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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히 두리뭉실하게, 원만히 해결하라?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31)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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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7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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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거나 생활할 때 권력에 알력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두 명이 알력이 생길 때 누구에게도 미움 사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중간적 인물이 되고자 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

청(淸)나라 말기에 진수병(陳樹屛)은 강하(江夏) 지현(知縣)을 맡고 있었다. 당시 장지동(張之洞)은 호북성에서 독무(督撫)직에 있었다. 장지동은 무군(撫軍) 담계순(潭繼詢)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진수병은 늘 교묘하게 처리해 어느 한 쪽에서도 미움을 사지 않았다.

어느 날, 진수병이 황학루(黃鶴樓)에서 장지동과 담계순, 기타 관리를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좌객 중에서 강 수면의 너비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다. 담계순은 5리 3분이라고 하자 장지동은 일부러 7리 3분이라고 하였다. 둘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면서 어느 누구도 체면 때문에 지려고 하지 않았다. 연회의 분위기가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진수병은 둘이 트집 잡아 분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에게 불만이 많았고 시답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연회 분위기를 깰 수는 없었다. 그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태연자약하게 공수하며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강 수면의 너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이 불 때는 수면이 7리 3분이 되고 물이 빠질 때는 5리 3분이 되지요. 장 독무께서는 만조가 되었을 때를 말씀하시는 것이고 무군 대인께서는 썰물 때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두 분 대인께서는 서로 틀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의문을 품겠습니까?”

장지동과 담계순은 본래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이면서 계속해서 논쟁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진수병이 건넨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박장대소하자 논쟁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에 기록된 이야기를 한 번 보자. 곡절이 교묘하니 원만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교가 뛰어나다.

일을 능력적으로 노련하게 처리하는 관리가 한 명 있었다. 각 방면을 빈틈없이 배려하였다. 상하 관리가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

한번은 외국인이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다. 여태껏 서양인을 본적이 없는 아이들이 뒤쫓아 다니자 서양인이 화가나 손에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을 때렸다. 한 아이가 피하지 못하여 태양혈을 맞아 현장에서 죽어버렸다. 아이의 집안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잡으려하자 서양인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서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 몇몇에게 또 상해를 입혔다.

그 지경이 되자 공분을 일으켰다.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서양인을 붙잡고는 줄로 꽁꽁 묶어 아문으로 보냈다. 인명과 관련된 일이니 소홀이 처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상대가 서양인이 아닌가. 모든 관리들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애먹고 있었다. 해결하기 어렵게 되자 결국 현명하기로 이름 난 그 관리에게 보내졌다. 그 관리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곧바로 적당히 구슬리는 묘한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는 호남(湖南)의 민풍이 사납고 개방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지방 신사(紳士)들이 군중을 동원해 소란피울 것은 자명하였다. 호랑이에 올라 탄 신세였다. 아차하면 내려오지도 못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었다. 관리가 돼 일을 처리하기가 무척 어려운 상황을 먼저 그들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동시에 현지 지방 신사와 백성이 공분을 샀으니 외국 영사에게 강하게 나가야했다. 외국 영사는 들고 일어선 백성을 보고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 관부가 나서서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못하도록 백성을 힘으로 굴복시키면 될 일이었다. 당시 백성은 서양인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나 관부는 무서워했다. 관부가 나서면 백성은 말을 들을게 뻔했다. 외국 영사는 관부가 백성을 굴복시키는 것을 보면 당연히 관부에 감사하지 않겠는가.

이제 그가 나서서 먼저 명망 있는 향신(鄕紳)을 찾아가 그들에게 힘을 합쳐 영사에게 항의하도록 하였다. 만약 이기면 백성의 원한을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 체면도 세울 수 있다고 재촉하였다. 그 말이 백성에게 전해지자 모두가 그 관리가 훌륭한 관리라고 생각하였다. 백성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관리가 몇이던가, 오직 그만이 백성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그는 다시 외국 영사관으로 가서 영사에게 말했다. 안건을 쉽게 처리하면 백성이 불복할 것이니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 영사는 그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와 모인 군중을 보고는 정말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 관리는 말했다. “영사께서 그리 두려워하실 일은 없습니다. 적당하게 판결하기만 하면 내가 최선을 다하여 백성에게 말하겠습니다. 다시는 백성이 소란을 피우지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판결이 내려졌다. 그 관리는 양쪽에서 좋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순무(巡撫)는 그에게 일을 잘 처리했다며 능력 있다고 칭찬하였고 ; 영사는 마음속으로 백성의 소란을 무마했으니 고마움을 느꼈다.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상신하기까지 하고. 그럼 향신은? 그가 백성 편에 서서 백성을 도와줬다고 생각하였다.

   

두리뭉실하게 처리한 그 관리는 과연 훌륭한 것인가? 물론 원만하게 처리한 것은 맞다. 무원칙하게 타협하게 만들고 적당히 구슬려 화해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한 것은 분명하다. 당시에 일률적으로 서양인만을 옹호하는 관리와 비교하면 훌륭한(?) 셈이다.

지금도 통할까? 아니다. 『관장현형기』에 이 이야기를 수록한 이유는 당시 중국사회를 풍자하기 위해서이다. 나쁘다는 말이다. 그저 되는 대로 수습한 사례를 들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할 뿐이다. 뭐 물론, 현재 중국사회가 당시와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기는 하지만.

[인물 소개]

○ 진수병(陳樹屛)

1862~1923, 자는 건후(建侯), 호는 개암(介庵), 만년에 호 계안(戒安), 안휘성 안경(安慶)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천재로 알려졌고 청나라 때 관리로 무창(武昌) 지부(知府)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상해에게 자선사업을 하였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장지동(張之洞)

1837~1909, 자는 효달(孝達), 호는 향도(香濤), 당시 사람들은 장향사(張香帥)라 불렀다.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대신으로 양무파(洋務派)의 대표인물이다. 귀주(貴州) 흥의부(興義府)에서 태어났다. 군기대신(軍機大臣) 등을 역임하였고 체인각(體仁閣)학사에 이르렀다.

○ 담계순(潭繼詢)

1823~1901, 호는 경보(敬甫), 장사(長沙) 유양(瀏陽) 동향(東鄕) 사람이다. 도광(道光) 29년(1849)에 거인이 되었고 함풍(咸豐) 10년(1860)에 진사가 되었다. 담사동(譚嗣同, 1865~1898, 자는 복생(復生), 호는 장비(壯飛))의 부친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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