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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나무와 등나무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나리 (2)
김상회 정치학 박사  |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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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6  10: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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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간 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목은 어디에 갖다 심어놓아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미나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제목만 봐선 미나리처럼 강인한 한국인 이민 가정이 미국에서 억척스럽게 뿌리내리는 희망찬 이야기를 짐작하게 한다. 

   
▲ 명분이 사라져도 방향이 바뀌진 않는다. 또다른 명분을 내세워 욕망을 향할 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속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급파’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를 가져와 딸네 부부가 아칸소주 어디쯤에서 일구는 농장 한편에 뿌려 가꾼다. 씨앗과 열매는 통상 외국여행 반입이 불가한데 이 문익점 같은 할머니는 어떻게 미나리 씨앗 한움큼을 ‘밀반입’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공항 검색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미국의 생태계는 한 세대도 못 견디고 붕괴될지도 모르겠다.

순자가 밀반입한 미나리는 과연 그 이름답게 아칸소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나 정작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가정생활은 그다지 순탄치도 못하고 정말 미나리처럼 미국땅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불안해 보인다.

제이콥은 미국에 이민 와서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악착같이 모은 피 같은 돈을 모두 털어 척박하고 거친 아칸소의 땅을 사는 데 투자한다. 영악하게 개발정보를 입수하고 땅 투기에 나선 것이 아니라 그 척박한 땅에 자신의 농장을 일구는 꿈을 꾼다. 죽을 때까지 병아리 ‘똥구멍’이나 들여다보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꿈을 찾아가는 일은 대개는 모험에 가깝다. 컨테이너 하나에 이삿짐을 모두 싣고 덜덜거리는 낡은 자동차를 몰아 아칸소를 향하는 내내 제이콥은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그의 아내 모니카는 불안하고 심란하기만 하다. 제이콥이 병아리 감별사로 벌어오는 돈으로 도시에서 그럭저럭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건만 난데없이 사람 구경도 쉽지 않은 허허벌판 땡볕 아래 놓이게 된 모니카의 심사는 복잡하기만 하다. 

   
▲ 영화 속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는 사사건건 갈등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컨테이너에 싣고 온 짐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컨테이너인 ‘바퀴달린 집’ 컨테이너 하우스로 들어간다. 제이콥은 ‘바퀴달린 집’도 마치 캠핑 온 학생처럼 들뜨지만 모니카는 난민촌에 입소하는 사람처럼 참담하다.

자신의 농장을 일구고 싶은 제이콥의 욕망과 번화한 도시에서 안락하게 살고 싶은 모니카의 욕망은 서로 뒤엉켜 서로의 목을 조른다. 부부의 갈등에 이따금씩 기름을 붓는 건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못한 5살짜리 아들 데이빗이다. 모니카는 데이빗의 심장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즉각 달려갈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도시에서 살아야 할 가장 주요한 이유와 명분으로 내세운다. 제이콥이 쉽게 방어하기 어려운 모니카의 무기다.

그러나 영화 막바지에 데이빗의 심장을 검진한 의사는 “아칸소 시골의 환경이 데이빗의 심장을 치유해 줬다”면서 지금의 생활환경을 절대 바꾸지 말 것을 권한다. 아들의 심장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는 결과에 뛸 듯이 기뻐해야 할 모니카의 표정이 왠지 개운치 못하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그래도 농장을 때려치우고 도시로 돌아가자고 한다. 

결국 데이빗의 심장문제 때문에 도시로 가자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제는 데이빗의 심장 때문에라도 시골에 살아야 한다는 판정이 나왔음에도 모니카는 도시를 고집한다. 데이빗의 심장에 또다시 문제가 생기는 한이 있어도 도시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제이콥의 욕망은 집요하게 ‘농장’으로 향하고, 모니카는 집요하게 ‘도시’로 향한다. 참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욕망의 충돌이다. 이런 충돌은 갈등을 야기한다. 갈등(葛藤)이란 칡나무(葛)와 등나무(藤)를 합친 말이다.

등나무는 오른쪽으로만 감아 올라가고 칡은 죽어라고 왼쪽으로만 감아 올라간다. 상황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법이 없다. 칡나무와 등나무가 같은 장소에서 엉키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못 살게 굴고 결국은 공멸한다. 영화 속 제이콥과 모니카의 모습은 영락없는 칡나무와 등나무의 모습이다.

   
▲ 이해관계는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지만 욕망, 믿음, 문화 등은 변하기 어렵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려 왕조를 뒤집고 새 왕조의 주인이 될 욕망을 키운 이방원은 일편단심 고려왕조를 지키기로 작심한 정몽주에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자’고 회유한다. 

다시 말하면 오른쪽으로만 감아 올라가는 등나무인 정몽주에게 너도 왼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한 셈이다. 등나무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 일인가. 결국 선죽교에서 때려죽이는 것으로 해결한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이해관계는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지만 욕망, 믿음, 문화 등은 마치 DNA처럼 원천적이고 변화가 어렵다. 타협의 대상이 안 된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등나무와 칡나무 가지들이 엉켜서 서로의 목을 조르고 비명을 질러대는 듯하다. 상황에 따라 서로 왼쪽으로도 감고 오른쪽으로도 감으면서 올라가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다. 모니카가 아들 데이빗의 심장병을 명분으로 내세우듯 온갖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욕망을 바꾸지 않는다. 명분이 사라진다고 방향을 바꾸지도 않는다. 또다른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욕망을 향할 뿐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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