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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55)

홍응명(洪應明)은 『채근담(菜根譚)』에서,

 

“덕은 사업의 기초다.”

 

“덕은 재능의 주인이다.”

 

라고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마땅히 덕성(德性)으로 인생을 도야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고상한 품성으로 고상한 삶을 엮어야 하고 살면서 자연스레 덕성을 화육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고관, 현작 이상의 기질과 문장을 잘 쓰는 재능은 마땅히 덕성으로 도야해 성취하여야 한다. 이 방면의 기초가 보증되어야만 두 번째 방면, 즉 자기 덕성으로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감화는 사람에 따라, 만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홍응명은 구체적으로 4가지를 나열하였다.

 

첫째, 속이는 사람을 만나면, 성실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감동시켜야 한다.

 

둘째, 잔악하고 포악한 사람을 만나면, 상서롭고 화목한 마음으로 감화시켜야 한다.

 

셋째, 간사하고 불공정한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사람 되는 명예, 절조를 가지고 격려하여야 한다.

 

넷째, 기개가 너무 격앙되는 편파적인 사람을 만나면, 도덕의식을 가지고 감정과 행위로 격앙된 의기를 풀어야한다.

 

결국, 사람과 교제할 때에는 덕으로 남을 따르게 하여야 한다.

 

 

제갈공명의 ‘칠금맹획(七擒孟獲)’의 이야기는 이 방면의 모범적인 사례다.

 

거칠고 시원시원하지만 심계가 부족하였던 맹획(孟獲)1은 초(蜀)나라 남방 부족의 수령이었다. 촉나라에 반대해 기병한 후 전투 중에 촉나라 군대에 포획됐으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명은 남방 부족을 안정시키려고 그를 욕하지도 혹사시키지도 죽이지도 않고 촉나라 군대의 군영을 참관시킨 후 나중에 다시 싸울 수 있으면

 

싸우자고 약조하고 돌려보냈다. 맹획은 촉나라 군대와 정면으로 공격하는 전략을 바꾸어 병마를 이끌고 야간에 촉나라 군영을 급습하였다.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공맹은 이미 방비를 마친 후였다. 맹획과 그의 부하들은 촉나라 군대의 매복에 걸려 다시 포획되었다. 맹획이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자 공명은 다시 풀어줬다. 이후 맹획은 계속해서 전략을 바꾸면서 공격하였다. 나루터를 굳건히 지키기도 하였고 산속으로 피하여 굳건히 지키기도 했으나 번번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됐다. 일곱 번째 전투에서 촉나라 군대에게 포획당한 후 마침내 충심으로 심복해 촉나라에 귀순하고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후 촉나라 후방은 안정을 됐고 남방 부족도 편안히 살면서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됐다.(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

 

이 이야기에서 공명은 덕으로 상대를 따르게 만드는 비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신적 또는 심리적으로 상대를 와해시키는 것이 최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철저한 계책과 웅후한 실력으로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였다. 공명은 계속해 맹획에게 활로를 열어주면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포획한 후 풀어주면서 자신이 감화시키겠다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여기 공명의 행위 중에서 우리는 홍응명이 칭찬하였던 미덕을 알 수 있다. 사람됨이 청렴하고 도량이 넓으며 인자하고 결단을 확실히 내릴 수 있는, 일처리가 분명하면서도 세밀하게 고찰하고 성실하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지나치게 까다롭지 않는, 그러한 미덕은 너무 달지도 않은 꿀처럼 짜지 않는 해산물처럼 상대방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맹획과 같은 부류의 우매하고 완고한 사람조차도 심복할 정도이니 무슨 말을 하랴.

 

제갈량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은 적아가 전투를 치르는 중에도 덕으로 적수를 항복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가 속한 단체에서 평화로운 환경 중에서는 더더욱 덕으로 부하와 동료를 도야하고 감화시킬 것은 자명하다.

 

제갈량이 충성을 다한 유비(劉備)는 결코 재능이 뛰어난 개세영웅이 아니었다. 때때로 주견이 부족하기도 했고 우유부단하기도 했으며 잘못된 계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조조(曹操), 손권(孫權)과 맞서 동한(東漢,25~220) 이후 천하를 삼분해 정립하는 국면을 만들었다. 무엇이 있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덕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덕으로 인재를 불러 모았다. 삼고초려해 제갈공명을 밖으로 불러낸 것이 가장 뛰어난 행위였다. 그래서 유비는 임종 전에 태자 유선(劉禪)에게 마음속에 우러나는 말로 신신당부하였다.

 

“나쁜 일이 사소하다고 해서는 안 되고 좋은 일이 사소하다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어짊과 덕이 사람을 따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유비가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경험의 총결이다.

 

이런 유사 사례는 주변에서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덕은 특수한 인격적 감화력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덕으로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봄바람의 은택을 입는 것과 같다. 덕이 없는 자와 교류할 때에는 얼음과 눈이 덮인 곳에 앉아있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족이지만 시간이 있으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맹획이 일곱 번이나 사로잡혔는가?」’를 찾아 읽어보시길. 역사적 사실과 소설 『삼국연의』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찾아보는 것도 역사를 읽는 지혜일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맹획(孟獲, 생졸 미상), 삼국시대 촉(蜀)나라 건녕(建寧) 사람이다. 남중(南中)의 호강(豪强)으로 이한(夷漢)에 복속돼 있었다. 유비(劉備)가 죽은 뒤 지역의 대성(大姓) 옹개(雍闓)와 함께 촉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제갈량(諸葛亮)이 남정(南征)하자 일곱 번 붙잡혔다가 일곱 번 풀려난 뒤 항복해 심복이 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유명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정사 『삼국지(三國志)』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허구로 보는 경우도 있다. 역사서 『한진춘추(漢晉春秋)』, 『양양기(襄陽記)』,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맹획의 사적이 기록돼 있다.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에 제갈량이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 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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