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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포레스트 검프 (4)

검프는 많은 것을 이룬다. 대학 미식축구 우승팀의 일원으로, 베트남 전쟁 영웅으로 백악관에 초대돼 케네디 대통령, 존슨 대통령과도 만난다. 미국 탁구 대표선수로 ‘핑퐁외교’의 주역이 돼 탁구 라켓회사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새우잡이로 성공을 거둬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의 표지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성공한 젊은이’임에 분명하다.

 

 

찬란한 성공을 거둔 검프지만 검프에겐 빈자리가 있다.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인 제니는 꿈길에서밖에 만날 수 없다. 어느 날 꿈처럼 검프를 찾아온 제니는 검프와 하룻밤만 지내고 또다시 종적을 감춘다. 망연히 허공을 응시하던 검프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 검프의 내레이션은 달리는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닥치고 달리기’인 ‘닥달’이다.

 

지난 총선에 모당의 대표가 선거운동 대신 느닷없이 달리기 운동을 해서 모두들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검프의 달리기도 참 뜬금없다. 관객으로서는 또다시 제니가 떠나버린 슬픔을 잊기 위해 달리나보다 할 뿐이지만 깊은 뜻을 알 수는 없다.

 

빨간 모자 하나 쓰고 문득 그렇게 정처 없이 달리기 시작한 검프는 빨간 모자가 허옇게 바래고 수염이 칼 마르크스처럼 자라도록 ‘닥치고’ 달린다. 항상 흥밋거리 찾기에 혈안이 된 방송국 안테나에 걸린다. 나름 미국에서 ‘셀럽’인 검프가 아무 설명 없이 몇 달을 달리고 있으니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리포터가 함께 달리며 마이크를 들이대고 달리는 이유를 물어보지만 검프는 대답이 없다. 하기야 검프 자신도 달리는 이유를 모르거나 혹은 설명할 수 없는데 리포터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기도 하겠다. 그럴수록 대중들의 호기심은 커진다. 호기심에 겨운 몇몇은 생업을 팽개쳤는지 혹은 생업이 원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검프를 따라 달리기에 나선다. ‘팔로워’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검프의 달리기에 따라나선 팔로워들의 해석은 아마도 제각각일 듯하다. 베트남 전쟁영웅이 저렇게 입 꾹 다물고 고행의 수도승처럼 달리고 있으니 아마도 침묵 속에 반전反戰을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베트남에서 학살한 양민들에게 속죄하기 위해 고행에 나섰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새우회사로 성공한 검프가 회사를 팽개치고 고향집에서 잔디나 깎으며 소일하는 모습에서 혹시 ‘반자본주의’ 메시지를 기대한 팔로워도 있을 듯하다. 방송국의 리포터가 검프의 마음속 내밀한 제니를 알 리 없고, 대중들도 알 리 없다. 대중들은 검프의 겉모습만 본 채, 그마저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서 허상을 그리고 검프를 팔로한다.

 

1년 넘도록 그렇게 ‘닥치고 달리던’ 검프는 어느날 어느 순간 문득 달리기 시작했던 것처럼 어느날 어느 순간 길 한가운데에서 문득 달리기를 멈춘다. 수많은 팔로워들은 각자 자신들이 바라는 검프의 심오한 ‘한 말씀’을 기대한다. 검프는 팔로워들의 기대를 배신한다. 검프가 달리기를 접으며 남긴 한 말씀 ‘피곤하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는 허망하지만 너무나 상식적일 뿐이었다. 한 팔로워가 ‘그럼 우리는 어떡하냐’고 항의한다.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플라톤의 「국가론」 7권에는 흥미로운 ‘동굴의 우화’가 등장한다. 동굴 속에 벽면을 향해 묶인 사람이 앉아있다. 등 뒤에 동굴의 입구가 있고 입구에서 해가 비치고 있다. 동굴에 갇힌 남자는 동굴 입구를 지나가는 것들을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뿐 그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실체’는 보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실체를 보지 못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를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체를 본 적이 있으면 그림자만으로 실체를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실체를 본 적이 없으니 그 실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사람의 모습을 짐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검프의 팔로워들은 검프의 실체는 보지 못한 채 검프의 다양한 그림자 중 하나를 저마다 검프의 실체라 생각하고 검프를 팔로한다.

 

 

요즘 소위 수만 수십만의 팔로워들을 거느린다는 유튜버들이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린다. 간혹 실체도 불분명한 사람들이 내뱉는 실체도 불분명한 그림자를 열심히 팔로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얼마 전,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어느 스타 한국사 강사가 난데없이 고대 세계사와 음악사까지 ‘발가벗겨’ 보여주겠다고 기염을 토하다가 말썽이 생긴 모양이다. 아마도 팔로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오버했던 듯싶다.

 

그림자를 쫓는 팔로워들의 ‘좋아요’를 잃지 않기 위해 유튜버들은 간혹 오버하거나 있지도 않은 것들을 쥐어짜서 내보여 주기도 해야 하는 모양이다. ‘한 말씀’ 기대하는 팔로워들에게 검프가 솔직담백하게 ‘너무 피곤하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한 것처럼, 팔로워들이 원한다고 실체도 없는 이야기들을 무리하게 쥐어짜기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혜와 용기도 필요할 듯한 요즘이다. 

 

검프가 팔로워들이 원한다고 갑자기 ‘반전 메시지’를 토해내거나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설파한다면 참으로 민망하지 않겠는가. 혹시 호기심에 한번은 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두번 세번이야 어찌 들어주겠는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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