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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천주교 제주교구장 18년 보내고 은퇴 ... "제주 아픔 함께하려 했다"
신축교안, 4.3 해결에 노력 ... "망가지는 제주자연 마음 아프다"

 

“처음엔 너무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주는 그렇게까지 행복한 땅이 아니었다. 도민들이 살아온 역사를 돌아볼 때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다. 그 아픔의 역사에 함께하도록 하느님이 저를 보내주신 게 아닌가 싶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75)는 제주에서 지낸 지난 18년을 이렇게 되돌아봤다. 지난 13일 제주교구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가진 제주도내 언론과의 인터뷰 자리에서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일본 도쿄 상지대와 1973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75년 사제의 길에 들어선 그다. 그후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보좌신부와 서울대교구장 비서, 서울대교구 교육국장과 홍보국장 등을 역임했다.

 

1985년 12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고 이듬해인 1986년 2월에 주교서품을 받았다. 이후 가톨릭대 초대 총장과 주교회의 상임위원,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등을 지냈다. 가톨릭계에서도 주요 보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2002년. 서울에서도 가장 먼 곳, 국내에서 가장 작은 교구의 장으로 오게 됐다. 제주다. 이 섬에 발을 들이며 그는 아름다운 섬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꿈꿨다.

 

하지만 강 주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가 마냥 행복한 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강 주교의 눈에는 아픈 역사와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보였다. 

 

강 주교는 18년 동안 그 사람들과 함께 했다. ‘제주교구장’이라는 그의 자리는 제주도내 가톨릭 신자들을 이끄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의 손길과 눈길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제주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종교인의 역할을 교회나 사찰 등의 종교시설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기껏해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종교의 존재 의미는 백성들, 시민들, 국민들이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돕고 함께 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백성들이, 시민들이, 국민들이 아파하는 것을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모른척 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봤다.”

 

 

종교를 넘어 제주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였을까? 강 주교는 제주에 들어온 다음해 제주도민들의 아픈 과거에 치유의 손길을 던졌다. ‘이재수의 난’으로 알려진 ‘신축교안(辛丑敎案)에 대해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신축교안은 과도한 세금징수 등으로 당시 제주도민들 사이에 조선 조정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가던 중, 천주교의 선교를 위해 제주에 들어온 선교사 및 교인들과의 충돌 등이 폭발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도내에 있던 천주교도 4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교회는 2003년 채택된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에서 “과거 교회가 선교하는 과정에서 제주민중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잘못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을 대표한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 역시 “항쟁 과정에서 천주교인과 무고한 인명 살상의 비극을 초래한데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한 번에 수많은 신자들이 학살당한 사실은 아프다”면서도 “하지만 교회에도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고 잘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의 아픔을 뛰어넘어 좀 더 큰 틀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의 또다른 비극 4.3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강 주교는 4.3에 대해 “계속 상기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비극이 재현되지 않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4.3에 대한 기억들을 후손들에게 계승시켜 주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작업들을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강 주교가 제주에 머문 지난 18년은 제주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분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많은 이주민들이 제주에 몰려 인구가 폭증했다. 여기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더해졌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도내 곳곳에서 나타났다.

 

각종 개발사업으로 제주자연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마을과 마을이, 주민과 주민이 갈라지는 갈등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특히 이 기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강정마을이었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결정되면서 반대투쟁이 일어났다. 아울러 마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생겨났다. 강 주교는 수시로 강정마을을 찾았다. 공사장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주민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평화를 말했다. 무기와 무기의 균형이 만드는 평화가 아닌 ‘진실한 평화’를 강조했다. 평화를 향한 그의 외침은 강정마을에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로 자리잡았다.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는 평화를 이루는데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기 위해 만든 것이다. 무력의 균형상태를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진실한 평화를 어떻게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가기 위한 기관이다. 아직은 활동이 대대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는 제주의 환경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제주가 예전에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건축물들이 괴물처럼 들어서고 있다. 행정을 하시는 분들도 다 제주분들일텐데, 이렇게 고향땅을 무참히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의 자연과 환경은 돈으로 생산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공장에서 만들 수도 없고 돈으로 사올 수도 없는 조물주의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한번 파괴하면 재생이 안되는 자연을 개발하고 각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제주도민의 미래를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강정마을이나 각종 개발사업만이 아니라 제주 제2공항 등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그는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갈등을 봉합하려 했고, 때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되려 했다.

 

그는 이렇듯 18년 간 제주도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주의 아픔을 돌아봤다. 제주의 많은 사회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물러난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제주사회에 머물 것이다. 은퇴 후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백수가 겪는 일들을 저도 겪을 것”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주사회가 혹은 교회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기쁘게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천주교 제주교구가 제주사회에 깊게 스며드는데 그의 역할은 지대했다. 지난 18년 간의 활동을 통해 그는 단지 제주교구의 지도자 뿐만 아니라 제주사회의 ‘어르신’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움직였고 행동했다. 그에 대한 믿음이 제주도민들 사이에 뿌리내렸다. 

 

은퇴를 하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그의 모습에서 '큰 바위 얼굴'이 떠올려지는 건 그 때문이다.

 

17일 오후 8시 한림읍 금악리의 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강 주교 퇴임 감사미사가 거행됐다. 

 

강 주교에 뒤를 이어 문창우 비오(58) 주교가 제주교구를 이끌 예정이다. 문 주교는 2017년 6월 제주교구 부교구장에 임명된 후 그해 8월 주교 서품을 받았다.

 

문 주교의 교구장 착좌식은 오는 22일 오후 2시 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린다.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한국 주교단이 공동 집전에 나선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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