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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관리가 되지는 않는다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78)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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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12  10: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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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순금이 없듯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열심히 하여 관리가 됐으나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아무리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착실하다 하여도 결국은 아수라장이 되어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은 좋지만 결코 좋은 관리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하는 것은 당신이 동정 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옹정(雍正, 1722~1735 재위) 황제는 사람을 쓰는 문제에 비교적 깨어있었다. ‘현재(賢才)’를 표준으로 삼았다. 결코 ‘오로지 친한 사람’만 쓰지는 않았다.

   

청(淸) 왕조가 건립된 초기에 여러 왕공이 제각기 공을 세웠다. 순치(順治, 1643~1661 재위) 황제는 그들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하오기1) 인원 모두 왕부의 부하가 됐다. 평화로운 날이 계속됐지만 거만하고 횡포한 여러 왕공의 습속은 고쳐지지 않았다. 자주 부하를 잔인하고 포악하게 대했다.

양광총독(兩廣總督)〔광동성(廣東省)・광서성(廣西省) 총독〕 양림(楊琳)은 돈군왕에 속해 있었다. 어느 날, 돈군왕2)에게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의심받았다. 돈군왕은 환관을 광주로 보내어 총독부 곳곳을 수색하면서 양림총독을 면목 없게 만들었다.

옹정은 그런 짓을 저지르는 행위를 몹시 싫어하였다. 옹정은 즉위 후 제후로 분봉된 종실에게 지방 관아의 관원과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매년 관례대로 확인하는 것 외에도 지방 관원이 개인적으로 왕부로 찾아가 배알하는 것을 금했다. 옹정은 여러 왕공에게 소속된 숙직 호군도 철폐하였다. 그러자 왕공은 다시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공무를 중히 여기고 법을 지키게 됐다.

옹정은 왕공에게는 엄격히 대했지만 대신에게는 우호적이었다. 대신을 임용할 때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었다.

옹정이 악문단3)을 중용한 것이 한 사례다. 악문단이 내무부 낭관(郞官)을 맡고 있을 때에 옹정은 황자 신분으로 번저(藩邸)에 있었다. 어느 날, 옹정이 일이 있어 악문단을 불렀는데 악문단이 거절하면서 말했다.

“황자가 된 사람은 마땅히 자기 덕행에 주의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바깥 신하와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옹정은 그 말에서 느끼는 바가 컸다. 일리가 있었다. 나중에 옹정이 즉위한 후 곧바로 악문단을 소견하였다. 악문단을 아꼈던 사람들은 옹정이 그에게 못되게 굴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옹정은 악문단에게 말했다.

“이전에 그대가 낭관이란 말직에 있을 때 감히 황자의 청구를 거절했노라. 엄격하게 법을 지켰다고 아니 할 수 없노라. 대신이 되면 반드시 황제에게 충성할 것이니, 그대에게 강소(江蘇) 정사(政使)를 내리겠노라!”

10년 후에 악문단은 재상이 되었다. 옹정이 그에 대한 신임이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옹정은 대신의 급료가 무척 적어 지불하는 경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양렴은(養廉銀)’을 설치하여 명절마다 신하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악문단이 입조할 때에 옹정은 특별히 해망4) 사공에게 명하여 악문단을 위하여 대시가(大市街) 북쪽에 관저를 짓도록 했다. 필요한 용구와 기물 모두 갖추도록 했다.

장문화5)가 일찍이 소소한 병을 얻어 완쾌되기를 기다릴 때 옹정은 좌우에게 말했다.

“나의 고굉(股肱)이 편치 않다. 며칠이 지나야 완쾌되겠구나.”

   

황상이 탈이 났다는 말을 듣고는 대신들이 급히 문안오자 옹정이 장문화를 가리키며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 신하가 내 고굉이 아니더냐?”

증승 진시하6)의 원적은 운남이었다. 옹정이 그의 어머니가 연로하다는 것을 고려해 운귀사(雲貴司)에게 명하여 그의 모친을 경성으로 데리고 와서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악종기7)가 변방에 진수하며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위세가 대단하였다.

“악종기는 악비(岳飛)의 후예다. 송(宋)과 금(金)은 대대로 숙적인바 마땅히 그를 방비하여야 한다.”

라고 비방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자 옹정은 그 상주문을 악종기에게 보냈다. 나중에 악종기가 서역으로 출정하자 옹정은 자기 아들을 직접 옥문관으로 보냈다. 당시 군사 중에 그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만주팔기(滿洲八旗)는 위 삼기인 상삼기(上三旗)와 아래 삼기인 하오기(下五旗)로 나뉜다. 하오기(下五旗)는 삼기(三旗) 아래다. 황제가 친히 거느리는 삼기는 ‘상삼기(上三旗)’이다. 여러 왕, 버일러(貝勒), 버이서(貝子)가 나누어 거느리는 오기(五旗)를 ‘하오기(下五旗)’라 했다. 청 왕조가 입관(入關)하기 전의 하오기는 정홍기(正紅旗), 양홍기(鑲紅旗), 정백기(正白旗), 양백기(鑲白旗), 양람기(鑲藍旗)였다. 입관 후에 순치 황제가 중앙정권의 정치 경제의 힘에 근거해 정백기(正白旗)를 장악하였고, 정람기(正藍旗)를 뽑아내어 정홍기(正紅旗), 양홍기(鑲紅旗), 정람기(正藍旗), 양백기(鑲白旗), 양람기(鑲藍旗)로 하오기(下五旗)를 조정하였다.

2)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인어(胤䄉)(1683~1741), 청 왕조 종실, 강희(康熙) 황제의 열째아들이다. 강희 48년(1709)에 돈군왕(敦郡王)에 봉해졌다.

3) 오르타이(鄂爾泰, 1677~1745), 시린교로(西林覺羅) 씨, 자는 의암(毅庵), 만주(滿洲) 양람기(鑲藍旗) 사람으로 전문경(田文镜), 이위(李衛)와 더불어 옹정(雍正)의 심복이었다. 문단(文端)은 시호다.

4) 해망(海望, ?~1755), 오아(烏雅) 씨, 만주 정황기 사람으로 청 왕조 대신이다.

5) 장정옥(張廷玉, 1672~1755), 자는 형신(衡臣), 호는 연재(研齋), 시호는 문화(文和), 안휘 동성(桐城) 사람이다. 청 왕조 대신으로 50년 동안 관직에 있었다.

6) 진시하(陳時夏, ?~1738), 자는 건장(建長), 조상은 금릉(金陵)인이었는데 나중에 운남(雲南)에 거주하였다. 광서(廣西) 도어사(道御史)를 지냈다.

7) 악종기(岳鍾琪, 1686~1754), 자는 동미(東美), 호는 용재(容齋), 사천 성도 사람으로 원적은 양주(凉州) 장랑(莊浪)〔현 난주(蘭州) 영등(永登)〕이다. 악비(岳飛)의 21대 손으로 청 왕조의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 시기의 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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