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서훈이 있었다. 제주출신 한 여성 항일운동가다. 고(故) 이경선(1914~?) 지사!
그가 80여년 만에 애국지사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것도 고향을 떠나 먼 뭍지방에서 그의 가족이 이제서야 그 기쁜 소식을 들었다.
경기북부보훈지청은 지난 26일 고 이 지사의 건국훈장 애족장 전수식을 열었다.
이경선 지사는 1914년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도의 가파도에서 이도일과 김응주의 딸로 태어났다.
이 지사의 아버지인 이도일은 일제강점기 시절 산남지역(제주도 남부지역)의 유통업을 바꿔놨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탁월한 사업수완을 보였다. 제주 서남부인 대정지역에서 사업을 일으켜 일제자본과 맞서서 지역경제를 지켜내려고 했다.
가파도의 신유의숙, 대정보통학교, 대정중학교, 대정 유치원을 설립하는데 앞장섰다. 신유의숙 ,대정중학교에서 초대 교장을 지냈고, 대정유치원에서 초대 원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발전에도 앞장섰다. 많은 항일운동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인물이 바로 그다.
그의 딸 이경선씨는 대정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동덕여고보에 재학하던 중 동맹휴업을 이끌었고, 항일독서회활동을 하다가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에 두 번이나 연행조사를 받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직물주식회사 인견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해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이끌다 1934년 체포돼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이후 일본 고베에 있는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41년 효고현 경찰에 체포당했다가 풀려난 뒤 고베약학전문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돼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긴 옥살이었다.
해방 이후 서울에서 열린 조선부녀총동맹 결성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속에 입장해 선전부를 맡았다. 이 때의 인연으로 당대의 여성 박순천씨는 제주에 오면 이경선부터 찾았다고 한다.
1947년 아버지인 이도일씨가 대정중 초대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이경선씨도 고향으로 돌아와 대정중 교사로서 물리화학을 담당했다.
많은 대정지역 사람들이 이경선씨를 훌륭한 연설가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권익향상에 대한 강연에는 동네 부녀자들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대거 참석해 수많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독립적인 기질의 이 지사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항일운동에만 전념, 일경에 무려 5번 체포되고 3년간의 투옥생활을 겪었지만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 후 제주는 그녀가 헌신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으로 시작된 제주4.3의 회오리 속에서 '묻지마'연행을 당했다. 결국 일본으로 밀항, 약국을 경영하며 생계를 이었으나 제주에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말년은 쓸쓸했고, 그의 노년기 여생은 북한에서 이어졌다란 기록만 있을 뿐이다. 물론 그의 사망연대 역시 아직 모른다.
지난 3월1일 3.1절 기념식에서 이 지사는 쓸쓸한 독립훈장 애족장을 서훈받았다. 보훈처에서 자체 발굴해 서훈한 것이다.
다행히 서훈소식을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 이경암이 알게 돼 국가보훈처 경기북부지청에서 서훈식을 열어줬다.
애국지사 이경선을 기억하는 건 이제 후손들의 몫이다. 너무 늦었지만 그만큼 그의 나라를 향한 애국의 마음은 더 오래도록 기억돼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