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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굽혀 앞으로 나아가라(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68)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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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3  10: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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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는 한 걸음 양보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10분의 3을 덜어내라.”1

숙손통2은 진시황에게 임용된 문학박사다. 진나라가 6국을 멸망시킨 후 6국의 문화명인을 함양으로 불러들여 현재로 말하면 최고 결책권자의 곁에서 책략을 제공하는 지낭단(智囊團)을 조직하였다. 그런데 그중 대다수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에 거의 사라졌지만 숙손통은 살아남았다. 숙손통은 어떤 방법으로 그 재난을 피해갔는가?

진이세(秦二世)가 황위를 계승한 후 진승(陳勝), 오광(吳廣)이 봉기를 일으키자 진이세는 당시에 남아있던 박사 30여 명을 소집해 물었다.

“반란이 일어났다는데 사실인가?”

박사들은 이미 황제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려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기회에 천하의 어지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직 숙손통만 달리 말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저 별 볼일 없는 작은 도적이 있을 뿐입니다. 군수가 체포했으니 재난이라 할 바 없습니다.”

   

진이세가 듣고는 기뻤다. 진이세는 봉기가 일어났다고 사실을 말한 박사들을 법관을 시켜 조사케 하고 숙손통에게만 큰 상을 내렸다. 조정에서 물러난 후 여러 박사들이 숙손통을 질책하였다.

“선생께서는 어찌 그렇게 아첨하면서 환심을 사려고만 하십니까?”

숙손통이 말했다.

“여러 박사들은 모르오. 나는 범의 아가리에서 벗어난 것이올시다.”

말을 마친 후 진 왕조는 이미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급히 행장을 수습해 몰래 달아났다.

나중에 숙손통은 한왕 유방(劉邦)에게 의탁하였다. 유방은 줄곧 책만 읽는 지식인을 무시하였다. 유생의 모자를 가지고 요강으로 삼기도 하고 독서인을 보기만 하면 욕해댔다. 숙손통은 처음에는 밥조차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별의별 힘든 일을 다 당했다. 유방이 숙손통이 유생으로 복장한 모습을 보고는 눈에 거슬려 했다. 숙손통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곧바로 초나라 사람의 복장으로 갈아입자 그제야 유방이 흡족해 했다.

숙손통이 한왕 유방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 그를 따르는 제자가 100여 명이나 됐다. 그런데 숙손통은 아무도 추천하지 않고 강도 출신인 건강한 사내들만 추천하는 게 아닌가. 제자들은 몰래 욕해댔다.

“선생을 모신지 몇 년인데 아직도 우리를 추천하지 않고 그저 저런 강도들이나 추천하시니, 무슨 까닭인가?”

숙손통이 그 말을 듣고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한왕은 지금 죽음을 무릅쓰고 천하를 뺏으려 하고 있다. 너희가 전쟁할 줄 아느냐? 지금은 우리 독서인이 필요치 않을 때이다. 더 참고 기다리고 있으라. 나는 결코 너희를 잊지 않고 있다.”

   

유방이 한 왕조를 건국한 후에 대신들이 공무를 논의하는 데에 질서도 없고 규칙도 없이 엉망진창이었다. 술 마시고 취하면 고성을 내지르기도 했고 심지어는 칼을 뽑아 기둥을 베기도 했다. 유방은 그런 상태가 계속될까 걱정되었다.

숙손통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방을 찾아가 예법을 제정하도록 건의하자 한고조는 질책하였다.

“내 천하는 말 위에서 얻은 것이다. 너희 독서인이 무엇이란 말이냐? 꺼지라.”

숙손통은 완곡하게 말했다.

“폐하, 천하는 말 위에서 얻을 수 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유방이 듣고는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숙손통은 황제와 신하가 조정에서 정무를 보는 예의를 제정하자고 제안하였다. 숙손통은 몇 개월 기간 동안 자신이 직접 ‘조반(朝班)’ 예제를 규정하고 몇 차례 연습한 후에 한고조에게 알렸다.

날이 밝기도 전에 황제를 배알하는 의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조정에 나가려는 문무백관은 관직의 상하에 따라 궁문 밖에서 줄서서 기다렸다. 궁문 밖에는 오색찬란한 깃발이 휘날렸다. 웅장하고 위엄 넘치는 위사들이 손에 창과 칼을 들고 양쪽에 도열하였다. 전령관이 호령하자 대신들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순서에 따라 궁전에 올랐다. 그런 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며 숭호(嵩呼)하였다.

“우리 황제 만세 만만세!”

한고조는 그런 기개와 위엄을 보고 대단히 기뻤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내 오늘에서야 비로소 황제가 된 존엄을 알겠노라!”

글 읽는 지식인이 쓸모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 기쁜 나머지 한고조는 그 자리에서 숙손통을 태상(太常)으로 임명하고 황금 500량을 하사하였다. 숙손통을 따르던 유생 모두 상을 받거나 등용되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숙손통이 한고조에게 건의한 ‘조반’ 제도는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는 겪었으나 근간은 청(淸) 왕조 말기까지 근 2000년 동안 실행되었다. 봉건사회의 정치 체제 사상은 줄곧 숙손통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숙손통과 같은 지식인이 받은 간난신고의 경력과 비범한 공헌은 그보다 더 불행을 겪은 사마천(司馬遷)이 ‘한나라 유종(儒宗)’이라 인정하였다.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학도는 얘기할 수도 있다.

“숙손통은 진이세의 마음에 아첨을 떨지 않았는가? 후안무치의 소인이 할 짓이 아닌가?”

과연 그것뿐일까? 어쩌면 당시 역사적 사실과 외부의 환경을 등한시한 관점은 아닐까?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지름길과 좁은 길에서는 한 걸음쯤 멈추어 남을 먼저 가게 하라. 맛있는 음식은 삼등분으로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즐기게 하라. 이것이 세상살이의 가장 안락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菜根譚』)

2) 숙손통(叔孫通), 『초한춘추(楚漢春秋)』에는 숙손하(叔孫何)〔일설에는 ‘통(通)’은 자(字)라고 한다〕로 돼있다. 생졸 미상, 설현(薛縣)〔현 산동성 조장(枣莊) 등주(滕州)시 관교진官橋鎭)〕 사람이다. 진(秦)나라 대소박사(待詔博士)가 됐다가 진이세 때에 박사에 봉해졌다. 진이 망하려하자 설성(薛城)으로 되돌아가 항량(項梁)에게 투항하였다. 항량이 정도(定陶)에서 패하자 초회왕(楚懷王)을 따라갔고 회왕이 의제(義帝)가 되자 항우(項羽)를 섬겼다. BC205년에 유방(劉邦)이 팽성(彭城)을 공격하자 한군(漢軍)에게 투항하였다. 무사를 추천하자 한왕(漢王)이 박사로 삼고 직사군(稷嗣君)으로 봉했다. 한왕이 통일한 후 진나라 의법(儀法)을 폐지하고 간편한 규범(規範)으로 대체했다. 군신 간의 예절이 바로 서지 않자 숙손통에게 고례(古禮)를 참조해 한나라의 적합한 예절과 의례를 만들도록 했다. 뒤에 태자태부가 되었다. 한나라 유종(儒宗)으로 평가받는다.(사마천(司馬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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