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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다]기능장 제주1호 정영택씨, 제주 삶 34년 목공예 삶 40년

 

 

 

제주가 좋아 무조건 제주에 정착해 사는 사람. 34년 동안 제주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 제주에서 열정적으로 살다가 제주도 제1호 문화재수리기능장이 된 사람.

 

 

그 주인공은 절물휴양림에서 목공예 강사일을 하고 있는 정영택(55)씨다.

 

그를 찾아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갔다. 관리사무소에서 숲길을 따라 걷는데 요란한 기계톱 소리가 들린다. 목공예장이 다가왔다는 것을 짐작했다.

 

제주 전통 노동복인 갈옷을 입고 까칠한 수염이 기른 한 중년 남성이 기계톱을 들고 나무를 이리 깎고 저리 깎고 있다. 온통 주변이 톱밥천지다.

 

기자를 보고는 공기압축기로 톱밥을 털어내고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인사한 뒤 자신의 작은 실내 작업장으로 안내한다.

 

정영택씨의 고향은 제주도가 아닌 대구다. 군대를 제대하고 곧바로 제주에 온지 벌써 34년 됐다. 제주에서 결혼하고 아들도 낳았다.

 

그는 국가지정 문화재수리기능사 목조각 부문 제주도 1호 기능자다. 최근 그는 300년이 지나 고사한 팽나무를 가지고 대형 장수풍뎅이를 조각하기도 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학력은 보잘 것 없지만, 이제는 어엿한 목공예 공방 선생님이기도 하다.

 

절망도 있었지만, 그래도 제주사람들 덕분에 오늘이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가 살아온 제주에서의 굴곡진 34년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 제주에 왔는가?

“대구가 고향인데 1977년도에 제주에 왔다가 좋아서 눌러 살았다. 제주 민심도 좋았고, 공기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자연환경이 아주 좋았다. 대구는 공업단지라 그런지 공기도 좋지 않았다. 제주시 용담동에서 정착해 23년 살았고, 이호동에 8년 살다가 지금은 내도동에서 산지 3년 됐다. 제주는 제2의 고향이다.”

 

-제주에서 정착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섬이라서 그런지 당시 제주사회는 배타적이었다. 육지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다소 무시를 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금세 그런 경향은 없어졌다. 오히려 주위사람들이 격려가 있었다. ‘한길로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제주도에 뭔가를 남겨봐라’ 등 격려말도 들었다.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목공예 토산품제작을 했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관광객들도 줄었고, 관광객들도 토산품을 사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바뀌어서 상황이 나빠졌다. 나무구하기도 힘들어 육지에서 들여왔는데 운송비도 올라 공장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목공예 일은 언제부터 했나?

 

“어렸을 때 삼촌이 목공예 사업을 했다.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자, 삼촌이 목공예를 배우라고 권해 목공예를 처음하게 됐다. 이후 삼촌 공장에서 계속 일을 했다. 제주도에 내려와서는 가구용 나무를 납품하는 회사에 다녔는데, 거기에 가구 조각일을 했다. 다니다가 목공예 토산품 제작 공장을 차렸다”

 

그는 목공예 토산품 제작 공장을 하면서 46군데까지 거래를 텄다. 그런데 금융실명제와 경제난을 겪으면서 관광객이 점차 줄었고, 토산품 판매업도 점차 사양길에 들면서 거래처도 10여 곳으로 줄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친 것이다. 그러다가 공방을 했고, 아내와 함께 절물자연휴양림에도 근무하게 됐다.

 

 

-절물자연휴양림에서는 언제부터 근무했나?

 

 

“2008년부터 아내와 함께 근무하게 됐다. 육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김덕홍 절물자연휴양림 소장이 일을 같이 하자며 불렀다. 목공예체험장에서 프로그램 강사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전시장도 만들게 됐고, 휴양림 내 곳곳에 목조각도 세웠다. 약 500여점이 작은 작품이 있고, 대형작품도 20여점 된다.”

 

-방문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방문객들이 지켜보고 물어보기도 한다. 목조각 디자인은 고정됐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움직이는 모양도 만들어 선보이니 재미있어 한다. 디자인도 새롭게 하는 연구도 많이 한다. 예전 돌하르방은 인상을 쓰는데 여기서 만드는 돌하르방은 해학적이고 갖가지 표정과 움직임이 있다.”

 

실제로 휴양림 목공예 체험장 내에는 해학적인 모습의 돌하르방이 많다. 물고기를 든 어부의 모습, 두 팔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를 만드는 모습, 탈춤을 추듯 팔을 휘돌리는 모습, 웃음 가득한 모습 등등. 그의 그러한 아이디어 덕분에 ‘신명나는 제주’라는 제목의 목조각은 전국민예품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300년된 팽나무로 장수풍뎅이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팽나무를 해안동(제주시)에서 기증을 받았는데, 태풍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지인이 연락해 마을로 찾아가서 기증을 받았다. 처음에 절물약수터에 ‘물허벅여인상’이 어울릴 것 같아서 그걸 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습기가 가득한 곳이라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 다른 방도를 생각했다. 이곳 절물은 장수풍뎅이와 왕사슴벌레 서식지인 점을 착안해 장수풍뎅이를 만들게 됐다. 약 20일 정도 걸렸다”

 

-휴양림에 곤충을 테마로 한 야외전시장을 조성된다. 어떻게 해서 조성하게 됐는가?

 

“어느날 퇴근을 하는데 장수풍뎅이가 작업장에 장수풍뎅이가 날아왔다. 그래서 절물관계자들에게 장수풍뎅이와 왕사슴벌레 서식지인 점을 설명하고 곤충을 테마로 하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승낙해줬고, 서로 머리를 맞대 계획을 잡게 됐다. 크고 작은 조각 약 50여개를 제작하려고 한다. 그 첫 작품이 바로 300년 된 장수풍뎅이이다”

 

-대형 작품을 만들려면 그만큼 큰 나무를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마련하려고 하는가?

 

“살아있는 나무는 훼손할 수 없다. 제주에는 오래된 팽나무들이 많다. 해안동에서 기증 받은 것처럼 마을에서 기증을 받아쓰려고 한다. 물론, 쓰러지거나 죽어 있는 것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공문을 보냈다. 기증자나 마을 이름도 작품 밑에 새길 것이다. 마을을 지키던 팽나무가 곤충으로 태어난다는데 마을에서 승낙해줬다”

 

-누구나 일을 하다보면 실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나?

 

“맞는 말이다. 내겐 10년 주기로 권태기가 온다. 20년 됐을 때 다른 일을 하려고 목수일을 했다가 몇 개월 하지 못하고 다시 이 일로 돌아왔다. 또 30년 됐을 때 육지에서 불상조각일을 했다. 혼자 올라가 5년동안 했는데 역시 맞지 않아 돌아왔다. 내겐 이일이 천직인가 보다. 혹시 모르겠지만, 40년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최근 국가지정 제1회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시험에서 합격해 제주도 1호 기능자가 됐다. 소감은?

 

 

“대한민국지정문화재 기능장 시험에 두 번 낙방했다. 기회가 되면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마침 휴양림 소장이 시험을 보라고 권유해 봤다. 제주도에서 34년 살면서 가장 기쁜일이 될 것이다. 문화재 관련 기능장으로서 제주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려 한다. 불러주면 언제든지 달려가 모든 지식과 기술 등 모든 능력을 투자하겠다. 문화재를 보수하고 복원하고 새롭게 건립되는 문화재에도 역할을 하고 싶다.

 

-후진양성 계획은 없나?

 

“약 5년 전에 내도동에 공방을 냈다. 지금 10명의 회원이 있는데 서각과 목공예를 하고 있다. 찾아오는 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할 것이다. 내년에 명장 추천이 있다. 조각명장이 되면 더욱 더 후진을 양성하는데 노력도 기울일 것이다.”

 

그는 제주에서 아내 박태숙(54)씨와 결혼하고 아들도 하나 있다. 아들은 현재 제주정부종합청사에서 기술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에게도 자신의 기술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토산품 제작을 할 때 아내도 일을 배워 이제는 같이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아들도 목공예에 관심은 있다. 아들도 언젠가는 내 뒤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아들에게도 대물림 해주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주도에 정착해 살다보니 이제는 문화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제주사람이 다 됐다. 제주도에 뭔가를 남기고 싶다. 개인 작품전시회를 준비한 것이 있는데 조만간에 전시회를 열 것이다. 좀 더 제주적인 작품을 많이 남기고 싶다. 휴양림에도 많은 작품으로 기여하고 싶다. 아내와 함께 이곳 휴양림은 내 직장이기도 하지만 집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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