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님을 찾아서 어디로 갈거 나…, 국악가요를 흥얼거리며 달린다. 나의 애마인 싸이클자전거 타고 어디로 갈까? 그래 오늘은 삼양동 주변을 둘러보는 거다.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스치는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달리는 쾌감을 어디에 비하랴.
자전거 타기는 항상 조심을 요한다. 아차하면 쌩쌩 달리는 차량 땜에 넘어질 수도 있기에 가급적 골목길과 오솔길로 다닌다. 안전을 위하고, 숨겨진 비경을 찾기 위함이다.
오솔길로 접어든 나는 이내 삼양초등학교 주변에 닿는다. 옳지, 지석묘가 이곳 어디에 있었지. 저만치 철책 안에 갇힌 돌무덤들이 나를 반긴다. 고인돌은 당시의 부족장의 무덤이 아니던가. (이 글을 다시 쓰는 지금, 택지개발로 옛날의 모습이 사라진 이곳에서 먼저 떠오르는 고사성어는 상전벽해였다.)
삼양동만큼 볼거리가 넘치는 마을도 흔치 않을 거다. 검은모래 해수욕장은 물론, 선사유적지와 유물전시관도 있다. 제주역사의 상흔이 배어 있는 환해장성, 탐라국 시조인 고·양·부 삼성이 활을 쏘아 경계를 정했다는 삼사석지(三射石址)도 있다. 지근거리에서 마을을 에워 쌓고 있는 원당봉(元堂峰)이 있고, 도내 유일의 국보탑인 5층 석탑이 있다. 제주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와, 옛 정취를 간직한 포구와 물통도 있다.
삼양(三陽)동은 세 개의 지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동쪽에서부터 1동, 2동, 3동이 해안가를 이웃하며 설촌이 되었을 거다. 삼양이란 지명도 3개동이 볕 바른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하여, 원당봉·한라산·별도봉이라는 세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하여, 삼사석에 등장하는 고·양·부 삼성과 관련 있다하여, 3첩7봉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바람에 더위를 날리며 내리막길을 달린다. 무너진 환해장성 가는 길이다. 그곳에 가면 나는 탐라의 과거와 만난다. 장성을 쌓던 선인들의 허기진 한숨소리를 듣기도,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려는 생존의 의지도 배운다. 곁에 있는 포구의 바닷물에 손도 담그곤 해안도로를 달여 원당봉에 닿는다.
오름 아래에 나의 애마를 메어놓고는,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원당봉으로 향한다. 원당봉은 마을의 수호신 같은 오름이다. 이곳이 명당이라서 일까. 분화구와 용암 유출구에는 크고 작은 3개의 구릉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북두칠성의 명맥인 3첩(疊)7봉(峰)이란다.
겹치는 봉오리마다 세 개의 절이 있다. 그중 고려시대에 지워진 절간은 불타 없어졌으나, 당시 세워진 5층 석탑만은 그 모진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아 참배하는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80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석탑은 제주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이자 국가지정 보물이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