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당(神堂)의 원조 ... 신과 독대하는 그곳

  • 등록 2019.10.18 1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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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와흘 본향당 ...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심신의 카운슬링 상대

 

지난 세월 사이클을 타고 오가다 와흘 본향당에 서너 번 들리기도 했다. 와흘 본향당에는 수령이 수백 년이나 되는 거대한 팽나무들이 신목으로 있어 신령스러움이 가득하다.

 

신당 주위의 팽나무의 우람한 가지가 담장 밖까지 길게 뻗어있고 형형색색의 옷감과 소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주위에 심겨져 있는 동백나무는 삼승할망이라 불리는 산신(産神)할망의 상징목이기도 하다.

 

본향당 입구에는 본풀이를 새긴 비석이 있고, 당 안에는 ‘백조십일도령본향신위’라는 한글 위패가 있다. 한쪽에는 낮은 제단이 잘 꾸며져 있으나 비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 있는 조촐한 현무암 제단엔 굵은 촛대들이 줄지어 있어,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있음을 말해준다. 거기에 숨겨진 사연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제주 신당의 원조는 송당 본향당이다. 이곳 당신인 금백주는 소로소천국과 결혼하여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았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은 제주도 각처로 흩어져 당을 만들고 좌정하였다.

 

와흘 본향당은 송당 본향당의 열한 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 이곳 서정승 딸과 혼인하여 처신(妻神)으로 삼은 신당이다. 서정승 딸이 임신 중 입덧이 심하여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돼지털을 그슬어 냄새만을 맡았다. 백조도령은 부정을 탄 처와는 함께 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하여, 저만치 물러나 있으라 했다. 그래서 신단을 별거하는 모습으로 따로 모셨다.

 

제주에서는 남신보다 여신을 더 귀하게 모신다. 삶의 방식도 그러했다. 백조도령 신단은 중앙에 있어도, 주민들이 바친 제물이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서정승 딸의 신단엔 양초가 줄지어 있었으며, 주변의 팽나무 가지엔 색동천과 소지인 백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본향당 안의 신령스러움은 거의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소지와 색동천 등을 너절하게 걸어놓은 팽나무 가지가 너무 어지럽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건데 그건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고 업신여김이었다. 동창의 누 나이자 시인인 김순이 작가를 유흥준 교수가 초대하여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본향당이란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요즘 말로 하면 주민센터예요. 제주 여인네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본향당에 와서 신고한답니다.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사고가 났다, 농사를 망쳤다, 우리 애 이번에 수능시험을 본다, 우리 남편 바람난 것 같다 등등 이런 모든 것을 신고하고 고해바칩니다.

 

제주에서 당신의 중요한 특징은 신과 독대한다는 점이지요. 제주의 신을 할망(할머니)이라고 해요. 어머닌 다소 엄격한 데가 있는 반면,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자애로움이 있죠. 여성은 소문 내지 않고 자기 얘기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심리가 있거든요. 답을 몰라서가 아니죠. 그런 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겁니다.

 

모진 자연과 싸우며 살아가는 제주인들에겐 이런 할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죠. 심신의 카운슬링 상대로 할망을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지고 마음도 달라지니 온몸이 포근해져 옴을 느낀다. 누군가 새벽에 신당에 기도하러 오더라도, 앞사람이 먼저 할망하고 독대하고 있으면 밖에서 독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독대하고 나온 이에게는 절대로 말을 걸어서도 안 된다.

 

송당은 내 고향이 위치한 구좌읍 관내 마을이다. 어려서부터 수 없이 들은 마을이름이지만 좀처럼 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 어른이 되어 찾아간 그곳은 나의 생각을 온통 머물게 할 정도의 명당이고 힐링의 장소였다. 본향당을 보고난 후 오른 당오름은 명상센터와 같이 신령스러움과 정숙함이 가득하여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제주의 창조신화는 여성으로 시작한다. 그중 제주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창조의 신이 설문대할망이다. 거인인 설문대할망은 치마 폭으로 흙을 날라 한라산을 쌓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해지는 창조신은 금백조라고도 불리는 백주또이다. 서울 남산에서 태어난 여신 백주또는, 혼기가 되어 제주에 내려와 소로소천국과 결혼했다. 백주또는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고 살다 죽어서 마을을 지키는 신이 되었고, 자식들은 온 섬으로 흩어져 각 마을의 신이 되었다. 설문대할망이 지역 환경의 창조를 이야기한다면, 백주또는 지역에 정착한 인간을 이야기 한다.

 

제주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당이 있다. 마을의 당신을 보통 조상이라 칭한다. 조상이란 말은 또한 최초의 마을을 만든 조상이거나 혈연적인 조상의 뜻을 지닌다.

 

백주또 역시 당신으로 제주를 지키는 1만 8000여 신의 어머니다. 백주또가 살았던 마을이 송당(松堂)이고, 백주또를 모신 본향당이 있는 오름이 당오름이다. 송당 본향당 신의 자손들이 제주 각지로 흩어져 좌정하고 곳곳의 당신이 되었으니, 당오름은 제주 무속신앙의 원조임과 동시에 모든 오름의 어머니 격이라 할 수 있다.

 

오름 외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둘레길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둘레길은 건천과 활엽수가 우거진 원시림 숲을 지나 삼나무길로 이어진다. 가는 길에 소원을 적은 종이와 천들이 나부끼는 소원 나무들을 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여름에도 햇볕을 막아주는 우거진 나무들로 트래킹 코스로도 제격이다. 표고 274m, 비고 69m의 나지막하고 둥그스름한 편으로, 북서쪽으로는 얕게 파인 말굽형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다.

 

오름 기슭을 한 바퀴 돌아가면서 길이 나있기에 그냥 걸었더니 오름 정상에 벌써 올랐다. 당오름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밤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다. 햇빛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검푸르기도 해, 발길 닿는 곳마다 백주또 라는 당신이 지켜주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령스럽다.

 

오름 입구에 모신 본향당은 기와지붕 모양의 석실로, 그 안에 본향신인 금백조의 신위를 모신다. 송당 본향당에서는 과세문안, 영등마제, 마블림제, 시곡마제 등 1년에 4번 당제를 올리며, 무사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한다. 당제는 1986년 제주도 무형문화재로, 당지은 2005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할망당을 찾는 이들은 제물을 챙기고 간다. 양초 한개를 준비하는 것은 필수이다. 가진 사람은 술과 과일, 더 정성을 드리는 사람은 지전(紙錢)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건다. 넉넉한 사람은 할망이 옷을 지어 입을 물색천을 걸기도 한다.

 

넉넉한 사람이 양초 하나만 올리면 할망이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기에 제주에서는 지니고 가는 제물이 사람마다 다르다. 다음은 본향당 도처에서 본 오색 소지에 관한 김순이 작가의 이야기다.

 

백지를 여기서는 소지라고 해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하얀 한지죠. 본향당에서 소원을 빌 때 이 소지를 가슴에 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빌고서 저 나뭇가지에 걸어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모든 사연이 소지에 찍혀, 할망이 다 읽어본다고 해요.

 

위의 글을 읽은 후에 다시 보는 팽나무 가지에 나부끼는 소지는 그 전의 소지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애뜻한 소원이 실려있는 무명의 글이다. 사연이 많은 사람은 소지를 몇 십장 겹쳐서 가슴에 대고 빈다.

 

이런 높은 차원의 발원 형식이 참으로 고상하고 인간적이다. 처음에는 글 모르는 할머니들을 위해 생겨난 의식이었다. 그래도 어떤 글을 써 넣은 것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다음에는 나도 소지 한 장과 제물을 준비하고 갈까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문영택 yeongtaek24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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