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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人] 애월읍 납읍초 김태선 교장…“모교 사라지는 것 볼 수 없었다”
‘금산학교마을’ 준공으로 34명 학생 늘어…“학교 살리기는 곧 마을 살리기”

고향 후배들의 교육을 위해 다시 부임한 모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었다. 얼마없으면 분교가 된다는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으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교였다. 그런데 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모교가 2015년 분교로 격하된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14년 전에도 분교의 위기를 넘겼던 학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방으로 애쓰다 보니 이제는 그 위기를 넘겼다. 마을공동체가 다시 한 번 똘똘 뭉쳐 분교의 위기를 넘긴 것이다. 아니 이젠 학교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는 걸 막을 수가 있게 됐다. 집안 역시 13대째 고향마을을 지킨 가문이다. 가문의 일원으로서 이제는 떳떳하리라.

 

19일 오전 11시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감귤밭과 감귤 하우스 사이에 4채의 ‘금산학교마을’  준공식이 열렸다. 이 준공식 자리에 누구보다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이가 있었다.

 

 

납읍초등학교 김태선(59) 교장.

 

김 교장은 마치 마을 이장이라도 된 듯 행사 내내 참석인사,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준공식이 끝나고 내빈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34명의 새로운 제자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금산학교마을에 입주한 주민들의 자녀들이다.

 

납읍초등학교를 15회로 졸업한 김 교장은 2010년 3월 모교에 부임했다. 부임한 학교의 학생 수는 85명. 그런데 해가 갈수록 학생 수는 줄었다. 결국 올해 7월 말에는 학생수가 70명으로 줄었다. 이미 교육청은 2015년부터 60명 이하로 예상돼 분교장 대상학교로 2년여 전 지정 통보했다.

 

위기가 닥쳤다. 마침 납읍리에서는 2009년 말 외지인 유치작전에 나섰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임대해 주는 사업을 펼쳐 초등학생을 가진 가구에 빌려준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노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집이 너무 낡아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마을에서는 '학교 살리기 중장기 발전계획위원회'를 꾸리고 기금 조성에 나섰다. 우선 공동주택을 짓기로 했다. 주민들은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다 그 자금을 어디에서 구하냐며 난색을 표했다. 6세대만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공동주택은 학생 수 증가운동에 필수다. 12세대 아니면 하지도 마라. 최소한 12세대는 죽었다 깨나도 해야 한다. 마을에서는 불가능했다고 했다. 1년여를 설득했다. 결국 18세대를 짓기로 했다”

 

그런데 큰 돈을 만들어내기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마을자금을 포함해도 14억원이라는 돈은 힘들었다.

 

그 먼저 호주머니를 털었다. 500만원을 처음으로 기탁했다. 그런데 그게 촉매가 됐다. 모금에 나선 지 한 달 만에 개인 모금액이 3억 원에 이르렀다. 신기하게도 쉽게 풀려 나갔다. 그리곤 3달 만에 8억 원이 됐다. 그의 이러한 일은 모범이 돼 ‘제1회 대한민국 스승상’도 받았다. 상금 받은 1000만원도 흔쾌히 학교 살리기에 내놨다.

 

너무 기뻤다. 사실 이런 기적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8년 평교사로 납읍초교에 부임해 왔을 때에도 모교가 분교위기에 처해 있었다. 학생 수가 80명에 불과했다. 그때도 마을에서는 학교 살리기에 한창이었다. 그때도 1년 동안 설득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1년이 지나자 반전이 일어났다. 적극적으로 마을주민이 참여했고, 금방 19세대 집을 지었다.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2년 뒤 2차로 12세대가 또 건립됐다. 학생 수도 110명으로 늘었다.

 

“한 달 만에 3억원을 모금했을 때 이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세대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고 했다. 정말 신기했다. 두 번의 위기에서 모두 어렵게 출발했지만 쉽게 풀렸다.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이뤄낸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모교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금산학교마을 준공이후 34명의 학생이 더 들어왔다. 학생 수는 모두 104명이 됐다. 공동주택이 전부 55가구다. 학생은 가구 당 학생 수 1.5명 계산하면 90명 정도 된다. 아무리 못해도 학생 수가 80명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분교장 격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자신감이다.

 

초등학교 학생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학교 소속 유치원 원아들도 늘었다.

 

“유치원 원아는 모두 16명이었다. 그런데 22명 정원을 채웠다. 만 3~5세를 다 받게 되면 30명을 훌쩍 넘는다. 2개 반을 만들어야 한다”며 웃었다. 이 원아들도 모두 납읍초교로 진학하게 될 것이다.

 

그는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은 학교를 살리는 것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부터 학교 살리기를 했다. 하지만 학교를 살리는 게 아니라 마을 살리기를 한 것이다. 납읍리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분교로 보내지 않는다. 학교가 없다면 제주시나 애월리로 학교를 보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젊은 사람들은 여기 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노인들만 살다보면 폐촌이 된다. 마을이 사라진다. 학교 살리기는 결국 마을 살리기다. 몇 십 년 후 마을이 없어지지 않기 위해 주민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학교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납읍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느껴왔기에 오늘이 있다”

 

본교를 지킨 그에게 과제가 남아 있다. 제자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1998년에 학교 살리기 할 때에도 그랬다. 납읍초등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를 가도 납읍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졸업식 때도 강조한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인성교육과 현장 체험교육 등 납읍초등학교 만의 독특한 수업을 만들어 납읍마을을 찾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김 교장은 3년 뒤 정년퇴직한다. 하지만 그는 마을 발전을 위한 끈을 놓지 않을 계획이다.

 

“납읍초등학교가 바로서야 납읍마을이 바로 선다. 납읍초등학교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후배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께 조언을 하겠다. 그런 마음을 심어줄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일은 최대한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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