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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72)

전국(戰國, BC475~BC221)시기에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나라는 조나라에 태후의 막내아들 장안군1을 인질로 보내면 군대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나라 태후는 고집을 피워 승낙하지 않았다.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이 극렬히 권했는데도 아무 쓸모없었다. 결국 조나라 태후는 아예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다시 권하는 자가 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다.”

 

얼마 없어 좌사 촉섭2이 뵙기를 청했다. 태후는 그도 권고하기 위하여 만나기를 간청했다는 것을 알고는 노기 찬 얼굴을 하고 기다렸다. 촉섭은 태후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죄를 청했다.

 

“소신의 발에 병이 나서 빨리 걸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태후를 뵙지 못하여 마음속에 늘 짐이 되었는데 오늘에서야 특별히 찾아뵙게 됐습니다.”

 

태후는 촉섭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지팡이에 의지해 걷노라고 말했다. 촉섭은 또 식사는 잘하고 계시냐는 등 일상적인 일을 묻자 태후도 답했다. 그런저런 일상사를 얘기하면서 태후의 노기는 점차 사라졌다.

 

촉섭이 태후에게 자신의 작은아들을 왕궁 호위대에서 호위병사로 일할 수 있도록 해달하고 요청하자 태후는 흔쾌히 대답하면서 촉섭에게 작은아들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촉섭은 15살이 됐다고 답하고는 자신이 죽기 전에 작은아들에게 자립할 길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태후는 남자들도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촉섭이 여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 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때 촉섭은 묻는 김에 태후에게 연후(燕后, 연나라에 시집보낸 태후의 딸)를 장안군보다 더 사랑하시느냐고 물었다. 태후는 장안군을 사랑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촉섭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는 마땅히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태후의 예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태후가 연후를 연나라에 보내면서 이별할 때에는 연연해하며 헤어지기 싫어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였지만 나중에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마다 연후가 돌아오지 않고 연나라에 남아 그 자녀들이 대대손손 연나라 왕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태후에게 반문하였다.

 

“태후께서 그렇게 하는 것은 연후의 앞날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시냐?” 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촉섭이 말머리를 돌려 태후에게 지금부터 3세 이전에 조나라 대부가 제후로 승격된 이래로 무릇 국왕의 자손은 후(侯)로 봉해졌는데 후기에는 그런 적이 있느냐고 묻자 태후가 고개를 저었다. 촉섭은 또 조나라 이외에 다른 자손 중에서 봉후된 자손이 존재하느냐고 묻자 태후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촉섭이 비로소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

 

후대에 봉후되지 못한 까닭은 그들 지위는 높아졌으면서도 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후한 대접을 하면서도 공적을 쌓도록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처럼 태후께서 장안군에게 현귀한 지위를 주고 비옥한 토지를 내려주면서도 국가를 위하여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만약에 어느 날 갑자기 태후께서 세상을 뜨시면 장안군은 어떻게 조나라를 위하여 공을 세울 기회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태후께서 장안군을 위하여 원대한 앞길을 열어주지 않은 까닭에 노신이 장안군보다 연후를 더 사랑한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에 태후는 촉섭의 말을 받아들여 답했다.

 

“좋소이다. 그대가 보내고 싶은 곳으로 그를 보내시오.”

 

마침내 장안군에게 수레 100승을 주고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자 제나라가 출병하였다.3

 

이 사례에서 촉섭이 태후의 맨 처음에 가진 생각을 바꾸어 장안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기로 동의하게 만든 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인지상정을 교묘하게 운용한 것이 계기였다. 태후가 장안군의 앞길을 생각하지 않고 자녀에 대한 일시적인 사랑 때문에 국가 대사를 그르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촉섭은 태후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실하다는 것을 이해했기에 일상적인 일을 얘기하는 것에서 출발해 태후에게 자신의 아들을 왕궁에서 호위병사로 일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태후가 연후와 장안군을 사랑하는 차이를 비평한 후 마지막으로 장안군을 아끼거들랑 국가를 위하여 공을 세울 기회를 주라고 건의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안군을 인질로 제나라에 보내고 진나라 군대를 철군토록 하자는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지극히 적당하게 태후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태후에게 비평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였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충언을 했다는 본보기라 하겠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장안군(長安君, 생졸 미상), 성은 영(嬴), 조(趙) 씨, 전국시대 조(趙)나라 공자로 조나라 효성왕(孝成王)의 동복동생, 모친은 조(趙) 위후(威后)다.

 

2) 촉섭(觸讋, 생졸 미상), 촉룡(燭龍), 『사기(史記)·조세가(趙世家)』에는 ‘촉룡(燭龍)’, 『한서(漢書)·고금인표(古今人表)』에도 ‘좌사(左師) 촉룡(燭龍)’이라 돼있고, 1973년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3호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전국책(戰國策)』에도 ‘촉룡(燭龍)’이라 돼있다. 현존하는 『전국책』은 ‘용언(龍言)’ 두 글자를 잘못 써 ‘섭(詟)’이 되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대신이다.

 

3) 자의(子義)가 듣고는 말했다. “군주의 자식은 골육지친이다. 그렇지만 공훈 없는 작위와 대가 없는 봉록으로 지위를 지키기 어렵다. 하물며 신하의 자식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戰國策』卷4「觸讋說趙太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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