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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데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54)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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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7  09: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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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지출이 있어야 수입이 있다. 보답 없는 지출도 없고 지출 없는 보답도 없다. 주는 게 있어야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지출이 많으면 얻는 수입도 많다. 타인이 자신에게 주기만을 바란다면 얻을 수 있는 원천(源泉)은 결국 고갈할 수밖에 없다.

춘추시대 말기에 제(齊)나라 국군은 황음무도하였다. 가렴주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나라 귀족 전성자(田成子)1가 그 꼴을 보다 못해 자기 부하에게 말했다.

“궁실이 가혹하게 빼앗는 수단으로 적지 않은 재부를 얻는다. 그것은 ‘얻는 것이 버리는 것과 같다.’ 창고는 가득 찰 수 있으나 국가는 안정되지 못한다. 결국에는 남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헛일’일 따름이다.”

그러면서 전성자는 크기가 다른 되를 제작해 자신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에게 빌려주었다. 큰 되로 곡식을 주고 작은 되로 받아들여,

“백성에게 혜택을 주었다.”

그러자 제나라 백성은 왕실에는 충성하지 않고 전성자에게 의탁하면서 일시에,

“흐르는 물처럼 백성이 귀의하였다.”

전성자가 큰 되로 빌려주고 작은 되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용해 빌려준 것은 양식이요 받은 것은 민심이었다. 그냥 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얻은 것이다. 결국 제나라 국군의 권력은 전 씨 가족에게 넘어갔다.

역사가 범엽(范曄, 398~445)은 말했다.

“천하는 얻는 것이 수확인 줄만 안다. 주는 것이 얻는 것인지는 모른다.”

무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얻는 것이 수확이라고 생각해 얻는 것에만 급급하고 베푸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모른다는 말이다. ‘득실’을 꿰뚫어본 말이 아닌가.

득과 실은 서로 전화되어야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베푼다고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속에 담긴 오묘한 이치를 터득한 사람만이 취사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국시대에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2은 양사(養士)로 이름을 떨친 재상이다. 사인(士人)을 극진히 대우하였다. 이에 감동받은, 재능이 있고 학식이 뛰어났지만 곤궁해진 사인 풍원(馮援)이 있었다. 풍원은 맹상군에게 우대받은 후 그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어느 날, 맹상군은 자기 봉지인 설읍(薛邑)에 빚을 도촉하려고 사람을 보낼 생각을 하면서 누가 가겠냐고 물었다. 풍원이 자신이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받은 돈으로 무엇을 사오면 되겠냐고 물었다. 맹상군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사오면 된다하였다. 풍원은 명을 받고 떠났다.

설읍에 도착한 풍원은 무척 곤궁하게 사는 백성을 만나게 됐다. 맹상군의 빚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듣고는 원망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풍원은 읍에 살고 있는 백성을 모아놓고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빚을 일률적으로 없애고 이자도 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내가 왔습니다. 맹상군은 빚 문서까지 내게 내줬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그것을 불사르겠습니다. 오늘 이후 다시는 빚 독촉이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풍원은 가져온 빚 문서를 대중 앞에서 거리낌 없이 불태워 버렸다. 설읍의 백성은 맹상군이 너무 인자하다고 여겨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풍원이 돌아가자 맹상군이 빚을 받아왔냐고 물었다. 풍원은 빚은 받아오지도 않았고 가지고 갔던 빚 문서를 불태워 버렸다고 답했다. 맹상군은 언짢아하자 풍원이 말했다.

“공께서는 제게 공께서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을 사서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이미 그것을 공께 사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의(義)’입니다. 빚 문서를 불태워 ‘시의(市義, 의리를 사다)’하였는바 민심이 공께 귀의하는 것이기에 대단히 큰 이익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렇게 됐다. 수년 후에 맹상군이 모함을 받아 재상자리도 보전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봉지인 설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설읍의 백성은 은공 맹상군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모두 성 밖으로 나와 마중하였다. 길에 늘어서서 환영하면서 결연히 은공을 지지한다고 표시하며 따랐다. 맹상군이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제야 풍원이 고심 끝에 내린 ‘시의’가 무엇인지를 체득하였다.

이것이 바로,

“많이 베푸는 자가 큰 것을 얻는다.”

라는 실례다. 어처럼 작은 손실은 큰 이익을 얻게 만들 수 있다.

□ 전국시대(戰國時代) :

전국(戰國, BC475~BC221), 중국역사상 춘추시기를 잊는 대변혁 시대다. 춘추시대(春秋時代, BC770 ~ BC476)의 오랜 전쟁을 겪은 후 주(周) 왕조 내의 제후국 수가 대대적으로 감소하였다. BC453년, 한(韓), 조(趙), 위(魏)가 지(智)를 뒤엎고 진(晉)을 분할해 전국칠웅(戰國七雄)의 국면을 맞이하였다. BC221년, 진(秦)이 마지막으로 제(齊)를 멸하여 육국을 통일함으로써 전국시대가 막을 내렸다.

   

□ 양사(養士) :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사인(士人)을 부양하다’ 뜻이다. 실력으로 승부하던 전국시대에는 재력과 군사력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인망과 지지를 얻어 자기 세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특히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인(士人) 계층의 신뢰를 얻는 것은 천금보다 중요한 일로 인식되었다. 여러 공족(公族)과 대신은 자신의 문하에 문무를 겸비한 어진 사인을 많이 모아 부양하고 공경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양사(養士)’ 풍조가 보편적으로 성행했는데 문화적인 욕구만이 아니라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실리적인 목표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특히 전국 사군자(四君子)라 불리는 제(齊) 맹상군(孟嘗君), 위(魏) 신릉군(信陵君), 조(趙) 평원군(平原君), 초(楚) 춘신군(春申君) 등은 수천 명의 문객(門客), 빈객(賓客)을 길러 양사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힌다. 전국시대 말의 여불위(呂不韋)도 진(秦) 장양왕(莊襄王, BC249~247 재위)의 즉위를 계기로 진(秦) 정권과 재부(財富)를 좌지우지하게 된 후에는 진의 문화, 학술을 과시하려고 사군자의 사적을 본받아 수천 명에 달하는 문객을 양성하였다. 그들에게 천하고금의 치란(治亂)과 목민(牧民)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케 하여, 그 성과를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으로 집대성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진항(田恆, 생졸 미상), 성은 규(嬀), 전(田) 씨, 이름은 항(恒), 원래 전항(陳恆), 고음에 전(田)과 진(陳)이 비슷해 전항(田恒)이라 부르기도 한다. 춘추전국시기 제(齊)나라 정치가이다. 제나라 전(田) 씨 가문의 제8대 우두머리다. 당시 경대부에게 자(子)를 붙여 경칭으로 썼다. 시호가 성(成)이라 진성자(陳成子), 혹은 전성자(田成子)로 불린다. 전걸(田乞)의 아들이다. 제(齊)간공(簡公) 때 감지(闞止)와 함께 좌우상(左右相)을 맡았다. 선조의 전통을 계승해 대두(大斗)로 재어 양식으로 대여하고, 소두(小斗)로 거둬들여 민심을 얻었다. 간공 4년 감지와 간공을 공격해 살해하고 간공의 동생 오(驁)를 세워 평공(平公)으로 삼았다. 자신이 재상이 되어 제나라 국정을 장악하고 공족(公族) 가운데 강성한 이들은 모두 제거했다. 봉읍을 확대하면서 제나라 권력은 전(田)씨가 독차지하였다.

2) 전문(田文, ?~BC279), 맹상군(孟嘗君)이다. 성은 규(嬀), 전(田) 씨, 이름은 문(文), ‘전국사군(戰國四君)’ 중 한 명이다. 전국시대 제나라 귀족으로 제(齊) 위왕(威王) 전인제(田因齊)의 손자요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 아들이고 제(齊) 선왕(宣王) 전벽강(田辟疆)의 조카다. 부친의 설(薛, 현 산동 등주滕州시 관교官橋진과 장왕張汪진)에 봉해진 작위를 이었기에 설공(薛公)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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