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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11)...선조와 이순신을 떠올린다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이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1597년 7월 23일,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교지의 한 대목이다.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의 수군이 왜군에게 궤멸했다는 보고를 받고, 부랴부랴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불러 들이고 있다.

 

 이 교지(2011년 보물 지정, 현충사 전시)에서 선조는 “이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충무공의 파직을 후회하며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尙何言哉)”를 두 번 반복하며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그대를 평복 입은 속에서 뛰어 올려 도로 옛날같이 전라좌수사 겸 충청전라경상 등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도임하는 날 먼저 부하들을 불러 어루만지고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찾아다가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만들고 나아가 요해지를 지켜줄지어다.” 이 같이 염치없는 명령을 내리기 위한 사과였다.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왕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충무공은 전쟁이 끝난 후 왕의 보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왕이 체통 떨어지게 사과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사과는 잦다. 지난 24일 친인척 및 측근 비리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했다. 임기 중 6번째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은 횟수다. 이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사과문은 약 800자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제 불찰입니다. 어떤 질책도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대통령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다며 어떤 꾸지람도 감수하겠다니. 국민으로서 듣기 민망하다.

 

   대통령들 사과문의 수사는 항상 강렬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1997년 2월 차남 현철씨가 한보 사태에 연관됐다는 의혹에 대한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며、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은 제 자신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임기 말인 2002년 6월 차남 홍업씨와 삼남 홍걸씨가 이권 청탁과 관련, 기업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왔으며…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는 모두가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과문은 압권이다. 임기가 끝난 후 불거져 나온 비자금 관련해 1995년 발표한 사과문에서 자신을 ‘이 못난 노태우’로 지칭하며 “어떠한 돌팔매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속죄의 길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에게사과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견될 순 없다.

 

   국민은 이런 대통령을 볼 때마다 참담하고 답답하다. 왜 대통령들은 가장 가까운 형제ㆍ자식들 비리를 미리 막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는 걸까. 여론 무마용으로 사과가 최선이라 너무 무뎌진 건 아닐까. 청와대의 대통령 친인척 관리 부서는 민정수석실이다. 직원 6명이 친인척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순 없는 노릇이다. 다른 나라에 창피하더라도 친인척 전담 부서를 만들어 더 이상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즈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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