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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제주] 트레일 러너 안병식씨
제주판 ‘포레스트 검프’…“꿈을 이루니 또 꿈이 생긴다”

달리는 것을 싫어했다. 오래달리기는 더욱 싫었다. 산골마을 촌놈이었지만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면 매번 남들보다 뒤쳐졌다.

 

그랬던 촌놈은 달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또 달리고 있다. 그것도 평평한 도로가 아니다. 사람이 살기도 힘든 오지를 달린다. 사막, 눈밭, 얼음, 산악, 계곡, 정글 등등. 그가 달릴 수 없는 곳은 없다. 그는 '미친놈'(?)이다.

 

학창시절에는 미술가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러너(runner)’가 됐다. 그냥 러너가 아닌 ‘트레일(trail) 러너’다. 제주도 산골 촌놈, 한라산 정상까지 산행길을 1시간30분만에 주파한다.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의 저자 안병식(39)씨가 그 주인공이다.

 

안씨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가 고향이다. 어려서 몸이 약했다. 보통 ‘촌놈’들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안씨는 그렇지 않았다. 오래 달리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고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체력검정 시험을 보면  ‘왜 우리는 오래달려야 하지’라고 의문을 가졌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전공이 ‘서양화’였기 때문에 뛸 일이 없었다.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선후배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그는 영화처럼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각종 극한(extreme)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도전한 익스트림 마라톤만 20여개 대회를 섭렵했다. 우승도 두번이나 차지했지만 더 큰 것을 얻었다.

 

물론 좌절도 있었다. 그만두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도전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달리면 달릴수록 욕심이 아닌 꿈이 생겼다. 그 꿈은 새로운 꿈을 만들고 있다. 이제 그는 그 꿈을 고향에서 키우고 있다. 고향 산골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트레일 러닝(running)을 기획하고 있다.

 

 

-왜 달리게 됐나?

 

“대학에 진학해서는 (미술학과)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동기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어울리다 밤이 되면 또 작업실에서 밀린 작업을 계속했다. 술과 담배로 몸을 많이 혹사시키면서 대학 초년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게 됐다. 사실 이 영화가 내가 달리기와 인연을 맺게 해 줬다.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지금은 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서 5km 건강달리기 대회가 한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20~30분 학교운동장을 뛰었다. 마침내 대회가 열리는 날, 반환점을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반환점을 돌아 1위로 뛰고 있는 외국인을 봤다. 순간 속으로 ‘포레스트 검프다’라고 외쳤다. 이후 그가 대학 영어강사인 미국인 ‘리처드 빈 켐프’라는 사실을 알았고 같이 뛰게 됐다. 주말이면 같이 뛰었다. 길이도 길어졌다. 5km, 10km…. 오래달리기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그냥 달렸다. 이후 2000년 제주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코스도 뛰었다. 그해 가을에는 서울 100km 울트라 마라톤대회도 참가했다.”

 

-일반 마라톤도 있는데 굳이 익스트림 마라톤, 트레일 러닝을 왜 택했는가?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한 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 수영은 할 줄도 몰랐는데 수영장에서 급하게 배워 참가하고 겨우겨우 완주했다. 2003년에는 아이언맨 대회도 완주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무릎부상으로 한동안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도 운동을 가로막는데 장애요인이었다. 아니 어쩌면 달리기가 지겨워졌던 것 같았다. 약 1년 넘게 달리는 것을 중단했다. 달려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달리기’라는 단어가 잊혀질 쯤 우연찮게 사막마라톤 기사를 보게 됐다. 잠자고 있던 꿈들이 다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사막을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렇게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2005년)에 참가하게 됐다. 250km를 일주일간 달렸다. 이후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250km·2006년)에 도전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250km·2007년), ‘남극마라톤’(250km·2007년)까지 도전했다. 사막마라톤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사람들도 ‘왜 사막마라톤에 도전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나는 사막에서 화려한 세상을 만났다. 자연의 가장 위대한 작품 ‘사람’을 만난 것이다. 저마다 고귀한 인생의 결정체를 만들기 위해 사막을 찾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황량한 사막이야 말로 나 같은 작은 인간을 가장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런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도전은 계속됐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을 이루고 나니 잠시 기분이 먹먹했다. 욕심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 욕심은 내 마음 속 아주 작은 한 조각의 꿈에 불과했다.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은 달리기의 끝이 아니라 달리기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달릴수록 자꾸 새로운 꿈들이 생겼다. 결국 다니던 직장도 집어치웠다. 지구 전 대륙을 달려야겠다는 꿈을 다시 세웠다. 달리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꿈이다. 결혼은 달리면서 인연을 만나면 된다. 돈은 마라톤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된다. 가슴 뛰는 일을 하다보면 그 정도는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계와 틀을 벗어나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베트남 레이스(235km·2008년), 북극점 마라톤(42km·2008년), 히말라야 100마일 런(160km·2009년), 트렌스 알파일 런(300km·2009년),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240km·2009년), 오스트레일리아 레이스(250km·2010년), 프랑스 횡단(1150km·2010년), 독일 횡단(1200km·2010년) 등을 완주했다”

 

-매번 경기에 참가하면서 많은 부상도 당할 것 같다. 또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사하라사막에서 정신을 잃었다. 대회 첫날이었다. 미치도록 행복했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50℃가 넘었다. 10kg이 넘는 배낭과 모래언덕을 달렸다. 잠시 쉬려고 바위에 앉아 물을 마시고 일어나는 순간 쓰러졌다. 빈혈이 찾아온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고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빈혈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일어나 걸었는데 거꾸로 걸어버린 것이다. 발톱이 빠지는 것은 이젠 예삿일이 아니다. 사하라사막에서 3개, 중국 고비사막에서 2개,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1개가 빠졌다. 발목이 접질리는 일은 허다하다. 프랑스 횡단과 독일 횡단은 한 달여 만에 연달아 뛰었다. 프랑스 횡단 때 산악지역을 달리다 무릎을 다쳤다. 이어 독일 횡단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로 갔다. 치료라고 해 봤자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약 받는 것 외에는 없었다. 독일 병원에서 의사가 ‘휴식이 필요하다. 더 이상 달려서는 안 된다’고 하자 ‘난 다시 1200km를 달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가 ‘당신 미쳤어요’라는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도 프랑스 횡단 뒤 일주일 쉬고 참가했다고 하자 ‘넌 정말 미쳤어. 이 대회를 완주할 수 없어’라고 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 마라톤에서는 흡혈 날파리 무리에 쏘이면서 달려야만 했다. 버프(마스크나 두건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천)로 가리고 뛰었지만 땀이 범벅돼 숨쉬기도 어려웠다. 밤에 피곤한 몸에 야영을 하는데 원주민들이 항의가 들어와 자다가 다른 데로 옮긴 적도 있다. 북극점 마라톤은 내 생에 최악의 레이스였다.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혹한에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를 달려야 했다”

 

 

-솔직히 (달리기에)미친 것 아닌가?

 

“좋아서 달린다. 트레일 러닝은 모험과 도전, 자연을 같이 한다. 또 지루하지 않다. 독일 횡단 때였다. 마지막 체크포인트를 지나면서 ‘이제 몇 분 후면 한 달 넘게 달린 달리기가 끝난다’라고 생각하자 몸이 가벼워졌고 발놀림도 더욱 빨라졌다. 무릎의 통증은 느낄 수 없었다. 달리면서 느낀 행복했던 순간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던 순간, 외로움과 슬픔의 기억, 고통의 순간 등 달리면서 느낀 매일 매일의 감정들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인생의 나침반이 돼 주었다. 35일의 달리기가 끝났을 때에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다음 횡단 레이스는 어디로 갈까? 난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많은 러너들을 만났을 탠데. 기억에 남는 러너들과 추억이 궁금하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 일이다. 1박2일로 진행된 롱데이(80km)에 선두그룹으로 출발했다. 다친 발목을 테이핑 해 출발했다. 힘겹게 모래언덕을 오르고 내려오는데 통증이 시작됐다. 겨우 코스 절반을 넘었는데 말이다. 그때 앞에서 달리던 미국 올림픽 스키 대표 선수였던 ‘조 홀랜드’가 ‘안(안병식)이 뒤처지고 있어’라며 캐나다 출신의 변호사 ‘마크 타밍가’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러너 ‘프란체스코’가 잠시 같이 걷자고 제안했다. 너무 고마웠다. 이후의 레이스도 함께 뛰다 걷기를 반복했다. 작은 불빛과 서로를 의지해 달렸다. 체력소모도 많았다. 마지막 남은 초코칩쿠기 봉지를 꺼내 함께 달리던 친구들에게 건넸다. 마지막 식량이었다. 모두 ‘고맙다’고 했지만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레이스에서는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서로 얼싸안으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조금 더 인간다워졌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닌 적도 있다. 마라톤대회는 아닌 것 같은데.

 

“맞다. 마라톤은 아니다. 나를 찾아 떠난 순례의 길이다. 2009년 4월 유럽 횡단 레이스에 도전했다. 하지만 대회 3일 만에 발목이 접질렸고 부상이 심해 포기했다. 너무 슬펐다. 그도 그럴 것이 2년을 준비한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꿈이 무너졌다는 게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죽고 싶었다. 달리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큰 아픔인 줄 미처 몰랐다. 그래서 슬픔을 달래려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800km였다. 순례길로 유명해 종교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다.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나는 달렸다. 달리다 보니 자전거를 탄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일정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유명인사가 됐다. 이 길을 달린 사람은 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트레일러들 사이에 소문이 난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의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지 못했지만 이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웃음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도 다른 도전을 위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고향 제주, 그것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큰 것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또 다른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외국의 유명대회를 봐 오면서 고향에서도 그런 대회를 만드는 게 바로 그것이다. 때론 선수로, 카메라맨으로, 자원봉사자로, 스태프로 참가하기도 한 풍부한 경험이 있다. 세계적으로 트레킹 붐이 일고 있다. 제주에도 올레길 열풍이 불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도로를 달리는 ‘로드 마라톤’ 보다 ‘트레일 러닝’이 인기다. 그 열기를 제주에서 이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울트라마라톤은 모두 논스톱 레이스다. 외국의 대회는 며칠씩 이어 달리는 스테이지 레이스가 많다. 장점은 하루에 30~40km를 달리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논스톱 레이스보다 감동적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트레일런제주2012'(www.trjeju.com)다. 오는 11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린다. 초보자들도 제주의 자연을 걸으며 즐길 수 있도록 10km의 짧은 코스도 만들 계획이다. 가을을 계획하고 있다. 억새꽃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조랑말들의 여유로움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따라 달리고,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을 달린다. 한라산과 오름, 바다는 대회를 치르기에 손색이 없다. 내가 간직하고 있던 제주만의 특별한 매력을 전 세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다. 지금 그 대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설레기 시작한다. 가시리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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