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한탕을 노리는 이들…그들이 간 곳은?

  • 등록 2013.01.12 13: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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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올해 첫 경마 열린 제주경마공원…지옥으로 빠지는 도민들
말로는 건전한 경마 홍보하면서, 정작 규정 어기는 배팅 규제도 안해

 

건전한 여가와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마장에 연초부터 한탕을 노리는 이들로 가득했다. 도박 중독을 알면서도, 폐해를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말발굽에 자신을 나락(지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11일 오후 1시. 올해 첫 경마가 열린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인근에 위치한 제주경마공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을 넘어 주변도로까지 차량들로 가득 찼다.

 

1000원 주고 산 일반 입장권 뒷면엔 ‘제주도 지방세 납부가 1위이며 각종 복지 사업으로 4억8000만 원을 썼다’고 적혔다. 그동안 제주지역 사회에 기여한 실적을 홍보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형석 경마개최위원장은 “경마팬들의 뜨거운 관심에 감사를 드리고 아울러 2013년에는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보답하겠다”면서 올 한해 많이 찾아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한국마사회 제주경마공원이 건전한 여가생활과 관광객 유치라는 취지와는 거리가 멀게 제주도민들로 가득한 풍경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제주경마공원을 방문하는 입장객수 가운데 90%가 도민으로 추정된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그만큼 경마·카지노·경륜·복권 등 사행산업 시장은 더욱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2011년 우리나라의 합법적인 도박산업의 매출이 18조원을 넘어섰다. 제주경마공원의 매출은 2825억 원이었다. 말이 합법적이지 이런 경마장에서 국민들이 잃은 돈은 무려 7조 6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마사회는 지나친 사행 심리를 막는다며 한 사람이 경기당 최대 10만원까지만 베팅하도록 자체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목격됐다. 또 구매횟수에 제한이 없어 한 번에 큰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마권을 수 십장씩 사기도 했다.

 

이날 경마 관련 정보지를 판매하는 부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경마가 시작되기 전에도 정보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곳곳에서는 술과 담배냄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현금자동지급기 앞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현금을 뽑을 수 있는 편리성이 오히려 사행심을 부추기도 있다.

 

게다가 관람대 1층에 있는 계좌발매기를 이용해 쉽게 실시간으로 이체해 경마를 즐길 수도 있었다. 자동이체만 신청한 경우도 200만 원까지 횟수제한이 없이 입·출금이 가능하다. 그러나 감시하는 사람이나 장치가 없어 타인의 이름을 도용해 상한선을 넘겨 베팅할 수 있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실내에서 스크린을 보며 마권 구입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경마꾼들 중 일부는 바닥에 앉아 경마 베팅을 위한 분석에 골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후 3시 40분. 총상금 4500만원을 걸고 결전을 벌이는 특별경주가 열렸다. 마권발매 마감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이제 곧 경주가 시작된다는 말이 이어졌다. 마권을 구입한 사람들의 눈은 오직 한 곳 ‘레이스’를 겨누고 있었다. 스타트를 알리는 구호와 함께 시작된 레이스. 사람들의 함성은 경마장 관람석과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순위가 갈리는 순간 탄식과 환호가 교차했다.

 

행운을 얻은 사람은 얼마 안 되지만 마권이 휴지조각이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잃고 말았다. 쓸모없는 마권을 찢는 사람들 사이로 욕설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날 경마장을 찾은 박모(46·제주시)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나와 같은 사람은 이렇게 한탕주의에 빠지게 된다”면서 “5년 전 친구를 따라 한번 오게 된 것이 이렇게 중독이 돼 일감이 없을 때에는 거의 오는 편”이라면서 말했다. 그는 “지인 중에는 집문서도 날리고 2억 원의 빚까지 생긴 경우도 있다”면서 “건전하게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작용이 많다”고 뼈 있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폐해를 알면서도 계속해서 마권을 구입했다.

 

옆에 있던 김모(39·제주시)씨도 “한 번만 맞추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자꾸 오게 된다”며 “전체적으로 돈을 잃었지만 작년에 한번 200만원을 딴 적도 있다”며 요행을 기대했다.

 

결국 이들은 도박 중독이라는 정신적.물질적 파탄을 예상하면서도 한탕의 꿈에서 점차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내데스크 직원으로부터 받은 홍보 책자 속에는 ‘도박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무료로 상담을 해주겠다’는 문구가 오히려 이들을 비웃는 것 같다.

 

 

 

신용섭 기자 shinsoul@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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