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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굽혀 앞으로 나아가라(2)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69)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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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9  17: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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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1과 장우(張禹)는 한(漢) 성제(成帝)의 스승이었다. 당시는 왕망2 일가가 정권을 농락하고 있을 때였다. 민간의 원망이 극에 달해 있었다. 각지의 상소가 중앙으로 빗발쳤지만 장우가 중간에서 막아 황제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주운이 황제 면전에서 장우에게 힐문하였다.

“그렇게도 많은 아래의 주장을 성상에게 보여주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오사모(烏紗帽)만 보전하려고 하고 있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위 아래로 의견이나 소식이 통하지 않게 만들고 있으니, 죽어 마땅하오!”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가? 사회 조류에 맞춰 살아가면 천하를 구제하겠다는 자신의 신앙을 위배하게 되고, 범속을 벗어나 조류에 역행하면 곧바로 발걸음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위기의 연속이다. 어쩌면 한 평생 먹을 밥도 없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하루 종일 도덕 이상을 강구하면다면 생계를 도모할 방법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입에 풀칠도 못하게 된다. 모든 공명을 바라는 것을 돌보지 않는다면, 관리가 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상적인 도덕도 근본적으로 말할 나위가 못된다.

생존과 이상이 충돌할 때 오로지 목숨만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것은 옳지 않다.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어떨 때에는 선택해야할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 목숨을 유지하면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고 더 큰 사업을 성취할 수 있다면 죽지 못해 구차하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리 수치스럽다 할 수만은 없다. 하찮은 죽음보다는 더 가치가 있기에 그렇다.

중국 고대에 박학다식한 선비 중에 권력자가 관직을 준다 하여도 마다한 사람이 많다. 왜 관리가 되지 않았을까? 고결했기에 그렇다고만 할 수 없다. 일단 나서서 관리가 되면 반드시 사회에 공헌할 바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다. 당시에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배척당하고 버림받았다. 질솥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이 높은 관직에 올라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자신이 출사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을 뿐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던 시기다. 어찌 억지로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숙손통은 진이세가 무능한 혼군(昏君)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야 명철보신을 결정하였다. 물러서서 생명의 안전을 구했다. 어찌 명석한 선택이라 아니하겠는가?

자신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태평성세를 기다리면 자신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도광양회’다. 진시황이 통치하는 시기에는 자신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목숨을 부지할 다른 환경을 찾아야 할 밖에. 한 왕조가 건립되자 최고의 임기응변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마침내 일대 유학의 종사가 되어 몇 천 년의 유가 예의(禮儀) 제도를 개창하였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진정 큰일을 성취한 사람은 나무처럼 굳세고 힘 있게 우뚝 설 때도 있지만 굳셈 속에 부드러운 강임함이 있었다. 중압 속에서 굽힘은 있어도 부러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쁜 물에 들지 않고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이상을 견지하였다. 동시에 난세에 생존하려고 정견 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남다른 모습을 유지하였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세속과 타협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왕왕 ‘대지약우(大智若愚)’의 모습을 보였다. 말을 잘 할 줄 모르고 무서워 벌벌 떠는 듯이 하기도 하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목적은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있었다.

   

자애로우면서도 지조가 있는 사람, 품격이 고상한 사람은 나무처럼 올곧다. 모든 나무가 굽히고 부러질 때에도 혼자서 우뚝 서 있다. 그렇지만 너무 굳세게 서 있으면 쉬이 부러지기도 한다.

생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먼저 시기와 형세를 잘 판단하여야 한다. 이해관계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 굽힐 때는 굽히고 펼 때는 펴야 한다. 맹목적으로 시류를 쫓거나 아무렇게나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서는’ 안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주운(朱雲, 생졸 미상), 자는 유(游), 원래 노(魯)나라 땅에 거주했으나 나중에 평릉(平陵)으로 이주하였다. 어릴 적에 임협(任俠)을 좋아하다가 나이 40세에 『역(易)』, 『논어(論語)』를 배웠다. 원제(元帝) 때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과 역학(易学)을 변론해 승리를 거두고 박사(博士)가 됐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 하여 여러 번 조정 대신을 공격하였다. 성제(成帝) 때에 승상 장우(张禹)를 간신이라 간언하였다. 황제가 분노하여 참수하려 하자 죽을힘을 다하여 궁전의 난간을 잡고 놓지 않아 결국 난간이 부서졌다. 황제는 난간을 고치지 말라고 명령하고 그를 사면하였다. ‘절함(折檻)’의 전고다. 주운은 만년에 학생을 가르치며 살았다.

2) 왕망(王莽, BC45~23), 자는 거군(巨君), 위군(魏郡) 원성(元城) 위속리(委粟里)〔현 하북성 감단(邯鄲)시 대명(大名)현〕 사람이다. 서한시기 권신이요 정치가, 개혁가이다. 신현왕(新縣王) 왕만(王曼)의 둘째아들로 한 왕조의 황위를 찬탈해 ‘신조(新朝)’를 세운 개국황제다. 9년부터 23년까지 ‘진황제(眞皇帝)’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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