신이 지금 그러고 있듯이, 당신 제자나 아들·딸이 훗날 강정마을을 안내하며 4·3의 피해를 성토했듯이 해군기지를 비난하겠지요? 왜 후세들에게 똑같은 후회와 반성, 그리고 그 피폐화된 유물을 물려주려고 하느냐. 과거는 침을 튀기며 비난하면서 지금에 대해서는 왜 침묵만 하느냐?”

 

요즘 들어 총선이다 하고, 끈 떨어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곧 물러날 즈음 되다 보니 도지사 그 남자나 올레이사장인 그녀가 강정에 대해 한 마디, 아주 어줍잖은 말로서 소견을 얘기하고 있다는 말을 이명박 정권이 자연파괴를 위해 폭약을 터트렸던 날 강정마을을 다녀온 열혈남에게서 들었다. 왜 이제냐? 그전엔 아무 말 없다가?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건설을 줄곧 반대해온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보다도 먼저 침묵만하다가 눈치 보고 발을 슬쩍 들여 놓는 이들에게 따져 손가락질을 먼저 해야지 않겠냐고 했다. 침묵했던 이런 자들이 부역자요 눈치 보고 선회하는 이런 자들이 기회주의자요, 이런 자들이 있어 더 저항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 교수가 내게 말한 ‘이주민이라서 자유롭다’는 말은 바로 궨당문화의 다른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다름 아닌 제주도의 과거 아픔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고 그 현장에서 이를 알려왔던 제주도 애정남이었다. 그런 그도 궨당에선 자유롭지 않으니, 제주도에서 어떤 변화나 개혁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4월 11일이면 투표를 하게 된다. 내가 처음 제주도에서 하게 될 민주주의 행사에 앞서 나는 키에르케고르가 한 말을 바꿔 떠올려본다.

 

그는, “삶은 나중에 이해될 뿐인데, 우리는 그보다 먼저 살아야만 한다”고 했고 나는 이를 바꿔,
“정치는 나중에 실망할 뿐인데, 우리는 그보다 먼저 투표를 해야만 한다.”

 

이주민인데 또는 내가 제주도에 대해 뭘 안다고 하며 무관심이나 침묵으로 이번 투표에 불참하려는 쪽으로 기울던 나에게 관심을 갖고 좀 더 따져보고 결정하라고 주먹질을 해댄다. "남 비난하기 전에 너부터! 나도 당당한 제주도민이며 제주도가 좋아서 온 사람이기에 이들이 수 십 년 바꾸지 못한 것을 이주민들이라도 바꿔보자"며 진정한 제주도 애정남이 되어보자고 내 마음 속에다 외치고 있었다. 삶에 있어 진지하지 못해 지난 후 회한·절망으로 맞이해야 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지적한 키에르케고르의 삶의 부정에서 역으로 배우는 게 있다. 먼저 투표하기 전에 진지하게 따져보자 함은 나의, 그리고 우리의 정치부정이나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며칠 사이에 대형 현수막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경선이 있었고 경선으로 탈락한 출마자의 현수막 자리엔 역시 경선에서 탈락한 다른 후보가 무소속으로 옮겨 번호만 바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크기는 10여 층 건물을 다 가릴 정도로 여전이 컸고 큰 만큼 거센 바람에 현수막 속의 얼굴사진은 더욱 찌그러진 표정으로 더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보고 찍을 게 아니며, 또 큰 것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현수막 크기로 자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낭비를 선관위는 왜 눈 감고만 있는 것인가. 고맙긴 하다. 눈에 확 띄는 현수막으로, 그 흔들어대던 대형 괴물로 인해 진중한 선택의 깨우침으로 이번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는 나를 제주도애정남이게 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특히 이주민들이여, 방관 말고 방심 말고 투표를 하자. 내가 발붙이고 터 내리고 살아야 할 땅이 제주도가 아닌가. 좋아서 왔지만 더 좋은, 더 나은 제주도를 우리는 바라서 이곳으로 옮겨오지 않았는가. 투표로 제주도애정남이 되어보자!
 

 

오동명은?=서울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부모로 산다는 것]·[신문소습격사건]·[일본자전거여행]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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