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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성의 캘리포니안 드림(6)...마지막 한번?

이제 여기 남가주도 본격적인 여름이다. 한국같이 습기 많은 여름은 아니지만 반사막 기후 특유의 오후 햇살은 무서우리 만치 강렬하다.

 

내가 일하는 뉴포트 비치(Newport Beach)와 예술타운으로 유명한 이웃 라구나 비치(Laguna Beach)는 매해 여름마다 미국 각지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조용하던 동네의 큰 길 1번 도로(Pacific Coast Highway)는 하루 종일 차로 막힌다.

 

미국인들 중에서도 일생의 소원이 캘리포니아로 휴가 한 번 오는 것이라는 이들이 많다보니 여러 해 모으고 아껴서 가족끼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젊은 친구들은 그냥 여럿이 뭉쳐서 차 한대에 올라 타고 무작정 태평양의 푸르디 푸른 파도를 찾아 온다.

 

특히나 지리상으로 여기와 가깝지만 바다가 없는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주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런데 그런 타지(쉽게 말하자면 시골) 사람들이 싫은 이 곳 사람들이 아예 애리조나 여름관광객들을 경멸해서 부르는 'Zonies 라는 말도 들어봤다. 미국에도 텃세가 있다.

 

이와 함께 오일달러를 들고 뜨거운 열사를 피해 중동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아주 많다. 보통은 이 곳에 한 두달 씩 머물러 있다보니 그 동안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해마다 꽤 있었다. 그런데 올 해도 사우디에서 세 가족, 아부다비에서 두 가족, 두바이에서 한 가족 등 모두 일곱 가족이 찾아와서 수련 중에 있다.

 

한국에도 원유를 공급해 주는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 사우디 Aramco Oil 의 이사인 무라드네 가족은 딸만 다섯인 딸 부자다. 그런가하면 사우디 고등교육부 장관의 가족인 말리크네는 귀국까지 미뤄가면서 지금 초단 심사를 보기 위해 매일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성인 여자들은 이슬람법에 따라 머리 수건을 써야하는 번거로움도 마다않고 태권도 수련에 다들 너무 열심이다.

 

 

특히 얼마 전에 시작한 라마단때문에 낮에는 물도 한 모금 마시지 못하지만 전혀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배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여자 수련생들이 오히려 더 열심히 수련하는 이유가 아랍에미리트(UAE)나 사우디에서 누려보지 못한 해방감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엄격한 율법이 강요하는 제도적 박탈감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수련생이 열성을 보일 때가 바로 사범으로서 가장 흥분되고 또 긴장되는 순간이다. 아쉽다면 지금껏 별 생각 없이 가르치고 떠나 보내다가 올해 들어서야 이네들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바뀌어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이들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후배이고 국내 최고의 중동문제 전문가인 외교안보연구원 인남식 교수 덕분에 근래에 중동 사람들과 중동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자세히 알고 보면 이 사람들 정서가 한국사람들과 많이 닮았다. 우리네 기준으로 보면 좀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정도 많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며 아주 가족적이다.

 

이들 대부분이 한국인과 문화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9·11 사태 이후로 이라크, 아프간 전쟁을 계속해서 겪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전반적으로 이슬람 문화나 중동 사람들이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듯하다. 나 역시 거기에 휩쓸려서 지금껏 이들을 잘못된 선입견으로 판단하지나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수 년간 이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닫힌 마음으로 쉽게 포기하고, 좀 더 잘 가르쳐 주지 못한 게 자못 미안하기도 하고 뒤늦게 아쉽기만 하다.

 

무도 사범이라는 자리는 특별히 많은 인내력과 이해심을 요구한다. 그러나 난 그게 많이 모자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John Wesley 의 모친이었던 Susanna Wesley 는 어린 아들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스무 번까지 타일렀다고 한다. 그 걸 보다 못한 남편이 자신에게 화를 내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만약 애들이 스무 번째에 말을 들으면 열아홉 번의 노력이 성공으로 가는 아주 의미 있는 과정의 일부분이 됩니다."

 

이 어머니가 열아홉 번째에서 포기했더라면 그 것은 그냥 열아홉 번의 실패다. 모든 것을 바꿀 그 마지막 한 번을 더 바라볼 지혜와 다시 도전할 만한 인내를 가르쳐준 학생들이 고마워진다.

 

몸과 마음에 익숙지 않은 훈련을 견뎌내고 이제 간단한 한국말로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이들이 참 자랑스럽다. 다시 보기가 어렵겠지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이들이 세상 어디에서건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그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제이누리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무더위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곧 다시 여기 소식 전해드리면서 인사 올리겠습니다>.

 

☞권혁성은?=경북 영일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백령도에서 해병대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포스코 경영기획실에서 잠시 일하다 태권도(6단) 실력만 믿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짝퉁’ 티셔츠 배달로 벌이에 나섰던 미국생활이 17년을 훌쩍 넘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선라이즈 태권무도관의 관장·사범을 한다. 합기도와 용천검도(5단) 등 무술실력은 물론 사막에서 사격, 그리고 부기(Boogie)보딩을 즐기는 만능스포츠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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