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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then~’ 시대의 종언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벨 (5)
김상회 정치학 박사  |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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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24  15: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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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부부는 아이를 하나 잃은 슬픔을 묻어두고 새 출발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낯선 모로코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 나름대로 많은 생각 끝에 계획한 여행일 테고, 또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초행길인 만큼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을 법하다. 인터넷에서 여행정보도 수집하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계획도 세우고 여행자보험에도 가입했을 터다. 하지만 리차드 부부는 생각지 못한 돌발상황에 부닥친다.

   
▲ 우리가 세우는 계획들은 항상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에 의해 흔들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리차드 부부가 제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했다고 해도, 얼마 전 그들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잃고 마음이 무너진 한 일본인 사업가가 모로코에서 사냥여행을 마치고 사냥총을 여행가이드에게 선물로 주고 간 사실까지 알 리가 없다. 그 사냥총이 돌고돌아 그들의 여행 동선에 포함된 지역의 한 양치기 소년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없다. 열심히 구글링을 해도 그런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은 처음 잡아보는 사냥총 방아쇠를 당겨보고 싶어 근질거리다 까마득히 먼 곳에 리차드 부부가 탄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가늠쇠에 눈을 붙이고 격발한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소년은 뛰어난 스나이퍼 자질을 타고났다. 총알은 정확히 버스를 명중하고 리차드 아내의 어깨를 꿰뚫는다. 적어도 북아프리카의 오지로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면 이 정도의 사고까지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했을까.

춘추전국시대 중국 기(紀)나라에 참으로 ‘걱정도 팔자’인 한 사내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사내는 혹시나 하늘이 무너지고 갑자기 땅이 꺼지는 경우의 수까지 걱정해 마지않다가 결국 대문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되고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우(杞憂)’란 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시다.

관광버스를 타고 모로코의 황량한 사막길을 달리다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에 아내가 피투성이로 쓰러지는 사태를 맞이한 리차드에게 ‘기우’는 더 이상 쓸데없는 걱정이 아닌 반드시 대비했어야 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자신이 탄 관광버스가 지나는 지역을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거기엔 양치는 야산이 많고 따라서 그 지역 양치는 소년들이 혹시 들개들을 쫓으려 사냥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며, 철없는 양치기 소년이 심심한 김에 장난삼아 관광버스를 향해 총을 쏘아볼지도 모를 일이다.

사냥총의 사정거리가 통상 3㎞라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오발사고를 감안해 부부가 나란히 방탄조끼를 입고 앉아 있었으면 불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영화 '바벨' 속 주인공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벼랑에 몰린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리차드 부부처럼 우리 모두 무슨 일을 도모하고 미래를 설계할 때 대개 ‘if~then~’의 용법을 사용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혹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응하면 될 것이다’고 마음속에 그려보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사실 ‘if~then~’의 논리는 철저히 이론적이다. 이론(theory)이란 발생할 수도 있는 수많은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가정일 뿐이다. 발생가능한 수많은 변수를 모두 감안한다면 어떤 이론도 만들어질 수 없다.

참으로 ‘걱정도 팔자’라고 조롱거리가 됐던 기나라 사내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있을 수 없는’ 변수까지 걱정했다지만 멀쩡한 아파트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땅이 한순간에 꺼지는 ‘싱크홀' 현상을 보면 이 사내가 괜한 걱정까지 했던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우리가 세우는 계획들은 항상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차이도 없고 변함도 없다. 그러나 모든 사회관계가 어느 정도 통제가능한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더 나아가 거미줄 관계로 변화해 가는 ‘탈권위와 탈중심 사회’에서 통제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변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 탈권위와 탈중심 사회에선 통제불가능한 변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기에 더해 ‘세계화 시대’는 변수의 발생지역을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킨다. 일본 사업가가 모로코에 남긴 사냥총이 모로코 양치기 소년의 손에 들어가 미국인 가슴에 총알이 박히고, 양치기 가족들이 CIA와 모로코 경찰의 합동작전에 피살되고, 아멜리아라는 멕시코 가정부가 미국에서 추방되고 그녀와 그녀 가족들의 삶이 끝장난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는 일들이다. 이쯤 되면 운명이거나 팔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많은 통제불가능한 변수가 존재한다면 ‘if~then~’이란 논리적인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공허한 희망에 불과하게 된다. 다양성의 시대와 세계화 시대는 ‘if~then~’의 용법을 무력화한다.

어쩌면 현대사회는 ‘even if~then~’의 시대다. 너무나 많은 통제불능의 변수가 내 계획이 의지와는 상관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철저히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 결정론(determinism)이 호소력을 잃고 오히려 운명론(fatalism)이 호소력을 발휘한다.

그래서일까.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백악관에까지 ‘점성술’이 파고들고, 가장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많은 MZ세대들도 걸핏하면 토정비결 책을 뒤적이던 옛 노인들과 다를 바 없이 ‘사주 카페’를 찾는다. ‘If~then~’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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