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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人]이경서씨, 한반도 야생란 찾아다닌 35년 인생

“‘유령란’이 백두산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갔는데 발견하지 못했지. 이후 매년 (백두산에)올라갔지만 찾지 못하다가 6년이 지나서야 발견했다. 또 한 번은 한 주민의 이름 모를 식물이 있다기에 구억리 곶자왈에서 가시덤불에 온 몸이 긁히면서 뒤졌지만 찾지 못했네. 6년 뒤 그곳에서 ‘제주방울란’을 찾아냈어. 얼마나 기쁘던지…. 그 것이 내가 처음 찾은 신종이지 뭐야”

 

우리나라에서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촬영하는 사진가들은 많다. 하지만 야생화 중 ‘야생란’만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사진을 찍는다 해도 야생란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해 고희(古稀)를 맞이하는 사진작가이자 야생란 전문가인 제주 토박이 이경서씨(70)는 아직도 야생란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온 국토 산야를 돌아다니면서 왜 또 야생란을 찾아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맬까?

 

제주시 연동에 있는 그의 집은 40여년 된 오래된 주택이지만 7평 남짓한 잔디 마당에 깔끔히 정돈된 단층집이다. 그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3평 규모의 서재에서 컴퓨터로 야생란 사진 작업을 하고 원고도 집필한다. 책장에는 사진관련 도서를 비롯한 식물관련 도서가 대부분이다. 한쪽에는 애지중지하는 카메라 보관함도 있다.

 

“내가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뭐가 궁금하지?” 기자를 만나자마자 그는 물었다. 그를 약 10년째 알고 있는 기자지만, 자세히 알지 못해 그냥 “야생란 삶이요”라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꺼내게 했다.

 

-사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 일본에 거주하던 큰형이 브로니판(6×4.5밀리) 카메라를 갖고 귀국했는데, 5살이었던 나는 필름과 못 쓰는 인화지를 가지고 사진을 만드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마 그게 첫 사진과의 인연이었을 것이다. 고교 졸업 후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 제주도지부회 상황실에서 근무하게 됐지. 거기서 기록사진을 촬영해 언론사에 제공했다. 국가재건본부가 해체되면서 일본으로 밀항했는데, 그래픽디자인 사업을 하는 형님 밑에서 그래픽과 사진 공부를 하게 됐다. 하지만 밀항한 탓에 작품 활동은 하지 못했네”

 

-그러면 사진활동은 언제부터 본격적이었나?

 

“밀항한지 4년만에 귀국해 둘째 형이 운영하던 회사에 취직했다. 둘째 형은 제주지역 최초 사진동호회였던 제주카메라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었지만, 활동은 소극적이었다. 같은 동호회 회원이었던 신상범씨(현 제주문화원장)가 동호회 가입을 권유해 활동하게 됐다. 당시 제주산악회에도 같이 가입했는데, 자연히 산악사진을 하게 됐다”

 

-산악사진을 했다면 처음부터 식물사진에는 관심이 없었던 거였나?

 

“처음에는 한라산의 풍경 등 산악사진에만 관심이 있었다. 카메라클럽회원들은 대부분 산악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그 때 사진들은 대부분 산악사진이었다. 그런데 1974년 여름으로 기억나는데, 당시 신문사 사진기자와 한 사진가와 대화를 나누던 중 ‘제주사람으로서 산악사진도 좋지만 한라산이 식물의 보고라고 하니, 한라산 식물사진을 찍으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을 했다. 사실은 식물사진을 하려한 것이 아니었고, 민속사진을 하려고 했지. 하지만 결혼과 함께 2년여 동안 사진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 동안 사진기자는 일간지에 ‘제주의 야생화’를 연재했고, 동료 사진가는 ‘제주의 야생화’를 주제로 사진전을 했다. 먼저 제안하고 남에게 선수를 뺏긴 것이지.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어. 누군가 해야 하니까”

 

-그럼 야생란은 언제부터 했나?

 

“2년 뒤 야생화 연재를 하던 사진기자와 함께 숲속에 촬영을 나갔다가 갈매기난초를 발견했지. 마침 어린 시절 ‘난(蘭)’에 대한 기억을 떠올랐어. 어머니가 ‘한란 꽃향기는 아침 동이 틀 때 너무 좋다’라는 말이었지. 그 순간 야생란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로 야생란에 몰두하게 됐지”

 

-야생란 찾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한라산 자락을 돌아다니며 야생란을 찾아 다녔고, 허탕을 치기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야생란이라는 것은 개체수도 많지 않았지. 견본 사진도, 그림도 없었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서적도 없어 일본 서적을 많이 참고했다. 일본어를 알게 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 그는 횟집을 운영했는데 시간만 나면 야생란을 찾으러 다닌 그를 두고 직원들은 ‘장사를 놔두고 산에 들에 다닌다’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다행히 아내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내가 많이 참아준 것 같다. 애들도 그냥 아빠의 직업인줄만 알아 불만은 없었던 것 같아”

 

-야생란에 많은 것을 투자했다. 결과는 있었나?

 

“1988년 2월 일본 오사카에서 ‘한라산’을 주제로 개인 사진전을 했는데, 걸린 작품 중 절반 이상이 야생란 사진이었다. 이후 제주와 서울에서 각각 2번에 걸쳐 야생란 사진전을 열었다. 2007년에는 일본에서 ‘태평양·아시아 난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한국의 야생란’을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책도 지금까지 5권을 만들었다. 올해에는 북한을 제외하고, 백두산을 포함한 한반도 전 지역의 야생란 139종을 사진과 해설을 겸해 ‘새로운 한국의 야생란’이라는 도감을 펴냈다”

 

-국내 저명 식물학자와 연구도 함께 했다는데

 

“대한민국 식물학계 태두라는 이영노 박사와 이화여대 자연대학원장이었던 이남숙 교수와 연구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들과 제주는 물론, 국내 곳곳을 돌아다녔고, 백두산도 같이 다녔다. 내가 발견한 난에 대해 논의도 같이 했고, 그들의 논문에 내 이름이 실리기도 했다.”

 

-직접 찾아낸 신종도 9종이나 있다고 들었다. 기억에 남는 신종은 무엇인가?

 

“제주방울란·임계청닭의난초·흰호설란·탐라사철란·키큰옥잠난초·날개옥잠난초·계우옥잠난초·녹난초·한라감자난초다. 8종의 학명에는 ‘K.Lee’라는 내 이름도 들어가 있고, 백두산에서 찾은 키큰옥잠난초는 내 이름만 들어갔다. 한번은 1991년에 남제주군 대정읍 구억리에 살던 한 주민이 식물사진을 갖고 왔다.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판단이 안 서 그와 함께 구억리 곶자왈에 들어갔다. 반나절 동안 나뭇가지와 가시나무에 온몸이 긁히면서까지 헤맸지만 상처만 남았지. 매년 그 시기가 되면 그곳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다. 근데 우연찮게 6년뒤에 처음 제보자가 말한 그 위치 인근에서 발견했어.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신종인 ‘제주방울란’이야”

 

-백두산은 몇 번 정도 다녔다. 백두산에서 에피소드도 있나?

 

“야생란을 찾기 위해 북한을 빼고 한반도에서 갈 수 있는 모두 다녔다. 백두산만 30여 차례나 다녔다. 한번은 연변대학 교수를 지냈던 이가 30여년 전 백두산 청산리에서 ‘유령란’을 봤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백두산으로 날아갔다. 비가 억수같이 왔고, 안개도 끼었지만 그와 함께 그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이름처럼 난초는 나타나지 않았어. 돌아오는 길에 아쉬움은 내내 남았다. 매년 같은 시기에 그 일대를 다시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하다가 2001년 8월 초순에 백두산 지하삼림에서 드디어 발견했다. 당시 함께 같이 갔던 영상팀의 제보로 전국 방송에도 보도될 정도로 특종이었다”

 

-그 많은 식물들 중에 왜 야생란만 고집하는가?

 

“야생화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이는 종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연구한다. 난초는 예부터 사군자의 하나로 인식돼 희귀하고 고가로 여겼던 것이라는 점과 남들이 하지 않았던 점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야생란은 하면서 고민이 있었나?

 

“누군가 내 뒤를 이어줬으면 하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식물 전공하려 하지 않아. 과거처럼 현장을 찾아다니지도 않지. 이젠 DNA 분석을 통한 신종 분류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모든 젊은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힘든 것은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 취직문제도 있고…”

 

-향후 계획은 있나?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카메라를 메고 갈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갈거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야생란은 전부 찾을 거야. 최근 신안군에서 2가지 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선 그곳을 집중적으로 조사할거다. 또 기후 온난화로 인해 남방계 식물이 제주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언제 또 다른 종이 발견될지 모르니 계속해서 다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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